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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Mar 25. 2024

 난생처음 본 일본 장례식

 A코스  장례


시어머니는 죽음을 애도하기에 안성맞춤인  검은 ‘기모노‘를 상자에서 조심스레  꺼냈다.  


그 순간 나는 코를 찌르는 지독한 나프탈렌 냄새가, 옛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화장실’ 칸막이에  ‘대롱대롱’ 달려있던 나프탈렌이 떠올랐다. 얼마나 독했던지 화장실 가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윽” 코를 막았다.


“어머니 요즘 누가  이런 냄새나는 거 써요! 좋은 게 얼마나 많은데요.”

“그 나라는 안 쓰니?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이걸 쓰는 사람은 ‘청결’한 사람으로 여긴다. 너는 외국사람이라 잘 몰라서 하는 소리지! “  


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 외국인인 니가 뭘 아니? “ 하는 눈초리였다.

결혼 9년 차인 나도 질세라, “한국에서는 아주 옛날에  ’ 더러운 수세식 화장실’에만 썼어요! 지금은 그런 거 안 쓰죠!.

요 정도로  어머니와 자주 ‘토닥’ 거렸다.

너의나라, 우리나라 하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먼저 말을 이쁘게 했어야 했다. “어머니 요즘은 좋은 향기 나는 나프탈렌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다음에 제가 한번 사 올게요!라고 했더라면, 어머니도 너의 나라는!이라고 밉게 말하지 않았으리라…



까다로운  기모노를 마치 매일 입었던 사람처럼, 목 뒤  중심선  맞추기와, 허리의 어려운 ‘오비’(허리장식) 3종류 , 각 3.5m 이상 되는 길이를 내  도움 없이 혼자서 척척 매셨다. 기모노 입기는 대단히 어려워 입혀주는 전문가가 필요할 정도이다.



예약해 둔 미용실에 가 ‘기모노용’ 올림머리까지 한 어머님은 좀 기품도 있어 보이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장례를 처음경험 하는 우리는, 그냥 집에 있던 검은 양복차림에, 나도 전체적으로 검은 옷을 입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가끔 전철에서 보는 일본 ‘상갓집 패션’은  검은 옷에 진주 목걸이 정도가 많았기에 나도 대충 따라 했지만,  장남댁의 ‘장례식 의상’을 보고 우리 ‘꼴’이 초라하다는 걸 깨달았다.


장남의 슈트는 딱 봐도 고급스러웠고, 검은색이 짙고  깊이가  있어 보였다.  

나이에 따라 염료농도가 높아야 하고, 옷 값에 따라 색도 틀려진다고 들었다.  색깔이 짙고 깊이 있는 검은색일수록  ‘고가’ 예복이다. 

저렇게  염료농도가 높고, 깊이 있는 ‘예복’를 입은 형님 옆에,  염료농도 얄팍한 검은색 슈트를 입은 내 남편이 서있을걸 생각하니 신경이 쓰였다.





-가족 장례  A코스로 한다고 하셨다-

음식도 아니고, A코스가 뭘까?…. 굉장히 궁금했다.


시아버님이 워낙 ‘온천’을 좋아하셨기에, 시어머님은 입관하기 전 ‘목욕’하는 ‘A코스 ’라고  했다.  

죽은 사람을 ‘목욕’시킨다고 한다고 하니 , 생전

처음 들어본 말이라 신기하고, 호기심도 생겼다.

무서우면 어쩌지….




우리는 모두 무릎을 꿇고  시아버님을 씻는 무대

앞쪽으로 줄지어 않았다. 두 명의 남녀 전문가가 들어왔고  ’ 특별한 의식‘이 시작됐다.


실크로 된 ‘흰색가운‘을  입은 아버님을, ‘따뜻한’ 물이 담긴 긴 물통 위에  눕힌 채로 아~주  천천히,

‘가운’을 이용해, 몸을 요리조리 옷으로 가려가며, 고인의 피부가 절데 드러나지 않게 전신을 씻어 나갔다.  


두 진행자의 손놀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과 감동을 느끼게 해 주었고, 유족과 고인이

만족할 만한 의식으로 예의 바르고 아름답게 진행되었다.

나는 처음 보는 광경에, 침도 못 삼킬정도로 숨죽여 지켜보았다. 이건 참 좋은 의식이구나! 싶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기가 목욕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고인이 된 사람의 마지막 ‘목욕’에도 여러 의미가 있다고 한다.


온천을 좋아하던 아버님은, 병상에 계신 오랫동안  씻지 못하셨는데, 이런 코스가 있다니!

아~~ 시원하셨겠다.


