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선생님 옷자락의 해묵은 담배 냄새를 기억하며
생애 첫 꿈은 고1 진로 상담 시간 중에 산산이 부서졌다. 부서지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그리 슬프지 않았던 건, 사실 내겐 그 꿈을 업으로 삼을 만큼의 열정도 재능도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 꿈의 이름은 ‘읽고 쓰기‘였다. 그러나 당장 손바닥 위에 펼쳐놓은 책들은 차마 덮지 못했다. 그 상태로 반년이 지나고 있음을 알지 못했던 열일곱 여름, 나는 2학기 방과 후 수업을 신청하고 있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방과 후 수업 신청은 대학 수강 신청처럼 ‘실시간 온라인 선착순’ 시스템이었다. 이제와 돌이켜 보건대, 그날은 내게 유독 운이 따라주지 않은 날인 듯하다. 이후의 삶 중에 이처럼 ‘실시간 온라인 선착순’ 시스템을 사용해야 했을 때면, 나는 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유독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그날의 나는 그리하여 앞으로 한 학기 내내 주에 한 번,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선생님으로부터 국어를 배워야만 했다.
첫 수업 시간, K선생님의 목소리는 필요 이상으로 조곤조곤했고 수업은 지루했다. 선생님의 오래된 셔츠에서 풍기는 묵은 담배 냄새 외에는 인상적인 게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잠들어 있었다. 그런 아이들이 안쓰러웠는지 선생님은 수업을 10분 정도 일찍 끝냈다. 그러자 나머지 아이들마저 기다렸다는 듯 기절을 택했다. 나 역시 그러고 싶었으나 애매하게 더운 날씨 탓에 쉬이 잠들지 못하고 엎드렸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그때 K선생님이 내 자리로 불쑥 다가왔다. 그러더니 팔을 쭉 뻗은 채 두 손바닥을 내 책상 끝에 받치고는 말했다. “잠이 안 오나.” 필요 이상으로 조곤조곤하다고 생각했던 목소리는 어느새 다정한 목소리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애매하게 더운 초가을, 창을 통해 주황빛 햇살이 들어찼-었다고 믿고 싶은 그런 느낌의 오후. 교실에는 K선생님과 내가 깨어 있었다.
그날 이후, 불가항력으로 책상 위로 툭툭 엎어지는 아이들 가운데서 나는 눈을 맑게 뜨고 수업을 듣게 되었다. K선생님은 수업할 때 학생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셨다. 시선을 멀리 두고 무표정하게 수업을 하는 버릇이 있으셨는데 그와 달리 말투는 자상했고 내용은 지루할 만큼 꼼꼼했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한 시간은 우리가 편히 잘 수 있게 꼭 남겨두시던 마지막 10분이었다. 그 시간에도 나는 눈을 맑게 뜬 채였고 선생님은 그런 나를 단 한 번도 지나치지 않으셨다. 나 외에도 점점이 깨어 있는 아이들이 있으면 내게 그러시는 것처럼 따뜻하고 시답잖은 담소를 나누시곤 했다. 그 시답잖음이 좋았다. 그 시간이면 우리와 눈을 꼭 맞춰주시는 것도 좋았다. 혼자 문제를 풀다가 막혀서 어버버 거리는 나를 보고 크게 웃으시며 내 등을 툭툭 치는 것도 좋았다. 이렇게 웃을 줄도 아시는구나, 싶었다. 내가 K선생님의 수업을 기다리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한창 『제인 에어』를 읽는 중이었다. 이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였다. 친구들은 뭐 그렇게 두꺼운 책을 읽느냐며 놀렸고 자율학습 감독 선생님은 ‘공부’를 먼저 하라며 조용히 말렸다. 그런데 새로운 반응이 추가되었다. K선생님은 내가 멀찍한 책상에 올려둔 『제인 에어』를 발견하곤 차르르 펼쳐 보면서 ‘크, 제인 에어…’ 하면서 작게 감탄하셨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사실 일부러 떡하니 올려 둔 것이었다. ‘그래도 K선생님이라면..‘ 하는 마음으로 저지른 작은 계략이었는데 그대로 걸려드셨고 나는 그게 기뻤다.
