2022년의 4월경,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던 어느 날 오후, 5~60 대로 보이시는 중년의 손님께서 휠체어를 타고 약국 안으로 들어오셨다.
당시 약국 안에는 손님들이 3분정도 계셨고, 조제된 약을 받으시기 위해 대기중이셨다. 중년의 손님께서는 처방전을 가져오시지 않으셨기에, 일반약을 사러 오셨구나 하는 마음으로 손님께 인사를 건넸다.
"어서오세요 선생님. 찾으시는 약 있으세요?" 하고 말씀드리니 손님께서는 "어..어.." 하는 의성어만 말씀하신채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셨다. '찾으시는 약을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찾아드릴게요' 라고 말씀드리려는 찰나에 투약구로 조제약이 나왔고, 나는 중년의 손님을 뒤로 한채 복약 지도를 시작했다.
"oo님 약 나왔습니다~ 약은 하루에 3번, 식사 하시고 챙겨 드시면 됩니다. 아침점심저녁 약이 다 똑같아요. 여기 하얀색 약이 기침을 멎게하고 가래를 없애주는 진해거담제에요, 그리고 이 노란약은 종합감기약 느낌으로 콧물,코막힘을 잡아주는 약인데 좀 졸리실 수 있고요, 이 캡슐은 콧물과 가래를 삭혀주는 약, 그리고 여기 보이시는 이 약은 기침을 멎게 해주는 진해제입니다. 여기 보이시는 하얀색 기다란 약은 타이레놀인데, 열이 나시지 않거나 두통증세가 없으시면 얘는 빼고 드셔도 됩니다. 괜찮으시면 약은 다 끊으셔도 되고요, 음주는 꼭 피해주셔야 합니다."
몇 차례의 복약지도가 끝난 후 중년의 손님을 바라보았을 때 , 손님께서는 3000원짜리 치실을 손에 들고 계셨다.
"3000원 입니다 선생님" 하는 내 말을 들으시고는, 손님께서는 앞에 매고계신 조그마한 가방 지퍼를 여시고 천원짜리 세장을 꺼내셔서 카운터쪽에 내미셨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는 나의 인사말을 듣지 못하신 건지, 손님께서는 "어..으.."
라는 말만 하신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셨다. 급기야 가지고 계신 치실도 카운터에 함께 올려놓으셨다.
"선생님 치실값 3000원 맞으세요. 봉투에 담아드릴까요?" 라고 말씀드리자, 손님께서는 느린 목소리로 "아으..니..그으게..아니..고" 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마침 다른 손님들께서 약을 구입하시러 들어오셔서 중년손님 뒤에 줄을 서셨다. 중년의 손님께서는 뒤의 인파에 당황하셨는지 머뭇머뭇거리시다가 카운터에 치실과 3000원을 올려 놓은채 옆으로 물러나셨다.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하며 다른 손님들을 먼저 응대한 후, 옆쪽에 계신 중년손님께 다시 말을 걸었다. "선생님, 치실 구매하시는 건가요? 제가 가방 앞쪽에 넣어드릴까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손님께서는 또 "아으..니..그으게..아니..고" 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나도 사람인지라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는 찰나, 중년의 손님께서는 느릿느릿하게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정말 어찌나 부끄럽던지, 디오스코리데스 선서를 할 때 했던 그 다짐들은 다 어디로 가고, 답답함만 토로하는 철없는 한 어린애가 되어 그저 자기 조금 바쁘다고 배려심도 없는 태도를 보였는지 '내가 정말 이럴려고 그렇게 약사가 되고 싶었나' 하는 생각이 들며, 중년손님께 너무 죄송해졌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돈을 돌려주실려고 약국에 다시 방문해 주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리고 지레짐작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하며 진심으로 사죄드린 후, 나가시는 길에 문을 열어드렸다. 그 날 저녁에 실습일지를 쓰면서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가운을 입고 일하면서 가장 부끄러웠던 날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