마지막으로 화장도 곱게 하셨고, 나에게 볼터치를 칠하는 기회도 주어졌다. 기술이 얼마나 발달을 했는지, 살아계실 때 보다 더 잘생겨 보이셨다.

혈색 있고 아름다운 꽃으로 둘러싸인 장례 3일 동안, 귀신 나올 것 같은 새벽에 관속을 들여다 보아도 무섭지 않았다.


나의 엄마는  차가운 방 ‘ 병풍’ 뒤에  이불을 덮어 놓아, 무서워 가까이 가기도 꺼려졌던 것과 너무나 틀렸다. 시골이라 그랬겠지만 ‘고인’이 된 사람에게 최소의 예의란 그저 평범한 ‘관’ 속에 넣어 묻는 것이 전부였고, ‘알록달록’한 종이꽃으로 장식을 한 ‘상여’도, 종을 치며 노래하시던 장례사 목소리도,

그 ‘상여’ 뒤를 따르던 어린 딸들은 서로 예쁜 ‘상주’ 허리띠 때문에 싸움을 했었다.

고모들이 ‘ 아이고 요년들아…. 언제 철들래!..


공포 영화속 한 장면같은 장례식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나를 괴롭혔고, 동생은 여러 번 기절할 정도였다.

그와 반대로  이렇게 아름다운 ‘장례식‘에 참여해 보니 많은 것이 부러웠다.

일본영화 ‘오쿠리 비토’가(おくりびと)가 떠올랐다. 오스카 상을 탄 영화로 ‘죽음’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첼로 연주가에서 우연히 장례사 (납관사가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머러스하고 감동적인 영화다.



A코스 - 목욕 장례는, 내 상상과 다르게 산사람과 죽은 사람이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었던 ‘최고의 코스였다.


마지막으로 깍지 낀 두 손을  불교’식으로 배 위에 ‘꽁꽁‘ 묶은 후  ‘긴 염주’로 치장하는 장면이 있었다.


남편에게 신신 당부했다.

“여보 내가 죽거든 저렇게 손 묶지 마, 절데로!“




화장이 진행되었고, 가족은 아무 말 없이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끝이 나고 진행원이 안내하는 곳으로 줄지어 따라 들어갔다.

생전 처음 본 사람의 뼈가 아직도 뜨거운 김을 품은 상태로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허무한 것이구나… 며칠 전에만 해도 살아계셨는데, 오늘은 뼈로 만나니 말이다.

사람의 형체가 없고, 뼈만 있으니 눈물도 안나 욌다.

그날 아버님과 영원히 이별을 했다.


 의식 진행자 분의 지시대로  고인과의 관계에 따라 ‘서는’ 장소가 정해지고, ‘ 뼈 소개가 이어졌다.

젓가락으로 ‘뼈 한 조각’을 들어 올리더니 어머님께 말했다

“이건  제일 중요 부위**입니다”라고 가르쳐 주었다.

“아.. 소우데스까! (아 그렇군요) 마치 이런 대화는 이 장소에 꼭 필요한 듯, 진중한 얼굴로 손 움직임과, 머리 움직임을 최대한 천천히 하며 그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가 지금부터 ‘검은색’ 젓가락으로 뼈를 ‘항아리에  고인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몸의 순서로  항아리에  넣는 의식을 할 것이라 설명을 해 주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젓가락에서 젓가락으로 음식을 받는 것은 절데 안 되는 ‘예의’이다. 유골을 박스에 넣는 과정에서 젓가락 두 개를 사용하기 때문이란다)


감정적인 한국 사람은 한 명 까무러치거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통곡을 할 테니 이런 의식을 할 수 없겠다.



장남도 긴 검은 젓가락으로 ‘뼈 한 점을 들어 손바닥에 올리더니  자신의 고등학생 장남에게 보여주며 조용한 목소리로

“이 뼈 좀봐,  턱 뼈 같지? 한 점을 들어 손등에 올린 후,  둘은 유심히 눈을 뼈 가까이 대고, 과학탐구실 교실에라도 있는 듯  ‘뼈’ 구경을 했다.


그 당시에는 그의 행동이 이상하게만 보였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역시 눈물로 슬픔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슬프지 않을 리는 없다. 장례만큼은 자신이 치르겠다고 ‘고집’한 데는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정말 그냥 인간말종이라면 장례조차 참석 안 하면 그만인 것이니까.


남편은 아직도 따스해 보이는 작은 뼈 한 점을 들어 ‘ 흰색 티슈’에 쌌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프지 않는평안함을 빌었다.


감정적인 사람 없이, 침착하게 영원한 이별의 절차는 끝났다. 두 형제의 관계도 영원히 이별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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