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보다 의학은 인문학
어떤 기초과학 연구자가 너무 바빠 흰 가운을 입고 지하 카페테리아에서 맞선을 본다면, 상대방 여성분이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의사인 줄 알았는데, 연구자라니 말입니다. 의사들이 입는 흰 가운을 영어로 lab coat라고 합니다. 이는 laboratory coat의 줄임말인데요, 왜 doctor's coat라고 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원래 이 가운은 laboratory coat, 즉 연구자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은 그저 연구자들의 가운을 빌려 입었을 뿐이니 lab coat라는 이름이 적합하겠지요. 그렇다면, 왜 의사들이 흰 가운을 입기 시작했을까요? 원래 연구자들의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의사들이 연구자들을 흉내 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제 양복을 꺼내 입고 어른 흉내를 내던 제 아들처럼 말입니다.
1800년부터 1850년까지 병원 중심의 의학이 프랑스 파리에서 발전했습니다. 19세기 전반기, 파리는 첨단 의학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며, 유학을 위해 몰려든 이들을 교육하는 의학교육기관이 되었습니다. 소위 병원의학(hospital medicine)의 영향은 프랑스를 넘어 영국, 미국 및 기타 유럽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 병원 중심의 의학에는 병리학과 해부학 같은 기초과학(의학) 연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흰 가운은 이러한 병원의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세기 초, 파리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 미국 의사들은 과학적 의학을 미국에 전파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미국 의사들은 목사나 법률가처럼 검은 정장을 입고 환자를 진료했습니다. 이들에게 고급 프랑스 향수와 우아한 드레스만이 최신 유행은 아니었습니다. 흰색 가운으로 대표되는 병원의학이야 말로 의학신에서 최첨단 유행이 되었습니다. 과학이 가져온 매혹과 권위는 그들을 사로잡았고, 의사들은 모두 연구자처럼 보이기 위해 기다랗고 불편한 흰색 가운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몇몇 미국 의사들은 유럽에서 유학을 다녀온, 멋들어진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미국 의사학자 존 워너(John H. Warner)는 의학에서 과학을 너무 강조하면 의사의 인격, 품성, 그리고 치료자로서의 정체성(identity of physicians as healers)을 망가뜨릴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현대의 과학 중심 의학에 몰두한 미국 의사들에게는 선배들의 이러한 발언이 믿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당시 19세기 미국 의사들에게 과학적 의학은 적절한 치료를 거의 제공하지 않으면서 환자를 단지 지식을 추구하기 위한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과학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의사의 동정심과 치유자로서의 역할"을 오히려 더 망치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는 당시 병원 중심의 과학적 의학이 병리학, 역학 통계, 메커니즘 연구 등 환자 치료보다 과학적 탐구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발전이 의학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20세기 의학은 어떤 면에서 과학 자체를 능가하게 되었습니다. 의사 가운은 연구자의 가운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의대 입학 성적은 일반 과학대학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 요구되었습니다. 임상의학 저널은 네이처 같은 기초과학 분야의 최고의 저널들보다 더 자주 인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거대 제약회사와 병원, 그리고 이들이 보유한 기계와 시설은 일반인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새로운 권위를 의사들에게 부여했습니다. 의사들의 지식은 과학의 보호 아래 독점적인 가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과학을 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의학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의사들은 제도적으로 독점적인 위치를 확보하며 경제적 이득과 사회적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동양인이 상류사회에 진입하는 유일하고 쉬운 방법이 의사가 되는 것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이제 흰 가운은 연구자의 상징이 아니라, 의사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현대 미국의 많은 의사들이 흰 가운 대신 청소부처럼 스크럽을 입는 모습을 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미국 의사학자 존 워너(John H. Warner)가 지적했듯이 의학사에서 과학의 의미는 시대마다 달랐으며, 역사 속 의사들은 현대 의사들처럼 과학을 자신의 정체성의 핵심으로 항상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의학은 긴 역사 속에서 인문학에 더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19세기 과학 의학으로, 병원 의학으로 거듭나면서 의학은 인간적이고 인문학적인 모습을 상실했습니다.
다행히 오늘날에는 19세기처럼 지성주의를 신봉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대 의학 속에서 다시 인문학을 발견하려 하고 있습니다. 미래 의사들의 옷은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상징하게 될지 기대됩니다.
