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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Feb 06. 2024

폭풍전야 (5)

  미영이는 친구들과 놀다 저녁 무렵 놀이터에서 엄마를 만나 함께 집에 들어왔다.​ 아빠는 어제도 오늘도 그 자리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자고 있었다. 그제야 선희는 이상했는지 영팔이를 살펴보았다.​
​  "헉"
  ​영팔이가 숨을 쉬지 않았다. 선희는 너무 놀라 털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  "꽈당"
​  "엄마,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에요?"​
  "어? 아무것도 아니야."


  선희는 이불을 가져와 영팔이의 얼굴을 가렸다.


​  "엄마, 아빠는 왜 이리 잠을 많이 주무세요? 배고프지 않으실까요? 쉬도 마려우실 텐데.. 언제 깨실까요?"


  ​선희는 울고 있었다. 선희의 얼굴 위로 눈물이 하염없이 솟아올랐다.​


​  "엄마, 엉덩이 많이 아프세요? 제가 문질러 드릴까요?"


  선희의 눈에선 눈물이 멈춤 줄 몰랐다. 미영이는 자그마한 손등으로 엄마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러자 선희는 무슨 원한이라도 맺힌 듯 사무치게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윽윽윽" 울분을 토해내듯 오열하였다. 터질 듯이 제 가슴을 치며 비명소리에 가까운 울음을 뱉어 내었다.

  꺽꺽거리는 절박한 외침을 옆에서 지켜보던 미영이도 끝내 같이 울기 시작했다. 마른하늘에 무슨 날벼락인지 음습한 슬픔이 온 집안 구석구석으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선희는 뜬눈으로 밤을 웠다. 미영이는 그새 울다 잠이 들었다. 선희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하지만 그간의 세월 동안 선희는 독해졌다. 그 수더분한 성격은 온간데없었다. 타들어 가는 속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미영이와 어떻게 지 골똘히 궁리부터 했다.
​  
  얼마간의 시간이 흘렸다. 자고 있던 미영이는 '웅성 웅성'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경찰도 와 있었고 소방차도 와 있었다. 경찰은 미영이에게 요목조목 따지듯 치밀하게 물어보았다.


​  "아빠가 어쩌다 돌아가셨니?"
​  "저도 잘 모르겠어요."
  "너는 그때 뭐 했니?"
  "엄마랑 같이 밥 먹고 있었어요."
  "아빠가 어쩌다 넘어졌어?"
  "술을 너무 많이 드셔서 비틀비틀하다가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셨어요."
  "아빠가 넘어지고 나서 돌아가신 걸 몰랐어?"
  "네, 밥 먹고 엄마랑 잠깐 나갔다 돌아왔어요. 그때도 아빠는 주무시고 계셨어요."
  "밥 먹다 왜 나갔어?"
  "밥 다 먹고 나갔는데요."
  "어디 갔다 왔어?"
  "술 드시면 아빠가 저를 자꾸 때려서 아빠가 잠들면 들어오려고 엄마랑 같이 엄마 일하는 식당에 가 있었어요."
  "아빠가 돌아가신 건 언제 알았어?"
  "학교 갔다 와서 놀이터에서 놀다 엄마랑 같이 집에 들어왔는데, 그때도 아빠가 주무시고 계신 줄 알았어요."


  경찰은 미영이에게 집요하게 캐물었다. 어떤 비밀스러운 정보를 하나라도 알아내지 못하면 사달이 날 것처럼 묻고 또 묻고 계속 물었다. 미영이도 지지 않았다. 엄마에게 해 되는 말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영팔이의 장례는 무사히 치러졌다. 어느 누구도 선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잘 죽었네. 잘 죽었어. 그렇게 술 먹고 여편네 때리고 그러더니."


  장례를 치르고 오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떠들고 다녔다.
  "아이고, 그런 얘기 함부로 하고 다니지 마세요."


  동네를 소란스럽고 떠들썩하게 만들어서인지 동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수군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곧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갔다.

  이제 그 일을 아는 사람은 선희와 미영이 단 둘 뿐이었다. 미영이는 아빠가 가끔 생각나기는 했지만 엄마와 단둘이 사는 지금이 어쩌면 훨씬 더 좋았다. ​

  미영이는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소록소록 자고 있는 심장에게 속삭였었다.


​  "그때의 일은 너하고 나하고 만의 일급비밀이야. 절대 밖으로 누설해서는 안 돼."


  ​심장은 잘 알아들었는지 조용조용 뛰고 있었다. 앞으로 심장이 '팔딱팔딱' 나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영이는 살포시 엄마의 손을 잡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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