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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인 것일까

월야밀회(月夜密會, 18세기 후반)-신윤복

by 낮은 속삭임
월야밀회(月夜密會,18세기 후반)-신윤복, 간송 미술관 소장

18세기 조선 화가 혜원(蕙園) 신윤복의 <월야밀회(月夜密會, 18세기 후반)>. 보름달이 떠 있는 밤, 골목길에 세 남녀가 있다. 먼저 왼쪽의 두 남녀. 여인을 바싹 끌어당긴 남자의 힘 있는 팔과, 여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댄 남자의 표정은 단호하다. 여인 역시 한 손을 가슴에 얹고 다른 손은 머리 뒤쪽을 살짝 잡은 자세로 남자의 포옹에 활짝 젖혀있어 자못 관능적으로 보인다. 여인의 복장은 일반 여염집 여인의 복장이며, 당시 풍속에 따르면 소매의 푸른 끝동은 기혼여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한밤중에, 결혼한 여인이 외간 남자와 포옹하는, 더구나 마치 키스할 것 같은 그림이라... 상황은 분명 불륜일 텐데 그림 속의 두 남녀는 서로가 너무나 절실해 보인다. 남자의 옷차림은 당시 포교의 옷차림. 어느 감영의 문을 지키는 그의 옷차림으로 보아, 야간근무 중 허겁지겁 나온 모양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여인이 결혼하기 전에 만났던 연인 관계였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서로의 몸이 그리운 남녀의 단순한 탐닉이었을까.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면 통상적으로 전자로 보는 것이 주를 이룬다.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서 살짝 떨어진 자리에 장옷을 걸친 여인이다. 이 여인의 머리는 안겨있는 여인의 머리보다 훨씬 화려한 데다 한쪽에 떨잠까지 꽂았다. 그녀의 푸른 치마는 안겨있는 여인의 치마보다 화려하고 선명하다. 그녀는 이들의 만남을 주선한 기녀로 보고 있다. 그녀가 두 연인을 바라보는 표정은 그저 담담할 뿐, 그 외는 없다.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버린 여인을, 한밤중에 기녀의 도움을 받아 도둑처럼 몰래 만날 수밖에 없는 남자를 동정하는 것인지, 사랑하는 이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지만 결코 연인을 잊지 못한 여인을 동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윤리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지탄받을 일일 테지만,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해져 버린, 그래서 4자성어인 줄 착각하게 된 단어 '내로남불'이 생각날 수밖에. 그러나 오늘은 그림 속 연인들에게 그것을 적용시키지 말고, 오른쪽의 기녀처럼 담담히 보는 것이 어떨지.

혜원(蕙園) 신윤복은 작품이 널리 알려진 것에 비해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도화서 화원 가문에서 태어났고 그 역시 3대째 도화서 화원이 되었지만, 자유분방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욕구는 도화서 화원으로 남기에는 너무나 컸다. 사군자나 산수화 위주, 어진을 비롯한 궁중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당시의 풍속과 여인들의 모습, 화려한 색채와 자유로운 주제는 그에게 너무나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가 놀기를 좋아하고 음란하여 도화원에서 쫓겨났다는, 혹은 남녀의 애정행각을 묘사한 춘의풍속도를 그려 쫓겨났다는 설이 있는 것은. 어쩌면 도화원을 그만두었기에 자신만의 풍속화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지.

*이 작품은 서울의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국보 제135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의 풍속화 중 하나이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제목은 오래된 번안 가요 <꿈속의 사랑(1956)> 에서 차용했다. 가수 현인 님이 부른 이 곡의 원곡은 1942년 중국 상하이에서 상영한 영화 「장미꽃은 곳곳에서 피어나건만(薔薇處處開)」의 삽입곡 <몽중인(夢中人)>이라 한다. 우리나라 가사는 작사가 손석우 님이 썼으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 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잊어야만 좋을 사람을 잊지 못한 죄이라서
소리 없이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아, 사랑 애달픈 내 사랑아 어이 맺은 하룻밤의 꿈
다시 못 볼 꿈이라면 차라리 눈을 감고 뜨지 말 것을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 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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