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이마에 왕(王) 자가 새겨진 이유, 알고 있니?
호랑이 이마에 콩
호랑이 이마에 왕(王) 자가 새겨지게 된 이야기 들었니? 하늘 위에서는 정말 유명한 이야기인데, 하늘 아래 아이들은 알고 있는지 궁금해서 이야기를 내려보내!
옛날 옛날에 하늘 왕님의 사고뭉치 막내아들이 있었어. 하늘 왕님은 500명이나 되는 자식들 중 그 아들을 제일 좋아했지. 왜냐면 정말, 정말로 귀여웠거든. 볼은 제철 복숭아 끝부분같이 발갛고 코는 파도에 오랫동안 깎인 돌처럼 둥글었어. 손은 어떻고, 단풍잎같이 작았지. 그 귀여움에 왕뿐만 아니라 다른 손윗 형제자매 모두 막내를 귀여워했어. 그러던 중 그 사건이 벌어진 거야.
그날 송이는 너무 심심했어. 평소에도 늘 심심했지만 그날따라 유독 그랬던 거야. 그래서 또 장난을 쳤지. 시종들 빨랫감에 먹 뿌리기, 누나들 도서관에 들어가 책장 넘어뜨리기, 형이 아끼는 마차 바퀴 빼놓기…… 송이가 친 사고들을 본 누나와 형 그리고 시종들은 하늘 왕에게 가 하소연했어. 하늘 왕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머리가 너무 아팠어. 동시에 자기가 너무 송이를 오냐오냐 키운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 그래서 송이에게 명령했지.
“송이, 내 너를 뒤늦게 얻어 오냐오냐 키웠더니, 버릇이 아주 없어졌구나!”
송이는 콧방귀를 헹 뀌었어. 어차피, 아버지는 자신을 혼내지 않을 걸 알거든! 그래서 혼나면서 궁전의 천장 무늬를 세기도 하고 바닥에 발을 콕콕 찍기도 했지.
“……그러니! 내게 26번째 누나가 가꾸던 숲을 100년간 돌보도록 시키겠다!”
송이는 멍을 때리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펄쩍 뛰었어. 하지만 어쩌겠어. 하늘 왕의 미간은 매우 주름 잡혀 거친 파도처럼 꿈틀거리고 있었어. 송이가 털썩 주저앉자 시종들이 송이에게 와 비단옷을 벗기고 풀을 엮어 만든 숲지기 복장을 입혔어. 옷을 다 갈아입자 발밑 구름 바닥이 몽글몽글 요동치더니 송이를 쏙 빠트렸지. 송이가 엉덩이를 콩 부딪치며 도착한 곳은 숲이었어. 그것도 아주 커다란 숲. 송이는 곰곰이 생각했어. 100년 동안이나 이 숲에 잡혀 있는 건 싫었거든. 그러다 생각한 것이 이것이었어. 숲을 아주아주 잘 가꾸고 예쁘게 해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는 것! 그러면 아버지가 100년에서 50년은 안돼도 70년쯤으로는 줄여줄 수 있을 것 같았어. 송이는 숲을 잘 돌보기로 결심했지.
송이는 그렇게 숲에서의 첫 번째 봄을 맞았어. 숲의 봄은 아름다웠어. 발밑에 연둣빛 풀들이 소복이 자라나고 색색의 나비들과 벌들이 부지런히 날아다녔어. 나무들은 촉촉했고 나무 그늘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 들은 따뜻하고 이슬에 반짝반짝 빛났어. 송이는 비록 벌로 오게 되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숲에서라면 100년 정도는 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했어. 점점 생기는 애정에 송이는 열심히 숲을 돌보았어. 처음에는 당연하게도 쉽지 않았어. 진흙을 맨발로 밟기도 했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나무 밑동 구멍에 몸을 숨겨야 했지. 하지만 숲을 돌보면서 동물들을 지켜보고. 날이 갈수록 보람이 늘어가는 것에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어.
그러던 어느 날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는 걸 보게 됐어. 호랑이의 커다란 입이 토끼의 목을 물었지. 우두둑. 소리와 함께 토끼는 몸을 축 늘어뜨렸어. 핏방울이 연둣빛 잔디에 떨어졌어. 송이는 그 호랑이가 두렵거나 하지는 않았어. 다만 그 호랑이가 숲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온통 초록 노랑 하양인 숲이란 그림에 누군가 빨강 물감을 묻혀 마구 붓질을 한 것 같았어. 그건 아름답지 않았지.
“너는 왜 작은 동물을 죽여 이 숲을 망치느냐?”
“숲을 망치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제가 숲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송이는 호랑이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 어떻게 동물을 죽이는 게 숲을 지키는 일이야? 송이는 아버지가 내려주신 숲을 돌보란 임무를 다하기로 했지.
