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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Feb 05. 2024

일본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3

mother in law. daughter in law


나는 방 입구에  쭈그리고 앉았다.


어머님 오늘은 제가 꼭 여쭈어 보고 싶은 게 있어요……



아! 그러니?  뭔데? 언제나 그렇틋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면서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항상 내가 문을 열면 어색함으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어머니 얼마 전에 우리 셋 모두 코로나 걸렸을 때 말인데요,…

그때 무척 힘들었어요.

근데 어머님은 왜 그렇게 저희들한테  무신경하셨어요?

어머님이  그럴 분이 아니신데 너무 이해가 안 가서요….


우리 셋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밖으로 사러 나갈 수도 없었잖아요. 가족이라면 힘들 때 조금이라도 도와주시는 게 맞잖아요?..

라고 여기까지 말을 하는 동안  시어머님은 시종일관 무표정하게 내 얼굴과 입만 보고 계셨다.  


화장기 없는 85살의  어머님은 정말 이빨 빠진 그냥 여자 노인 이셨고, 어안이 벙벙해 보이셨다. 얘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그런 표정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혹시 치매 걸리셨나?  생각했다.



내가 너무 돌려서 말했나?  


오케이!! 비교급으로 말해드려야겠구나!  


만약에 어머님이 몸이 많이 아프셔서 몸져누워계시고, 음식도 못 드시고 힘드실 때, 제가평소대로 하던 일 하면서 , 남의 집 일처럼 상관 않고 행동하면

어머님 기분이 어떻시겠냐고요. 등등 여러 가지 시종일관 낮은 톤으로 말했다) 이웃집에 들리면 창피하니까.


밥 차려주시는 게 힘들면 뭘 사서 오시든가, 주스라도.., 하물며 몸은 좀 괜찮으냐 물어보지도 않으셨고요.. 오늘까지.. 왜요?

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 흥분 상태라 숨이 가빴다.


어머님 표정이 아직도 나의 화난 얼굴이 이해가 좀 안 된 표정이었다.


드디어 한마디 하셨다!

왜 그러니? 내가 밥을 안 해줘서 그래?


그리고는 아무런 변명도 사과도 없었다. 얼굴도 평온해 보였다.


나는 허탈했다. 왜냐면 무슨 변명을 좀 하시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변명을 하면 반격할 말도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근데 예상외로  아무런 변명도, 그 일본인들이 퍽 하면 쉽게 내뱉는 “고멩네!”ごめんねー도 없었다.


뭐야! 동생이 내가 이 정도 말하면 어머님이 구구절절 변명 할 거랬는데?  아닌데? 그냥 멍해 보였다.


어머님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러 생각을 하면서 어머님 얼굴을 보면서  이건 뭐지?  어머님은 아무 생각 없었잖아? 애당초에.


순간 그동안 화났던 내가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왜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시어머님께 뭔가 바라는 게 있나? 왜?


           시 어머니    =    mother in  law
             며느리.    =    daughter  in law

보라!   


뒤에 법이란 단어가 붙어있잖은가!  영어가 제일  설명이 확실해서 좋다.

법이 억지로 맺어준 관계인 것이다. 우리는 이 단어를 절데 잊어서는 안 된다.ㅎ


우리 사이에는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는 순간 서로 미워하고 왜? 가 시작된다. 남이 나 아플 때 밥 안 해준다고 비난하나? 남이 주스 안 사 왔다고 욕 하지 못한다.  한 번이라도 사 와주면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 생각하면 어머님께 섭섭할게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나의 옹졸함과 치졸함 때문에 자매들에게 또는 친구들에게 나의 시어머니를 욕했던 것이다.


어머님은 우리의 관계를 나보다 훨씬 빨리 깨우친 어른이신 것뿐이다.

나한테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으신 게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나는 사실 일찍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정이 그리웠다… 결혼할 때 시어머니를 내 엄마처럼 생각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바보!


시어머니가 어머니가 될 리 없고, 며느리가 딸이 될 수 없는 건 진리이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을 해서도 안된다. 사람은 기대가 있는 상대에게 섭섭함을 느끼는 법이다. 나는 무언가 시어머님께 기대했던 것이다. 법이 정한 가족(타인)에게 말이다. (시 어머니) 시를 뺀 (어머니)로 착각도 하며, 내가 편한 순간에 (어머니로 ) 때로는  미운순간에는 (시어머니로)  내 맘대로 우리 관계를  정의하며 미워하고 서운해했던 것이다.


사람이 한집에 산다고 다 찐 가족이  되는 게 아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 생각하는 방식도 다른데, 내가 생각하는 가족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나는 한국사람. 어머님은 일본사람


그동안 나는 많은 착각을 했다. 어머님은 나에게 바라는 게 하나 없다. 어머님 식사 그릇을 치워주는 것도 절데 용납하지 않는 분이다.