"의학은 가장 인문학적인 과학이며, 가장 과학적인 인문학이다." - 펠리그리노
19세기 의사상에 대한 설명은 김옥주 선생의 「서양 근대 이후의 의사의 정체성」 논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각주 또한 해당 논문의 각주를 재인용한 것입니다.(김옥주. (2005). 서양 근대 이후의 의사의 정체성. 의사학, 14(1), 51-66.)
A Critique of Rationalism Embedded in Doctors' White Coats:
Medicine is humanistic science
Imagine a basic science researcher, rushing to a blind date in a basement cafeteria while still wearing his lab coat. His date might be disappointed - she sees the white coat and assumes he's a doctor, only to learn he's "just" a researcher.
It's interesting that we call it a 'lab coat' and not a 'doctor's coat. ' isn't it? That's because it was originally - and always has been - a laboratory coat. Doctors borrowed it from researchers, much like my son who sneaks into my closet, puts on my suit, and plays at being grown-up. So why did doctors adopt the lab coat? Simply put, they wanted to borrow the authority and prestige of scientific researc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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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spital-centered medicine emerged in Paris, France from 1800 to 1850. In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Paris became a mecca of cutting-edge medicine and established itself as a medical education institution for those who flocked there to study. The influence of so-called hospital medicine spread beyond France to Britain, America, and other European regions. This hospital-centered medicine was grounded in basic science (medical) research such as pathology and anatomy. The white coat symbolized this hospital medicine. In the early 19th century, elite American doctors who studied in Paris sought to spread scientific medicine to America. At the time, American doctors typically wore black formal attire, similar to priests and lawyers, during their practice. For them, it wasn’t just luxurious perfumes and elegant dresses that were coveted imports from France—hospital medicine, symbolized by the white coat, was seen as the latest haute couture. The prestige and authority associated with science captivated them, leading doctors to don long, uncomfortable white coats to emulate scientists. Some American doctors, however, seemed to harbor a hint of envious discontent toward the sophisticated, white coat-wearing physicians trained in Europe, perhaps perceiving them as overly pretentious. They warned that an excessive focus on science in medicine could erode the true essence of a physician’s identity as a healer. For modern American doctors, fully immersed in scientific medicine, such concerns from their predecessors might seem difficult to believe. To 19th-century American physicians, scientific medicine often meant treating patients as mere subjects for advancing knowledge, while offering little in the way of actual care. They feared that science would strip away the essence of being a doctor—"a physician’s compassion to relieve patient suffering and their role as a healer." This perspective arose because hospital-centered medicine of the era prioritized pathology, epidemiological statistics, and mechanistic research over patient care.
As scientific advances were actively utilized in medicine, 20th-century medicine in some ways overshadowed science itself. The doctor's coat gained more authority than the researcher's coat, and medical school admission requirements became much higher than those for general science colleges. We live in an era where clinical medicine journals are cited more often than top basic science journals like Nature. Large pharmaceutical companies and hospitals, along with their intimidating machinery and advanced facilities, granted doctors a new level of authority. The knowledge possessed by doctors, protected within the realm of science, became a field inaccessible to the general public—unlike the medicine as an everyone's science of earlier medical history. While anyone can participate in science, practicing medicine remains a privilege reserved for a select few. As doctors established an institutional monopoly, they gained significant economic rewards and social prestige. In the United States, medicine has become a cartel dominated by pharmaceutical companies, insurance firms, and physicians. It is openly said that becoming a doctor is one of the only paths for Asians to access what is perceived as high society in America, though the reality of how "high" that society truly is remains debatable.
The white coat is no longer a symbol of scientists, but has become a symbol of doctors. Ironically, most modern doctors now opt for scrubs instead of white coats, resembling janitors. They no longer need to mimic authority—they have become the authority itself. As medical historian John H. Warner noted, the meaning of science in medical history has shifted across eras, and doctors throughout history did not always place science at the core of their identity as modern physicians do. For much of its history, medicine was more aligned with the humanities. However, as it evolved into scientific and hospital-based medicine in the modern era, it gradually lost many of its humanistic qualities.
Thankfully, in recent years, many scholars and doctors have moved away from the intellectualism worshiped in the 19th century. There is a growing effort to reintroduce the humanities into modern medicine, recognizing the importance of a more balanced approach. I can’t help but wonder what the attire of future doctors will symbolize.
"Medicine is the most humanistic science and the most scientific humanity. - Pellegrino"
* The explanation about the 19th-century physician's identity is excerpted from Kim Ok-joo's paper, "Doctor's identity in Modern Western Society" The footnotes included in my article are also secondary citations drawn from the references in the same p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