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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Mar 29. 2024

나의 일본생활 5

나이 40에 첫 일어 면접


오후 2시 이민국 사무실은 전등불도 아까운지 어두컴컴했다.

30대쯤으로 되 보이는  남자직원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아소고니 스왔데 쿠다사이!” (저쪽에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

손으로 가리킨 철제의자는 오래되고, 딱딱해 보였다


죄진 것도 없은데 왠지 이민국은 외국사는 사람에게는 편하지 않는 곳이다.  이곳은 문제 있는 외국사람만 오는곳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컴퓨터 앞에 앉은 이민국 직원이 질문을 시작했다.


결혼하셨죠? ”

“네”

“ 몇 가지 질문을 할 테니, 대답해 주세요”

“네”

“주택구입은 하셨나요 “?

아니요”

“자가용은 있으십니까 “?

“아니요

“자신 명의 통장 및 크레딧 카드는 있습니까?”

“아니요”

“직업은 있으십니까?”

아니요



여기까지 대답하며, 나도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싶어 졌고, 아주 아주 많이 놀라고 있었다.

“지금까지 뭐 했지?“  내가 승려도 아니고..

진짜 소유물이 없네…

“왜 지금 까지 누구나 발급할 수 있는 통장조차 만들지 않았고, 무직으로 버티고 있었지?“



이것도 문제였지만, 나는  이 나라에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불법체류자 신세다.


며칠 전 집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여권을 확인했더니 체류기간을 4개월  ‘훌쩍’ 넘겨버린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3년씩 연장을 10년 한 후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깜박 잊고 있었다. 이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누가 그걸 매번 기억하고 신청을 가겠나!


그래서 난 ‘불법체류자’이므로 ‘추방’ 대상이다.

난 ‘배 째’라는 심정으로 당당하게 잊어버렸다고

고백했다.  까짓 거 애도 있는 엄마를 어쩔 거야!

다행히 ‘경고’ 먹고 추방당하지 않았다.



이민국 직원의  질문이 귓전을 맴돌았고, 꼭 내게

“당신은 빈털터리 40대 외국인 아줌마입니다”

라고 말 하는 것 같았다.



남들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자전거도 ‘전자동’을 타는 동안 나는 그중 그 어떤 것도 가지지 못했다.

무슨 용기로 ‘무일푼’ 주제에 이 나이 먹도록

‘만사태평’으로 살고 있었을까! 한심 하기까지 했다.

나는 이제야 재물에 눈을 떴다! 누군가 그랬다. ‘재산이란 삶의 ’ 열매‘라고! 우리는 열매는커녕 싹도 없다.

부자는 못되더라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살려면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삶의 필수품 ‘돈’을 벌어야겠다.



여보 우리도 집 살까?”

돈이 어디 있어?”

맞어, 돈이 없지”… 그럼 나도 아르바이트할까? “

앗싸리 치워 그건! 여기가 미국인줄 알아?  너를 개처럼 부려먹을 거야.

그럼 어떻게 해! 애도 크고, 이제부터 돈들일 엄청 많을 텐데…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그냥 집에 있어. “..


나는 마음을 굳혀 먹었다.

애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만이라도 일을 해야겠다

그런데, 나이 많고 일본어 잘 안되고, 기술도 없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일본생활 10년 차 친구에게 상담을 했다.

“가깝고, 짧은 시간에, 애가 아프거나 하면 얼른 뛰어 올 수 있는 그런 알바 있을까?”

나도 예전에 한적 있는데, “100엔 가게” 어때? 주부들이 애들 학교 보내고 출근하기 좋은 것  같아! “

“외국인도 써 줄까?”

“그럼~ 일본은 그런 차별 별로 없어! “

“그래?”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용기 내어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등록’을 마쳤다.

며칠이 지나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모시 모시!”

김므상노 오 댕와데 마찌가이 나이 데쇼우까?

(김상 전화 맞지요? “)

아! 네, 저예요.”

내일 면접 오실 수 있겠어요?”

“네”


진짜 외국사람도 시켜 주나 보다!  야 호!


블루 스트라이프 셔츠에

잘 빠진 곤색 바지를 두 줄 ‘쫙’ 세워 입고

검정단화에 금색 장식이 달린 ‘외출용’ 단화를 신었다.  (이 면접 옷은  상당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몇 년 지난 후에 깨달았다)


그리고 ‘자필’로 쓴 ‘이력서’도 물론 빼먹지 않고, 가방에 넣었다. 한문을 섞어 쓴 자필 소개서는  ‘삐뚤빼뚤‘ 했지만 어쩌랴, 내 일어의 한계인 것을.

일본은 촌스럽게 아직도 이렇게 손으로 써오라고 한다. (2024년 현재까지)



“여보 면접 갔다 올께“!

남편은 대답대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 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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