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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도영 May 31. 2022

야 너두 뿔이 있어

내가 만난 유니콘들—4.0

(이전 글에서 이어짐)

그렇게 나는 매주 K 선생님에게 질문을 한가득 가져갔고, 선생님은  질문에 일일이 답해주었다. K 선생님은 살아 있는 답지 이상이었다. 어느 날은 평균값 정리의 증명에서 등장하는 복잡한 형태의 함수 g(x) 어떻게 이렇게 나온 거냐고 질문했더니, K 선생님은 g(x) f(x) 회전시키는 방식을 보여주고 끝내는 대신 이렇게 덧붙여 설명했다. “ 함수는 하루아침에 나온  아니야. 만들고  되면 고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증명에 쓰일  있는 함수가 완성된 거야.  번에 알아낸  아니고 많은 고민이 들어간 거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적분”의 평균값 정리 증명. g(x)는 지금 뵈도 꽤 복잡하게 생겼다. 당시 내가 휘갈긴 g(x)에 대한 의문—‘왜 이렇게 되지?’—도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자 증명을 하기 위해서 기괴하게 끼워맞춘 것처럼 보였던 g(x) 조금  기괴해 보이기 시작했다. g(x) 인간성이 부여된 것은, K 선생님이  함수 뒤의 지우개 자국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똑똑한 수학자들도 틀린다. 그리고  틀린 답을 고친다. 내가 중학교 2학년 수학 문제집을 풀고 고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K 선생님의 말을 듣자, 그렇게 대단해 보였던 수학자들이 갑자기 옆집 아줌마 아저씨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선생님의 대답을 통해 수학과  이상의 뭔가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배우던 , 어느 날은 선생님이 먼저 나를 불렀다. 교탁 앞에 도착하자 선생님은 다짜고짜 여러 방향으로 난도질되어 있는 평행사변형 그림을 내밀었다. “ 문제   있어?” 다른  친구가 선생님한테 물어본 문제인 듯했다. 평행사변형의 전체 넓이를 알려준 , 평행사변형을 여러 방향의 직선들로 자른다. 그리고  조각들  하나의 넓이를 물어본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수학에서 종종 등장하는, 익숙한 형태의 문제였다. 하지만 K 선생님이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고 나한테  문제를 내밀었다는 ,  문제가   풀린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K 선생님이 나한테  문제를 내밀었기 때문에, 나는 무조건  문제를 풀어야만 했다. 선생님이 대답해준  질문이  개인데, 그런 문제 하나를  풀어줄 수는 없었다. 나는 일단  문제 손바닥 절반만  메모지에 베꼈다. 그리고 다음 교시였던 체육 시간에  메모지와 샤프  자루를 가지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체육 선생님은  그렇듯이 재미없는  시켰고, 나는 선생님 눈치를 봤다가 메모지를 봤다가 하면서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기 10 , 답을 알아냈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체육 시간에  것보다  열심히 뛰어서 K 선생님이 있는 교무실에 도착했다. 아마 갈아입지 않은 체육복에서 땀냄새가 폴폴 났을 것이다. 하지만 K 선생님은 개의치 않았고, 나는 항상  청결도에 개의치 않았으므로 곧장 선생님의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풀이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기하 문제지만, 대수적으로 접근하는  포인트다.  영역을 a,  영역을 b 치환하고 전체 넓이에 대한 방정식을 세우면 식이 하나 나온다. 같은 방식으로 절반 영역에 대한 방정식도 세울  있다. 이제  방정식을 연립하면 a b,  우리가 구하려고  조각의 넓이가 나온다. .


숨가쁘게 이어진  설명이 끝나자 선생님은 전방에 함성을 1.5초간 발사했다. “우와아!” 그리고   엄지로 따봉을 만들더니, 나에게 말했다. “, 진짜 고마워.” 그리고는 교무실 책상 서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따로  없는데, 이거라도 먹을래?” 선생님이 내민 사탕을 내가 가져왔는지,  가져왔는지는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고맙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면서 일어서다가 교무실 책상 칸막이에 머리를 박았기 때문이다. 싸구려 칸막이의 특성상 머리가 아주 아프지는 않았지만, 부끄러움이 치사량을 넘어 버렸다. 부끄러워하느라 정신없었던  기억이 다른 모든 기억을 덮어 버렸다.


 그렇게 작은 실수에 부끄러워했는지,  그렇게 열심히 미적분 질문들을 정리해 갔는지,  그렇게 K 선생님과 가까워지고 싶었는지는 내게 오랫동안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 학교가 여중이고 K 선생님이 젊은 남자 선생님이었어서? 그렇게 뻔한 결론을 리고 끝낼 수는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게 틀린 결론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K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은 결코 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수업에서 교과서 예제를  , 그는  떨어지는 숫자뿐만 아니라  떨어지지 않는 과정을 보여줬다. 그가 나의 미적분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 그는 미적분 이상의 뭔가를 알려줬다. 내가 문제를 풀어갔을 ,  풀이에 K 선생님이 보인 반응은 문제를 풀었다는 만족감을 넘어서는 희열이었다. 그가 알려준 것들은 뻔하지 않았기에  줄의 교훈으로 정리하기가 어려웠지만, 그것들이 강렬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렇게 강렬한 경험을 단순한 클리셰로 환원할 수는 없었다.


그 뒤로 더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더 많은 이들과 그렇게 강렬한 관계를 맺으면서 나는 이 세상에 유니콘들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K 선생님에 대한 오랜 의문에 답을 얻었다. K 선생님은 유니콘이었다. 그에게는 뿔이 있었고, 그가 뿔을 전혀 숨기지 않았기(혹은 숨기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가 뭔가 다르다는 걸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름에 나는 속절없이 끌려갔다. 왜냐하면 나도 유니콘이었으므로. 그의 너무나도 유니콘스러운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서서히 내게도 뿔이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 뒤로 내 삶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걸 후회하냐고?


유니콘들은 종종 자신의 뿔을 숨기지만, 뿔이 있다는 사실을 결코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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