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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Jan 24. 2024

일본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1

머리카락

시력이 양쪽 1.5였던 나도 이젠 노안이  생긴 후 갈색 마룻바닥에 떨어진 수천 개의 강아지 털이 이젠 잘 안 보인다.

참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왜냐면 남편 말대로 라면 나는 결벽증이 있다. 내가 참을 수없이 화나는 결벽증 증세의 대부분은 부엌바닥에 시어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면서 흘린 흥건한 물과, 집안 이곳저곳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했을 때이다. 이 둘 중 더 열받는 하나를 고른다면  부엌 마루 바닥에 고여있는 물이겠다. 왜냐면 바닥에 물이 있으면 금방 알 수 있고, 밟았을 때 척척함은 정말 분통이 터진다. 머리카락처럼 작은 물체들은 잘 안 보이니까 참을만하다.


노안이 있으니 자잘한 더러움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도 없다.  그래도 가끔  얼마나 집이 더러운지 확인하고 싶을 때는 +1.7 안경을 쓰고 세심히 마루 바닥 관찰을 해본다.

보이지 않아 몰랐던 수천 개의 머리카락들이 마루 바닥이며,  밥그릇 닦는 행주, 옷가지, 이불, 쿠션, 소파 어디든 강아지 털이 뒤엉켜있는 것을 확인하면 그날은 대청소 날이다.   


노안이라 잘 안 보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 하고 안도할 때도 있다. 피곤한 날은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력이 젊었을 때 그대로라면 나이 먹고 체력도 딸리는데, 청소로 하루를 보내야 할게 아닌가.


나는 아직도 바닥을 물걸레 청소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털이 무지막지하게 빠지는 검둥이 닥스훈트는 털만 빠지는 게 아니라, 뭔지 모르는 액체? 같은 것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손걸레로 아무리 해도 강아지의 비릿한 냄새를 지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내 아들 같은 놈이 흘린 거라 아무런 미운 감정이 들지 않는다. 이놈이다

이 사랑스러운 놈 때문에 매일 청소해야 한다.


물걸레 청소를  시작함과 동시에 발견되는 하얗고 억센 50센티 정도의 단발머리 인간의 머리카락이 어김없이 눈에 띈다.

강아지의 수천 개의 털을 청소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 흰머리 카락에는 난 상당히 민감하다. 이 흰머리가 나는 왜 이토록 짜증 나고 싫은 걸까? 그냥 사람 머리카락인데… 특히 내 검정바지에 흰 머리카락이  붙은 것을 발견했을 때는 한마디 한다.

에이 씨..


우리는 4명이 한 집에 산다. 나. 남편. 딸. 시어머니.


나와 시어머니는 단발머리, 남편은 숏, 십 대인 딸은 롱 헤어이다.

시어머니가 머리 염색을 갈색으로 하던 2년 전  까지는 혹시나 밥에 갈색 단발머리 머리카락이 발견되는 끔찍한 일이 생겨도, 나 or시어머니의 것일  가능성이 많았지만 별 생각이 없었다. 이젠 백발로 변신한 시어머니의 머리카락 색은 분명해졌고 이젠 발견과 동시에 흥분된다.

나는 시어머니 머리카락이 말도 못 하게 밉다.


그렇다. 나는 시어머니의 흰머리가 미운게 아니라 시어머니가 미운 것이다.

그놈의 굵고 억세고 살짝 컬이 있는, 아주아주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을 집어 들면, 고집쟁이에 단단하고, 며느리 말을 귓등으로 도 안 듣고, 아시아는 전부 일본 보다 한수 아래가 정도가 아닌, 더럽고 여행으로 가볼 만한 가치도 없는 나라인 양 말하는 시어머니를 느껴지게 하기 때문 일거다.


그녀의 힌 머리카락은 손으로 주으면 잘 주워진다. 굵기 때문인가? 85년 짜리라서 인가?  좀 무게마저 느껴진다. 고데기로 말아서 고상하게 컬이진 모습이 더욱 밉다.


늙은 노인을 면전에 대놓고 신경질을 부릴 수 없으니 뒤에서 머리카락에 분통을 터트리는 것이다.

방을 닦는 구석구석 참 많이도 발견된다. 점점 화도 치밀어 오른다.


이렇게 많이 빠지는 이유가 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외출을 하시는 어머니에게 뒤통수 쨍 배기에 85년간의 배겟자국으로 인한 탈모증은 엄청 스트레스를 주는 모양이다.

천장만 보고 똑바로 자면 탈모가 오는 것을 배웠다.


그 뒤통수 탈모를 가리기 위해 두 개의 거울을 두고 백발을 빗고 또 빗고 이리저리 핀을 꽂아 고정을 시키는 과정에서 대량의 백발이  빠져 나를 열받게  하는 것이다.