자신이 먹은 것이니 자신이 치우셔야 직성이 풀리고, 명절에 함께 먹을 식사를 준비해 대접하면 꼭 “고맙다 ”인사를 하시고 내가 의자에 앉아야 음식을 드신다.  그리고 절데 남기시지 않는다. 만든 나를 의식하신다.


우동 한 그릇을 얻어먹어도 불편한 기색이 역역 하다. 왜냐면 남이 식사를 대접하니 얼마나 고마운가!

참으로 깍듯한 시어머니시다.  



가끔 생각해 본다. 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나한테 돈을 달라고 하시나, 밥을 해달라고 하시나, 빨래조차 2층까지 힘든 몸을 이끌고 올라와하신다.

몸에서 나쁜 냄새라도 날까 봐 하루도 빠짐없이 목욕하시며 , 아침에는 어김없이 세팅된 단정한 머리에 완벽한 화장을 하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불만은

백발이 마룻바닥에 좀 떨어져 있다고, 물과 기름을 부엌바닥에 흘리며 밥 한다고, 또는 위험한 2층까지 계단으로 빨래를 끌고 올라가 널어준다고 시어머니를 미워한다…


미운 시어머니의 행동을 긍정 관점으로 보면 이렇다


백발이라도 몇 번을 빗어 예쁘게 구르프 말아 예쁜 할머니로, 아름다운 노인이  되려고 노력하시니 다행이고, 혼자서 어떻게든 일하는 며느리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물과 기름으로 난장판이 되더라도 식사를 준비해 드시니 감사하고, (그까짓 바닥 물, 기름을 닦으면 된다)

바쁜 나를 위해 빨래까지 널어 주시니 감사하다.

이런 발상으로 나는 바뀌어야 된다.



나는 이제 내가 바뀌기로 결심했다.  물과 기름으로 범벅이 된 부엌을 보며 아주 잠시 분개하다가, 이내 아이쿠! 오늘도 진수성찬을 해 드셨나 보군! 조금 분통을 가라앉히고 마룻바닥을 무념 상태로 닦는다. 내가 차려드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진심 감사해야 한다. 삼시세끼 차려야 한다면 나는 아마 스트레스로 제정신이 아닐 게다.


요즘은 한국도 많이 바뀌어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 되었다.  한국을 떠나온 게 너무 오래되어 잘은 모르지만, 일본에서 만난 한국 동생들에게 부모님이 연세 많이 드시면 어떻게 할 거야? 질문을 해 본 적이 있다. 일초의 망설임이 없이 “양로원 가셔야죠”!라고 했다.  나는 살짝 놀랐다. 그리고 이건 아주 복잡한 문제 이므로 어떤 대답을 했건 틀린 답도  정답도 없다. 어려운 숙제이다.


다만 나는 이리도 별일도 아닌 것으로 짜증도 내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난 나의 시어머니, 내 남편의 어머니를  간단하게 양로원 모셔야지!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양로원 모시는 이외의 방법은 없을까? 고령사회에 해결이 어려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이 늙으면 모두 양로원 가서 죽음을 맞이해야 마땅한가? 그럼 내가 늙으면?

쉽게 양로원 소리가 안 나오는 게 맞다.  


한국에서 아버지가 풍경 좋은 양로원에서 5년을 보내시다 돌아가셨다. 정말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


(어두운 방 한구석 일인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시던 모습에 발길이 떠나질 않았다. 7남매도 도리가 없었다( 자식이 많아도 소용없다)

(마음속으로 자식들에게 버림받았다 생각하셨으리라 짐작한다)


나는 시어머니를 최후까지 내 손으로 돌볼 수 있다고 장담은 절데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쓸쓸한 양로원에 가라고 잔인하게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우리는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내가 왜 아플 때 그리 나를 서운하게 했냐고 토로한 후 이틀 뒤였다.


무거워 보이는 복숭아, 자두, 멜론이 들어있는 과일 박스를 직접 슈퍼에서 구입해 들고 오셨다. 무거워서 땀을 뻘뻘 흠뻑 흘리신 듯했다.


. [”겐짱!  이라고 나를 부르신다. “겐짱은 자두를 참 좋아하지! 무거웠지만 사 왔어 “]라고 했다.


아! 네…


잠시 후 딸을 불러 자두를 깨물어 먹으며 딸에게 말했다. (“ 내가 자두 좋아하는 건 아네”! )딸이 웃었다. 자두 4개를 단숨에 먹어 치웠다.


코로나도 회복했고,  내 마음도 저 무거운 과일을 들고 온 할망구를 생각하며 조금 치유되었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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