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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rious Apr 22. 2024

기억되는 방법

여행과 질문 - 3

2024. 03. 20. 베르사유 정원에서

'미루나무 따라, 큰길 따라,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따라.' - 양희은 '내 어린 날의 학교'


기찻길을 따라, 이름 모를 풀 숲 위 포플러 나무들, 그럼에도 하늘만은 같은 파란 하늘이다. 가깝고 멀다지만 결국엔 모두가 같은 하늘 아래인 것. 종종 잊지만 변하지 않는 것. 우리는 우리의 정신보다 작은 몸 안에, 우리의 야망보다 작은 세상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 우주가 무한히 넓고 팽창하는 것은, 그 안에서 자라나는 우리들의 마음 모두를 담아내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 추억, 향수>

사람의 감각 중 기억과 가장 가까운 것은 후각이다. 어느 날 우연히 지나던 길가에서 맡은 향수 냄새, 빵 굽는 냄새, 비에 젖은 흙냄새처럼 흔한 내음들 속에서도 떠오르는 특별한 기억들이 있다. 


젖은 나무와 흙, 꺼진 촛불, 커피와 담배 향에 젖은 서고의 냄새. 무언가 기억하기 위해, 추억하기 위해 냄새를 맡고, 누군가에게 어떠한 향기로 기억되고 싶은지도 고민해 볼 일이다.


<기억되고 싶은 냄새 관하여> - Frank Sinatra "That's Life"

베르사유 정원에서 쏟아지는 3월의 햇살은 어느덧 더 강렬해졌다. 물길을 따라 걸으며, 내 자리를 스스로 정해 앉는다. 물 위에 오리 한 쌍이 떠 지나간다. 베르사유의 기억은 어떤 냄새로 기억될까. 흙, 나무, 물 비린내뿐일까.


향기와 함께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메마른 모래를 만지며 놀던 시기, 흙 내음과 함께 떠오르지만, 이름은 기억할 수 없는 익숙한 얼굴들, 여름바다에서 터뜨린 폭죽들의 미세한 화약냄새, 풀꽃 내음과 함께 떠오르는 사람들과, 기억, 추억, 향수, 그리움.


그들에게 나는 어떠한 냄새로 기억되고 있을까. 저녁노을과 같은 향취일까, 축축한 곰팡이 내음일까, 알코올의 톡 쏘는 휘발성 냄새일까, 코 끝을 찡그리는 담배 냄새일까.


- Train "Hey, Soul Sister"

호수의 표면 위에 잔잔한 물결 위에 햇빛이 쏟아지고 부서지며 반사된다. 햇빛을 피해 고개를 숙여도 수면에 부딪힌 햇빛에 다시 눈가를 찔린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에는 '수면이 울렁이는 물가의 햇빛'도 있었다. 


기억되고 싶은 것과 기억되어지고 싶지 않은 것. 간직하고 싶은 사람과 잊고 싶은 사람. 남기지 못한 말들, 버리지 못한 말. 이따금 기억의 휘발성에 기대어 추한 모습을 숨기고, 또 가끔은 역으로 기억하려 애쓰며 들숨과 날숨을 반복한다. 기억과 망각이 모두 한 종류의 축복이다. 더 이상 담아낼 수 없을 때까지 지금의 기억을 들숨. 들이마시고, 들이키고, 조금 참았다 다시 들이마신다. 욕심껏 이곳의 공기를 한가득 들이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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