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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도영 Apr 22. 2022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이 사소하고 사변적인 브런치의 목적에 대하여

 나를 가장 어쩔 줄 모르게 하는 것은 전공이 뭐냐는 질문이다. 과학사라고 대답하면 보통 또 다른 질문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과학? 무슨 과학? 그럼 다시 과학, 사, 라고 대답하고 이게 뭐 하는 분야인지도 설명을 곁들여야 한다. 그러면 당초에 질문한 사람이 의도했던 것보다 대화가 길게 늘어지고 만다.


 ‘사’를 뭉뚱그리는 내 딕션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과학사는 익숙하지 않고 인기도 없는 분야가 맞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 칸을 ‘과학사학자’라는 단어로 채우는 사람은, 자연에 존재하는 우라늄-235만큼이나 희소하니까. 어떻게 보면 과학사는 골목길이다. 과학이나 공학, 혹은 정통 역사학이라는 대로변 옆에 난 작은 골목길 말이다. 그래서 내가 생기부에 과학사학자가 되겠다고 적는 사람이 되기까지, 이 골목길로 쭉 가겠다고 결심하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말도 안 되게 신기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는 그 사람들을 감히 귀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사람들과 한 경험들에 기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어쨌든 한 사람이 삶을 골목길에 걸어보겠다고 결심했다면, 그 계기가 분명 사소하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겪은 일들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깨달은 뒤로, 그 일들이 적어 달라고, 적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그리고 점점 더 당당하게. 그 소리를 더 이상 무시하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든 순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옛날, 그러니까 한 100년쯤 전에, 영국에 하디(Godfrey Harold Hardy)라는 수학자가 살았다. 이 사람은 어느 날 한 인도인으로부터 수학 공식으로 꽉 찬 의문의 편지를 받게 된다. 그 공식들이 너무 신기해서, 그걸 어떻게 증명했는지 너무 궁금해서 하디는 결국 편지의 주인을 케임브리지로 부른다. 그리고 그의 친구 수학자 리틀우드(John Edensor Littlewood)와 함께, 정제되지 않은 직관을 지닌 수학 천재 라마누잔(Srinivasa Ramanujan)과 연구하게 된다. 이 하디 아저씨가 그의 책 “어느 수학자의 변명(A Mathematician’s Apology)”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지금도 우울할 때, 그리고 성가신 잘난척쟁이들의 말을 들어줘야 할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글쎄, 나는 너라면 절대로 못 할 한 가지 일을 해냈어. 그건 리틀우드, 그리고 라마누잔과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연구한 거야.’”

 이곳에 글로 풀어낼 기억들이, 내게는 하디의 리틀우드와 라마누잔 같은 존재다. 과학사를 공부하는 것은 외롭고, 외로운 길을 가다 보면 혼자서 의미 없는 난리를 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럴 때, 이 기억들은 그 난리에 의미를 부여한다. 계속 난리를 치겠다고 결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난리를 치다 보면, 언젠가 그 희소한 우라늄-235가 그렇듯이 찬란하게 핵분열할 힘을 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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