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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Nov 18. 2023

사과쨈 와플에 대하여

입술을 삭 핥으니 단 맛이 났다.

  근래에는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글을 쓰는 것도 오랜만이다. 어느 정도냐면 타자치는 법을 잊을 정도로.

  이번 해에는 새로운 것들을 배웠다. 대부분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대학시절 외면하고 있던 것들을 일 년간 정통으로 맞은 기분이다. 또 열심히 했는데 어떠한 성과도 나오지 않은 것들까지도. 올해 내게 남은 건 사람뿐이다. 슬프면서 기쁘게 나는 사람 복이 많다.     


  가을에는 방황을 많이 하지 못했다. 봄과 다르게 바람이 찼다. 바람이 찰수록 자꾸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내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지 않은 기숙사도 한몫 했다. 햄스터도 한케이지에 한 마리를 넣어놓는데 사람을 좁은 방 안에 둘 넣어놓는 다는 것은… 아무튼 나쁜 생각을 할 시간이 많았다는 거다. 일상을 유지하는데 평소보다 몇 배의 힘이 들었다. 공모전과 작업물, 취업 등 기력과 시간은 쓸 데로 끌어다 썼는데 남는 건 아무것도 없고, 돈도 없고… ㅋ 그래서 내가 저절로 싫어졌다. 이번 글은 이런 감정이 맥스를 찍었을 때 날 위로한 음식에 대해서다. 

     

  첫 면접에서 떨어진 날이었다. 물론 면접을 보고 와서 이런 식으로 취업하는 게 맞나 싶었기에 차라리 잘됐다 싶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나를 달래니까 진짜 막막해져 버렸다. 내가 모든 면에서 꼴등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고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앞이 컴컴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든 기분을 전환해야겠다는 의도로 좋아하는 백반집에 가 김치찌개를 먹었다. 꾸역 꾸역 밥을 두 그릇 먹었다.런데 마음이 너무 커지니까 위가 줄어들어 버린 건지 속이 더부룩했다. 결국 근처 카페에서 배를 부여잡고 한동안 앉아있었다.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생각만 했다.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 내 게으름, 나태, 야망 없음, 사람이 살기엔 세상이 너무 적합하지 않다는,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 끝도 없이 생각하다 어두워져서 일어섰다.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도 점호시간 전 기숙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너무 마음이 상했다. 그래도 갔다. 밖에서 밤을 새울 곳이 없으니까. 최대한 늦게 가고 싶어 빠른 길을 두고 빙 돌아갔다. 그리고 학교 후문 뒷길에 생긴 빨간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어느새 이런 게 생겼지. 진짜 겨울이 오나 보다. 밤이라 그런지 포장마차의 주홍색 전구 빛이 따뜻해 보였다. 나는 붕어빵이라도 파는가 싶어 홀린 듯 다가갔다. 한 아저씨가 국화빵과 와플을 팔고 계셨다. 반죽이 구워지는 향이 솔솔 났다. 허한 마음이 채워지는 향. 국화빵은 먹고 싶지 않아서 와플을 달라고 했다. 딸기, 초코, 사과를 고를 수 있다길래 사과를 골랐다. 구운지 조금 되었는지 바삭하지 않고 눅눅했다. 익숙한 맛. 딸기와 사과가 구별 가지 않는 달기만 한 맛이었다. 눅눅해서 씹는 게 어렵지도 않았는데 꼭꼭 씹어 먹었다. 옛날에 이 와플은 너무 흔하게만 느껴졌는데. 어릴 땐 이런 와플보다 플레인 와플이 좋았다. 동화책에 나오는 와플같이 설탕 코팅이 되어 반짝반짝한. 깨물면 바삭, 무너져 촉촉한 속이 입안에서 굴러다니고 그걸 먹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왜 이 눅눅한 와플이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학교로 가는 언덕을 오르며 그 와플을 다 먹었다. 학교에 돌아가기도 전에 사라져서 내 손에는 봉투만 남았다. 그 와플을 다 먹으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내가 이 와플을 없앴다! 무언갈 없애버렸다는 만족감이 들었다. 음식은 만드는 것 외에 먹는 방식으로도 성취감을 준다. 물론 건강적인 면에서 좋은 방식은 아닐 것 같지만.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에 봉투를 버리려 쪽지 모양으로 접는데 손이 끈적였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몸이 붕 뜬 느낌이 났다. 지면에 바로 발을 딛고 있지 못하는 기분. 쪽지를 접으면서도 ‘아주 옛날에 어디서 봤는데 쪽지는 접는 게 아니랬어. 접을수록 인생이 꼬인다고 하니.’ 생각을 하고. 그런 걸 들었으면서도 어쩐지 오기가 생겨 버릇처럼 매번 쪽지로 접어 버리는 내 생각도 하고. 

종이봉투를 버리고 입술을 삭 핥으니 단 맛이 났다. 내 슬픔의 맛. 내 슬픔에 맛이 있다면 그건 사과쨈 맛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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