뒤통수를 가리느라 정신이 팔려서  앞머리도 이상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뒤통수만 신경 쓴다. 앞머리는 더욱 이상해 보이지만 내 문제가 아니다. 그 이상함을 고쳐줄 만큼  사랑이 남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친엄마라면 머리를 빗겨주고, 흰머리가 안타깝고, 탈모도 슬펐을게다. 그녀는 내 엄마가 아니다.


일본 사람들은 은근 남 신경을 아주아주 많이 쓴다.

그래서 주택생활이 많은 일본인들은 숨도 안 쉬는 듯 조용히 산다. 아무도 안 싸우고, 아무도 노래를 크게 듣지 않고, 텔레비전 볼륨은 10 미만이다.

귀를 기울여야 만 들을 수 있다.

그래도 우리 집 앞에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한 30대 남성은 집에 다리미도 없는지, 빨래를 한 장당 20번 정도 씩 털어서 빨래를 널곤 하는 진정 자신을 표현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사람들은 쥐 죽은 듯 진정한 남남으로 살고 있다. 그래도 아침에 만나면 굉장히 상냥한 듯 인사를 건네고 잠깐 날씨가 좋다는 둥 영혼 없는 헛소리를 하기도 한다.

 

시어머니와 동거는 4년째.

처음 3년은 이렇게 흰머리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다. 옛날사람 치고는 교육도 괜찮게 받았고, 일본식 거문고 가르치고, 무엇보다 연금을 많이 받으니 금전적으로 부딪칠 일이 없으니 문제가 일어나질 않는다. 간간히 싫을 때도 있었지만 최대한 만나지 않도록 행동한다. 연세 많은 그녀도 바쁘다. 주 5일을 체육관에서 살다 시피하신다.


일본식으로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하고 있다. 주택이 압도적으로 많은 일본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돈이 많으면 완벽하게 동선분리 형태의 집도 많이 짓지만, 현관을 두 곳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상당하므로, 우리는 현관은 하나로 선택했다.


같은 지붕아래 살지만 밥도 빨래도  모두 분리해서 생활하고 있다. 그게 가능하냐고? 물론 가능하다. 처음에는 밥을 같이 안 먹는 상황이 며느리인 나는 왠지 죄를 짓는 것 같았다. 한국 친척이 나를 소시오패스냐고 놀린 적도 있다. 나는 소시오패스는 아니고 그냥 뻔뻔해지고, 한국식  며느리의 탈을 결혼생활 20여 년 만에 벗을 수 있었던 것뿐이다. 이렇게 나를 변신하게 해 준 것에는 시어머니의 아들 공이 크다.

시어머니와 나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아들, 내 남편을 가스라이팅 할 뿐이다.


연세 많은 시어머니에게 대들고 일일이 티격태격하는 건 볼쌍사납고, 고상한 우리 시어머니는 나와 신경전을 벌일 때는 싸움을 하지 않고, 피하는 방식을 택하므로 나도 무시하고 2층으로 피신하면 분노는 어느 정도 사그라지며, 주택에 살고 있으므로

가드닝이 취미인 나는 땅이라도 파면 폭발할 것 같던 화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저녁에 퇴근하고 오는 그녀의 아들, 내 남편에게  오늘의 자잘한 사건을 살짝 부풀려서 조근조근 착한 척 피해자인 척 설명한다.


어김없이 내 편을 들어주는 그녀의 아들은 나를 애처로운 듯 봐주며 시어머니를 혼내? 주러 간다.

그의 멋진 뒷모습에 든든함을 느끼며 “너무 심하게 말하지 마!라고 말해준다.

내 남편의 처신은 아주 맘에 든다.  


어설프게 자신의 엄마와  아내의 중간 서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혼 전에 약속을 받아 놓은 게 있다. 결혼을 하면 아무런 연고 없는 일본에서 나는 살아야 하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내편 먹기로 말이다.

그 약속은 결혼 내내 지켜지고  있다.


가족이 모두 코로나에 걸렸던 4개월 전 어느 날 시어머니에게  서운함을 토로한 후, 나는 진정으로 시어머니가 한국인 며느리인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깨달았고 그날부로  나는 한국식 착한 며느리의 탈을 완전히 벗을 수 있었다.


연세 드신 시어머니가  아픈 다리로 저녁밥을 짓고 있더라도, 아주 평온하게 한국 친구와 전화 수다도 떨고, 넷플릭스도 평하롭게  본다.

나이 들어도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투철한 정신으로 밥도 직접 지어먹고, 자신의  빨래도 하면서 살아야 오래오래 장수하실 거야!  이렇게 된 것도 살아온 문화의 차이가 한 목 한다.

나는 옆에서 시어머니가 혼자 식사를 하는 걸 봐도 나의 마음은 평화롭다.


왜냐면 그녀에게 나는 철저하게 타인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누가 매일 식사대접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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