어느 날, 선생님은 시 몇 편을 복사한 A4용지를 나누어 주셨다. 그러고는 말씀하셨다. “이 시들은 사실 시험에 나오는 시들은 아니다. 하지만 너희랑 같이 읽고 싶어서 들고 왔다.” 그중 한 편의 시는 여즉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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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와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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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규원, 「프란츠 카프카」,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 수록
선생님은 특히 “미친”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라고 강조하셨다. K선생님은, 적어도 그 시간에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시험에 나올 가능성이 0%인 시‘를 가르치겠다는 “미친” 선생이었고 나는 그런 시를 공부하겠다는 “미친” 제자였다. 사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그날에는 엎어진 아이들이 확연히 적었다. 그날의 수업은 내가 막연히 꿈꿔온 수업이었다. 문학을 좋아해서 국어 과목을 좋아했고, 좋아하다 보니 열심히 하게 되어서 매번 높은 점수를 받아오면서도 문학을 기계적으로 분석하는 국어 수업에 회의감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수업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 생에서 지울 수 없는 시간 중 하나다. K선생님은 더위가 완전히 지나가자 셔츠 위에 갈색 재킷을 걸치셨고 거기선 더욱 묵은 담배 냄새가 풍겨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마저 좋았다.
한 학기는 눈 깜빡할 새 지나갔고 K선생님과의 국어 수업도 끝이 났다. 어느덧 2학년이 된 내겐 더 이상 K선생님을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재학하던 시절에는 K선생님이 담임을 맡지도 않으셨다) 밍숭맹숭한 어느 저녁, 마지막 순서로 밥을 푸는데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식판에는 밥과 김치만 찔끔 이었다. ”밥을 왜 그만큼밖에 안 먹노.” K선생님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불쑥 끼어든 건 그때였다. 어느새 선생님은 주걱으로 내 식판에 밥을 양껏 올리고 계셨다. 밤에도 공부해야 하는데 그렇게 적게 먹으면 안 된다느니 하는 목소리가 들릴락 말락했다. 선생님 손에 들려 있었을 퇴근 가방은 복도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채였다.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던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석식을 싹싹 긁어먹었다.
그날 이후로는 정말로 K선생님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열아홉의 어느 날, K선생님이 정년퇴직을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박카스와 쪽지를 들고 교무실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선생님의 자리가 비워진 뒤였다. K선생님의 옆 자리를 쓰던 윤리 선생님이 오늘 송별회 자리에서 대신 전해주겠다며 박카스와 쪽지를 가져가셨지만 제대로 전해졌던 건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당시 며칠간은 내 쪽지가 잘 전해졌기만을 바랐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쪽지가 전해지지 않았기를 바란다. 쪽지의 내용을 이렇게 뜯어고치고 싶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한 번 겪은 일은 절대 잊지 않는대요.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가 상아 밀렵꾼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코끼리는 평생 악몽에 시달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기도 한답니다. 즉 코끼리는 과잉기억을 겪는 셈이죠. 그런데 과연 코끼리만 그럴까요. 코끼리가 겪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인간 역시 어느 정도 ‘과잉기억’하는 각자의 경험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평론가는 이걸 ‘원장면’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원장면’이 있기 마련이라고요.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함이 바래지 않는 어떤 경험, 어떤 기억. 그것이 ‘원장면’이라면, 저의 ‘원장면’들은 대개 나쁜 경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는 으름장이 지배했던 교실 안, 식판 위의 반찬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점심시간 내내 끙끙댔던 유치원생 시절의 경험과 같이 사소한 나쁜 경험부터 아직도 꿈과 현실을 헤집어 놓곤 하는 악질적인 나쁜 경험까지, 다양한 나쁜 경험들이 ‘원장면’으로 자리합니다. 하지만 개중에는 좋은 경험도 자리해 있지요. 선생님과의 짧았던 수업시간은 개중의 개중에서도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특히 오규원 시인의 <프란츠 카프카>를 배운 그날이요.
선생님은 제가 한때 꾸었던 꿈의 아름다움을 상기시켜 준 사람이고 비록 그 꿈은 놓더라도 책은, 문학은 놓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첫 번째 사람이에요. 동시에,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얼굴 모를 아이를, 식판에 밥을 적게 덜어 놓은 이름 모를 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에요. 선생님의 해묵은 담배 냄새는 이제 아득한 향수로 남게 되겠죠. 그래도 담배는 꼭 줄이세요. 건강하고 또 건강하셔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