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이는 친구들과 놀다 저녁 무렵 놀이터에서 엄마를 만나 함께 집에 들어왔다. 아빠는 어제도 오늘도 그 자리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자고 있었다. 그제야 선희는 이상했는지 영팔이를 살펴보았다.
"헉"
영팔이가 숨을 쉬지 않았다. 선희는 너무 놀라 털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꽈당"
"엄마,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에요?"
"어? 아무것도 아니야."
선희는 이불을 가져와 영팔이의 얼굴을 가렸다.
"엄마, 아빠는 왜 이리 잠을 많이 주무세요? 배고프지 않으실까요? 쉬도 마려우실 텐데.. 언제 깨실까요?"
선희는 울고 있었다. 선희의 얼굴 위로 눈물이 하염없이 솟아올랐다.
"엄마, 엉덩이 많이 아프세요? 제가 문질러 드릴까요?"
선희의 눈에선 눈물이 멈춤 줄 몰랐다. 미영이는 자그마한 손등으로 엄마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러자 선희는 무슨 원한이라도 맺힌 듯 사무치게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윽윽윽" 울분을 토해내듯 오열하였다. 터질 듯이 제 가슴을 치며 비명소리에 가까운 울음을 뱉어 내었다.
꺽꺽거리는 절박한 외침을 옆에서 지켜보던 미영이도 끝내 같이 울기 시작했다. 마른하늘에 무슨 날벼락인지 음습한 슬픔이 온 집안 구석구석으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선희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미영이는 그새 울다 잠이 들었다. 선희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하지만 그간의 세월 동안 선희는 독해졌다. 그 수더분한 성격은 온데간데없었다. 타들어 가는 속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미영이와 어떻게 살지 골똘히 궁리부터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렸다. 자고 있던 미영이는 '웅성 웅성'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경찰도 와 있었고 소방차도 와 있었다. 경찰은 미영이에게 요목조목 따지듯 치밀하게 물어보았다.
"아빠가 어쩌다 돌아가셨니?"
"저도 잘 모르겠어요."
"너는 그때 뭐 했니?"
"엄마랑 같이 밥 먹고 있었어요."
"아빠가 어쩌다 넘어졌어?"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비틀비틀하다가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셨어요."
"아빠가 넘어지고 나서 돌아가신 걸 몰랐어?"
"네, 밥 먹고 엄마랑 잠깐 나갔다 돌아왔어요. 그때도 아빠는 주무시고 계셨어요."
"밥 먹다 왜 나갔어?"
"밥 다 먹고 나갔는데요."
"어디 갔다 왔어?"
"술 드시면 아빠가 저를 자꾸 때려서 아빠가 잠들면 들어오려고 엄마랑 같이 엄마 일하는 식당에 가 있었어요."
"아빠가 돌아가신 건 언제 알았어?"
"학교 갔다 와서 놀이터에서 놀다 엄마랑 같이 집에 들어왔는데, 그때도 아빠가 주무시고 계신 줄 알았어요."
경찰은 미영이에게 집요하게 캐물었다. 어떤 비밀스러운 정보를 하나라도 알아내지 못하면 사달이 날 것처럼 묻고 또 묻고 계속 물었다. 미영이도 지지 않았다. 엄마에게 해 되는 말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영팔이의 장례는 무사히 치러졌다. 어느 누구도 선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잘 죽었네. 잘 죽었어. 그렇게 술 먹고 여편네 때리고 그러더니."
장례를 치르고 오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떠들고 다녔다.
"아이고, 그런 얘기 함부로 하고 다니지 마세요."
동네를 소란스럽고 떠들썩하게 만들어서인지 동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수군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곧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갔다.
이제 그 일을 아는 사람은 선희와 미영이 단 둘 뿐이었다. 미영이는 아빠가 가끔 생각나기는 했지만 엄마와 단둘이 사는 지금이 어쩌면 훨씬 더 좋았다.
미영이는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소록소록 자고 있는 심장에게 속삭였었다.
"그때의 일은 너하고 나하고 만의 일급비밀이야. 절대 밖으로 누설해서는 안 돼."
심장은 잘 알아들었는지 조용조용 뛰고 있었다. 앞으로 심장이 '팔딱팔딱' 나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영이는 살포시 엄마의 손을 잡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