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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뚜기호롱불 Jun 15. 2022

3편. 제가 와이프를 죽인 건가요?

백혈병 환자... "여보, 제 팔다리 좀 잘라주세요."

“여보, 제 팔다리 좀 잘라주세요.”


모두가 잠든 새벽, 콜(Call)을 받고 찾아간 병실에서 들려오는 환자의 목소리다. 

그 옆에서 남편은 환자의 귀에 끊임없이 “정신 좀 차려봐…….”라고 속삭이고 있지만, 

환자는 여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쉰 목소리로 같은 말만 중얼거린다.


“여보, 제 팔다리 좀 잘라주세요. 제 팔다리 좀 잘라주세요. 제 팔다리 좀 잘라주세요……”


***


백혈병 환자였다.

남편 말로는 백신을 맞은 날 밤에 다리가 조금 저렸는데 그게 며칠 만에 몸통을 타고 올라오더니 이내 곧 팔다리의 감각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몸 곳곳에 생기는 멍을 발견하고서야 병원을 급히 찾았고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검사를 받으며 치료를 위해 대기하던 몇 주 사이에 환자는 목 밑으로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래도 성인에게는 드물지 않는 병인 데다 치료 효과도 좋은 편이라는 말에 항암 치료를 받으며 골수 기증자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환자가 팔다리를 누군가 마구 찌르고 있다며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막상 실제로 만지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데, 밤만 되면 움직여지지 않는 팔다리 때문에 몸부림도 치지 못한 채 눈물만 줄줄 흘리면서 고통을 토로했다. 병원에서는 백혈병으로 인한 일종의 ‘환상통’이라고 설명하며 마약성 진통제 주사를 주입했다. 일반적인 환상통이라면 마약성 진통제에 조금은 진정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환자는 거듭되는 주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가 찌르고 있다고 외쳤다.


점점 진통제 용량을 늘릴 수밖에 없었던 의사는 통증을 조절하기 위한 진통제 양이 너무 많아지면 항암 치료와 골수이식을 진행할 수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내가 이 또한 금방 이겨 낼 것이라 믿은 남편은 의사에게 지금은 우선 고통만 없게 해달라고 대답했다. 일단 통증부터 가라앉히고 차후에 완전히 회복되었을 때 치료를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어느 용량 이상의 진통제가 들어가자 환자는 갑자기 의식을 까무룩 잃어버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환자를 살폈고, 몇 시간 동안의 검진 끝에 진통제의 용량은 다시 줄여졌다. 그제야 환자의 의식은 되돌아 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고통 또한 다시 시작되었다. 원점이었다.


고작 진통제 몇 mg의 차이로 아내는 고통으로 소리 지르는 날과 반송장같이 누워만 있는 날을 반복했다. 

믿음과는 다르게 버티지 못하는 아내를 보면서도 남편은 여전히 항암 치료와 골수이식을, 그녀를 살릴 수 있는 치료를 포기하지 못했다. 의사에게 “종일 반송장처럼 누워 있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긴 논의 끝에 마약성 진통제 주사도 중단해 보았다. 대체 주사제로 여러 종류가 들어갔지만 마약성 진통제만큼 통증을 덜어주는 약은 없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남편은 같이 백년해로하자며 미소 짓던 몇 달 전의 아내를 떠올릴 때면, 그녀가 그 웃음을 다시 지어 줄 거라는 믿음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


그 믿음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환자의 환각과 같은 고통이 오늘처럼 표현되면서부터였다. 

환자는 이제 버틸 힘도 떨어졌는지 밤마다 팔다리를 좀 잘라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못한 지가 벌써 몇 달째. 환자는 이미 쉬어버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보, 제 팔다리 좀 잘라주세요. 제 팔다리 좀 잘라주세요. 제 팔다리 좀 잘라 주세요…….”


막상 다음 날이 되면 본인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했다. 

지난밤의 고통을 증명하는 건 환자의 눈물로 흥건히 적셔진 베갯잇과 남편의 퀭한 눈뿐이었다.


더 이상의 연명(延命) 치료는 무의미함을 남편은 그제야 절실히 느꼈다. 아내가 밤에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기만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명의료중단동의서를 작성한 뒤 여기저기 전전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병원에 정착한 상황이었다.


***


지난주까지는 밤에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던 환자였는데 요 며칠은 다시 첫날 밤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혈액종양내과, 재활의학과, 정신과, 정형외과 등 ‘팔다리 통증’이라는 증상으로 진료를 볼 수 있는 모든 과에 의견을 물었지만 결국 해결 방법은 하나로 모였다.

“마약성 진통제를 안정될 때까지 늘리세요.”

남편은 많은 교수와의 면담을 통해 마약성 진통제가 들어가는 것이 단순히 마약에 중독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과 암 환자들에게는 흔히 사용되는 치료약인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마주했던 부인의 ‘반송장’ 같은 얼굴을 다시 보기가 두려운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허옇게 뜬 얼굴로 턱을 꽉 문 채 머리를 부르르 떠는 아내의 모습을 남편은 더는 견디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냥 재워 주세요…….”


고용량의 마약성 진통제에 약에 취한 것처럼 잠든 환자였어도, 고통에서 해방된 얼굴은 금방까지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환자의 고통은 빠르게 안정되었다. 남편은 걱정 끝에 내린 결정이 그녀를 편하게 해주었다는 생각에, 종일 잠만 자는 아내의 모습에 눈물을 훔치면서도 안정되어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너무 빠른 안정이었다. 

오히려 이전 기록들보다 적은 용량의 주사가 들어갔는데도 환자는 이때까지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쉽게 진정되었다. 이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임종이 직전까지 다가온 때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제야 겨우 숨을 돌리는 그 순간에 그가 또다시 오열할 것이 분명할 이 현상을 설명하려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설명을 늦출 수도 없었다. 이것을 설명하면 흔히 어떤 질문이 돌아오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질문에 담겨 있는 잘못된 죄책감에서 그가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줘야만 했다. 그것 또한 나의 책임이었다.


남편은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제가 와이프를 죽인 건가요?”


수십 번 들어왔지만 매번 가슴에 아프게 꽂히는 질문이다. 의학적인 설명도 해보고, 사실적인 말도 해보고, 감정적인 위로도 건네봤지만 보호자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이 환자의 안녕만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이미 그도 알고 있기에 기다려 주면 보호자는 다시 안정을 찾을 것이다. 그저 내 할 일은 기다리는 도중에 아내가 남편을 떠나지 않도록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이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환자는 세상을 떠났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보다 남편은 그녀를 덤덤하게 보내주었다. 물론 속은 문드러졌겠지만.


그가 그녀의 옆을 지키며 죄책감을 느꼈을 수많은 상황에서 이제는 벗어났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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