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헬리오시티와 도곡렉슬

부동산은 생물이다.

by 카리타

나는 80년대에 송파구 가락동에 위치한 가락아파트에서 살았다. 부모님은 그 당시 가락 아파트를 두 채 가지고 계셨다. 그 당시에 그 아파트를 두 채 가지고 있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대단한 일도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집이 그렇게 부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 어머니는 사정상 10년 정도 보유한 후에 두 채를 모두 매도하셨다. 그때 즈음 재건축을 한다는 소문이들리기 시작했다고 어머니가 지나가듯 이야기하셨던 기억이 있다. 사실 헬리오시티가 완공 되기 전까진 지금처럼 부동산 가격이 오를지도 몰랐고 완공까지 시간이 거의 20년이상 걸렸기 때문에 아주 낡아버린 가락 아파트 근처를 지나갈 때면 어머니는 그 집을 팔길 잘했다고 몇번이나 이야기 하셨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한 채 가지기도 힘든 집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그 집 두채를 모두 가지고 계셨었다면 지금 어머니의 자산은 50억이 넘었을 것이다. 그 당시 그 집의 가격은 몇천만원대였다.


가락아파트는 정말 큰 단지였다.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면 한참을 달려야 단지의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스팔트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길은 롤러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타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주 어렸을 때에는 연탄을 땠었던 것 같다. 주차장에 차들이 있고 1층 앞 잔디밭에는 클로버가 많아서 따뜻한 시기가 돌아오면 거의 아침부터 저녁노을이 질 때까지 네잎클로버를 찾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쑥을 갈아드시는 것을 자신의 건강비법으로 여기셨다. 내가 네잎클로버를 찾을 때면 어머니는 잔디밭에 널려있는 쑥을 큰 비닐봉지로 가득 채웠다.


아파트 내에는 유치원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그 유치원을 졸업하고 집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의 가락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품아'였다.

아파트와 초등학교 바로 뒤에는 엄마손백화점과 시장이 있었고, 피아노 학원 같은 학원들도 그쪽에 위치했다. 시장에서 팔던 야채곱창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성인이 되어서도 유명하다는 집에가서 몇번 도전을 해봤지만 비슷한 맛을 찾지 못했다. 단지 앞에 가락시장이 있어서 물가가 비싸지 않고 살기 좋은 동네였다고 기억한다. 이웃들은 집앞에 나와 담소를 나누고 같은동 아이들은 밤 늦게까지 고무줄을 하면서 놀았다.


대학교 무렵까지는 조기와 사과를 잘 먹지 않았었는데 이유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제철과일을 박스채로 사다주셨다. 사과와 포도, 조기를 가장 많이 먹었는데 내 동생은 조기의 배만보고 알이 있는지 없는지를 감별해냈다.

우리 가족의 밥상은 매우 풍족했다. 사과와 포도가 떨어지지 않았고, 삼겹살과 꽃게 지금은 비싸서 먹기 힘든 병어까지 온갖 산해진미가 밥상에 올랐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의 전경.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등 모든 식재료의 천국이다.

지금도 어렸을 때의 영향인지 나와 남편은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가락동 농수산시장에 장을 보러 간다. 가락시장은 마트보다 과일가격이 싸다. 그 많은 가게들 중에서도 유독 우리 같은 가정주부들이 많이 가는 가게가 몇 군데 있다. 약간 당도가 떨어지거나 모양이 예쁘지 않은 것들을 저렴하게 파는 곳들이다. 물론 가락시장도 상품의 질이 좋고 모양이 예쁜 백화점 급 상품은 비싸다.


모양이 예쁘고 맛이 좋은 과일이 비싼 것,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단순한 생각이 과일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집도 마찬가지이다.


나보다 네 살이 많은 남편은 태어날 때부터 강남에서 살았다고 했다. 지금 역삼 1동 중에서, 역삼역과 강남역, 뱅뱅사거리와 도곡1동주민센터 사거리를 잇는 구역에서 결혼전까지 계속 살았다.

역삼 1동은 건너편 도곡동에 위치한 럭키아파트가 '도곡' 지명대신 '역삼'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쓸 정도로 역삼동이 부촌이었다고 한다. 역삼동은 대부분이 단독주택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집 옆의 주인을 모르는 맨땅에서는 옥수수와 고추가 자랐다고 한다.

지금은 그 당시 단독주택 소유주 였던 사람들이 개별로 재건축을 시행해 다가구와 다세대 주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역삼 1동 구역의 배정 초등학교인 역삼초는 한 학년이 2~3반 정도이다. 건너편의 도곡동에 속한 언주초등학교와 비교적 대조적인 모습이다. 언주초는 아이들 키우기 좋은 초등학교로 손에 꼽히는 학교로 학생수가 1000명이 넘는다.


강남의 상상하기 어려운 옛모습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도곡동의 매봉산과 역삼럭키아파트 사이의 큰 도로길, 지금의 명칭은 논현로이다. 이 길은 원래 산이었는데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역삼럭키 아파트에서 쌍용예가가 위치해있는 지역은 진흙길로 해가 지면 손전등을 들고 나가야했던 지역이라고 한다.

가로등이 없는 강남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한 가지 더하자면 남편이 살던 동네 옆 아주 작은 평수들로 이루어진 아파트 대단지가 있었는데, 남편이 친구가 사는 집에 놀러 가면 집이 너무 작았었다고 기억한다.


그곳이 지금의 도곡렉슬이다.


도곡렉슬은 처음 갔을때 내가 살았던 성남시 수정구의 신흥주공 아파트와 많이 닮아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도곡렉슬 단지는 매봉산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 산 앞에 위치한 동의 거주자들은 아마도 설악산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숲 앞의 집은 여름에 다른 집보다 훨씬 시원하다. 밤에는 뻐꾸기가 우는 소리도 들린다. 사계절 자연의 아름다움을 굳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겨울에 눈이 오면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내려앉은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선사한다.

신흥주공에 살았을때 우리집은 숲과 맞닿아 있었다. 밤에는 뻐꾸기가 울고 여름엔 에어컨이 필요없을 정도로 시원했다. 봄에는 라일락 향기가 집안 전체를 가득 채우고 가을에는 단풍이 베란다 유리창 전체에 액자가 되었다. 겨울에 눈이 오면 온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아무리 좋은 풍경을 찾아가서 보아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매일 보던 광경이었으니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도심이 정비되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이 바뀌게 되었다. 단독주택이 있던 곳은 수익형 구조로 변화되면서 비 아파트 지역이 되었고 작은 평수의 아파트가 밀집해 있던 곳은 모든사람이 선호하는 대단지 아파트로 탈바꿈했다.


우리는 이러한 과거의 변화를 되짚어보며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다. 지분율이 비슷하고 같은 구역으로 묶인 아파트 지역이 단독 주택과 빌라, 상가주택이 섞여있는 지역보다는 재건축이 수월하다는 것이다. 아파트 재건축 또한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재건축은 시작부터 끝까지 돈과 시간과의 싸움으로 귀결된다. 단지가 클 수록 사람이 많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 재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비용, 그리고 감당하기 쉽지않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수하려면 그만큼의 보상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이를 판단하는 기준, 최소한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해 삼아야 할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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