“너는 너보다 약한 동물을 죽여 잡아먹고사는 아주 나쁜 동물이다. 네가 그 잘못을 깨닫기 전까지 먼바다로 유배형을 처하겠다. 다른 육식동물들은 죄질이 너만큼은 나쁘지 않으니 숲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끝내겠다.”
호랑이는 황금색과 갈색이 섞인 눈으로 송이를 노려봤지. 보송한 손에서 난 날카로운 손톱이 바닥을 긁었어. 송이는 말을 덧붙였어.
“다만 숲은 고향이므로 10년에 한 번씩은 돌아올 수 있게 하마. 이제 그만 가거라. 어떤 변명도 듣지 않겠다."
호랑이는 반쯤 먹은 토끼를 마저 물고 사라졌어. 꼬리와 어깨가 축 처진 모습이었고, 흙에는 깊이깊이 발자국이 찍혀있었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숲에선 모든 육식동물들이 사라졌어.
송이는 육식동물들이 사라진 숲이 만족스러웠지. 사슴과 다람쥐, 토끼들이 안심하고 숲을 종종 뛰어다니며 풀과 산딸기, 도토리를 주워 먹었어. 그들이 옹기종기 꽃밭에서 노니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림같이 아름다운 숲 풍경이라 송이는 흡족했어.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반대편 바닷가 쪽의 척박한 숲에 육식동물들과 호랑이 가족이 정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지. 물론 그걸 그다지 신경 쓰진 않았어. 어쨌든, 그들이 가고 숲은 아름다워졌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어. 육식동물들이 떠나고 나서부터 20년 동안, 초식동물들이 매우 많이 늘어났어. 아기 사슴들과 토끼들이 생기고, 그들이 자라고, 또 새끼를 낳았지. 그들은 풀을 열심히 먹었고, 풀밭에 풀을 다 먹어 듬성듬성 해지자 꽃을 뜯어먹기 시작했어. 그리고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먹기 시작했지. 결국 숲에는 연두와 초록은 사라지고 갈색만 남게 되었어. 송이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 어차피 봄이 되면 다시 풀과 꽃들이 자라니까. 겨울을 조금만 더 버티면 이 문제는 해결될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봄이 왔을 때 송이는 무언가 일이 잘 못 되고 있다고 느꼈어. 봄에 자라난 풀들이 예전에 자랐던 풀들보다 훨씬 적은 거야. 꽃도, 꽃 없는 들판에 나비와 꿀벌들은 찾아오지 않았어. 그렇게 해가 지날수록 점차 풀은 줄어들었지. 송이는 풀을 늘리기 위해 다른 곳에서 풀을 가져와 숲에 심기도 하고 나비와 꿀벌들에게 찾아와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어. 하지만 심겼던 풀은 제대로 뿌리내리기도 전에 배고픈 동물들에게 먹히고, 나비와 꿀벌들은 그곳의 초식동물들이 꽃까지 다 먹어 수분할 꽃이 없다며 거절했지. 송이는 그제야 호랑이를 떠올렸어. 호랑이와 육식동물들. 그들이 없어져서 초식동물들은 줄어듦 없이 계속 늘어났던 거야, 결국 풀보다 그걸 먹을 동물들이 많아졌고. 풀을 다 먹고 꽃도 먹었기 때문에 나비와 꿀벌들이 수분할 꽃이 없었고. 숲은 그렇게 연두와 초록을 모두 잃은 거야.
송이. 자신의 선택 때문에.
송이가 그 사실에 괴로워할 때 숲 동쪽 편에 살던 새끼 사슴이 결국 굶어 죽었어. 송이는 죽은 사슴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지. 삼일 밤낮 사슴을 안고 울던 송이는 호랑이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어.
호랑이는 바닷가 한구석 동굴에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어. 바다에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아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해서 호랑이의 털은 늘 바닷물에 젖어 엉켜 붙어있었어. 호랑이는 마음껏 뛸 수 있는 숲의 들판이 그리웠어. 이런 모래사장 말고 말이야. 호랑이가 발톱으로 물고기 비늘을 긁어내고 있을 때, 송이가 동굴 벽을 노크했어.
“호랑이 씨 계십니까,”
호랑이는 어슬렁어슬렁 꼬리를 흔들며 입구로 다가갔어. 사실 호랑이는 10년 전 숲에 갔을 때, 송이가 언젠가 자신을 찾아오리란 걸 알았어. 숲의 모습은 자연의 규칙을 거스르고 있었거든. 호랑이는 알고 있었어. 그저 자연스러운 대로 둬야 한다는 걸. 호랑이는 이 사실을 자신의 아버지 호랑이에게 배웠고, 아버지 호랑이는 할머니 호랑이에게 배웠다고 했어. 할머니 호랑이도 누군가에게 배웠다고 하니까 아주 오래된 거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송이에게 화난 게 풀렸다는 말은 아니야. 10년간 물고기만 잔뜩 먹으면서, 육식동물들과 고생을 했지. 그래도 송이의 공손한 태도에 기분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어.
“정말 미안합니다. 호랑이 씨. 숲에서 멋대로 쫓아낸 것에 대한 사과를 하러 왔습니다. 당신이 사라지고 나서 숲은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완전히 망가졌죠. 저는 그 숲을 되살리고 싶어요. 그러려면 호랑이 씨가 필요합니다.”
송이는 정중히 호랑이를 불렀어. 호랑이는 송이의 태도에 마음이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했어. 사실 호랑이와 육식동물들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거든. 숲으로 가면 초식동물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너무 유혹적이었어. 하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을 그어야 한다는 생각에 순순히 굴지 않기로 했어.
“어흥. 숲으로 돌아가라니요. 숲에서 쫓아내셨잖아요. 제가 토끼를 잡아먹는다고요.”
"그것은 제가 숲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았기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다신 그러지 않겠습니다. “
송이는 눈에 눈물을 송골송골 맺혀가며 호랑이를 설득했어. 호랑이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지.
“어흥. 그것은 송이님이 숲지기를 하는 동안의 이야기 아닙니까? 나중에 누군가 또 숲에 손을 댄다면 숲은 또다시 망가질 것입니다.”
송이는 어느새 털이 보송한 호랑이의 손을 붙잡고 있었어. 그리고 곰곰이 고민하다 결심한 듯 말했지.
“자연의 규칙을 어기지 못하도록 호랑이 가족들이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호랑이는 숲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다른 누군가 그 규칙을 망치는 것을 막을 힘을 드리겠어요. 누구도 사냥을 막지 못하도록 말이에요.”
호랑이는 어리둥절했지만 정말 그런 힘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았어. 그래서 그 힘을 주면 자신은 사과를 받아들이고 육식동물들과 숲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 송이는 곧바로 하늘 왕을 찾아갔어. 송이는 호랑이와 호랑이 가족들도 데려갔어. 송이는 하늘 왕에게 자신의 지위의 일부를 호랑이에게 넘겨달라고 부탁했어. 하늘 왕은 어느새 성장한 자신의 아들의 모습에 그 청을 들어주기로 했지. 송이는 호랑이에게 숲에서의 왕족과 비슷한 지위를 주는 대신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기로 했어. 언젠가 먼 미래에 하늘 왕이 왕위에서 내려오면 자식들이 왕이 될 수 있는데, 송이는 그걸 포기한 거야. 정말 큰 대가지. 하늘 왕은 송이에게 왕만이 쓸 수 있는 옥새를 빌려주었어. 송이는 호랑이 가족들을 한 줄로 서게 한 뒤 옥새에 검은 먹을 묻혀 그들의 주홍빛 이마에 콩콩 찍었어. 이마에 선명히 왕(王) 자가 찍혔지.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
“호랑이,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하늘 왕의 이름으로 숲의 규칙을 지킬 때는 왕족과 같은 지위를 가진다. 그 누구도 사냥을 막아 숲의 규칙을 거스를 수 없다.”
이렇게 큰 대가를 내놓은 송이를 보고 마음이 움직인 호랑이 가족들과 육식동물들은 숲으로 돌아갔어. 그리고 사냥을 시작했지. 송이는 한동안 배불리 먹지 못한 육식동물들이 초식동물들을 모두 잡아먹음으로써 그들이 아예 사라질까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이 돌아오자마자 초식동물이 주는가 하더니 일정한 수를 유지하지 뭐야? 그리고 매해 시간이 지날수록 숲이 조금씩 돌아왔어. 이십 년간 사라진 것들이 돌아오기에는 오래 걸렸지. 거의 송이의 산지기 벌이 끝날 때까지였어.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돌아왔고 송이는 다시 봄의 아름다운 숲을 볼 수 있었어. 그리고 숲을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것에 호랑이 가족들이 추가되었지. 송이는 벌 받는 기간이었던 100년이 끝나고도 숲을 돌보기로 결정했어. 하늘 왕은 사랑스럽고 의젓해진 자신의 막내아들을 숲의 관리직으로 임명했어. 송이는 자신의 임명식에 호랑이를 불러 자신을 한 층 성장하게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단 인사를 했단다!
어때? 호랑이 이마에 왕(王) 자 가 새겨진 이유. 재미있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