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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산의 카프카 Mar 08. 2023

공용주차장에서 배운 배려

생활에세이모음#2

퇴근 후 제2외국어 공부를 위해 학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학원 근처 공용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지친 한숨을 내뱉으며 차문을 여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아주머니 한 분께서 다급히 말했다. “사장님, 경차는 경차자리에 주차하셔야 돼요” 나는 순간 당황하여 어버버 하며 황급히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바로 다시 주차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자리를 옮겨 경차자리에 주차를 하고 학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왜일까? 그날따라 도저히 학원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는 이유를 제대로 묻지도 않고 사과를 한 내 모습과 경차라서 무시당한 듯한 껄끄러운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날이 시작이었다. 그 이후부터 공용주차장의 주차요원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월화수목금토일 상관없이 내가 일반자리에 주차만 하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주차이동을 지시했다. 하루 온종일 내가 일반자리에 주차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사과를 했던 나도 점점 불쾌해졌고 주차요원과의 알 수 없는 미묘한 신경전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저녁이었다. 


회사에서 쌓인 업무스트레스로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렇다고 외국어수업을 빠질 수가 없어 그날도 공용주차장으로 향했다. 오늘 같은 날 주차요원인 그녀와 또 마주치면 다투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경차자리에 차를 주차하려고 했지만 비가 와서인지 유난히 주차장이 꽉 차있었고 경차자리에도 여유공간이 없었다. 다행히 일반주차자리가 하나 비어 있어 불안한 마음이 일었지만 급히 그곳에 주차를 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주차요원이 내게 달려왔다. “사장님. 경차자리에 다시 주차하세요!” 비를 맞아서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그날따라 유독 째질 듯 높았고 내 마음의 인내심을 찢었다. “아니, 선생님.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지금 경차자리도 꽉 차있고 주차할 곳이 여기밖에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제가 공짜로 주차하는 것도 아니고 공용시설의 이용료를 내고 주차하는데 내가 주차하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주차하는 거지. 지금 경차라고 무시하는 겁니까? 무엇보다 경차는 무조건 경차자리에 주차하야여야 한다는 규정이라도 있습니까?”

 

나는 득달같이 그녀를 쏘아붙였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런 규정이 있을 리도 없거니와 논리적으로 틀린 말이 없었기에 그녀가 당연히 사과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네! 당연히 그런 규정이 있지요. 규정 상 경차는 경차자리에 주차하셔야 됩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말문이 막힌 나는 처음 그녀에게 그 말을 들었던 때와 동일하게 황급히 사과를 하고 다급하게 차량을 빼서 주차장을 빠져나와 곧장 집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학원 수업을 농땡이 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부끄러움과 분한 마음에 쉬이 잠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달 동안 쌓인 불만을 꾹꾹 눌러 담아 해당 주차장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에 문의를 넣었다 “공용주차장의 경차주차의무사항에 대한 문의”라는 제목의 글 속에는 지난 몇 달 동안의 내 의문사항과 그녀와의 언쟁이 담겨 있었다. 며칠 후 공공기관으로부터 회신받은 내용에는 그러한 규정이 없거니와 담당자의 업무미숙에 대한 사과, 그리고 재발을 위한 교육을 진행하겠다는 정중한 답변이 적혀 있었다. 


나는 통쾌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시간 주차장으로 향해 그녀가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일반자리에 주차를 했다. 그녀는 내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속상해 보였다. 나는 그녀의 그런 표정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또 불편했다. 감정에 못 이겨 괜한 행동을 한 게 아닐까서였다.

다음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내가 민원을 접수했던 공공기관의 관리자였다. 그는 다시금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문의한 내용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했다. 그녀가 주차요원으로 근무하며 공용주차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했던 노력도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마지막이 말이 가슴에 남았다. “일반차량 운전자들이 일반자리에 경차가 주차되어 있으면 그분께 화를 많이 냈다고 하더라고요. 주차요원이 똑바로 일을 안 한다고. 그래서 그분 입장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주차자리 관리를 나름 해오신 것 같아요.”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경차자리에 대한 안내를 하면 경차 차주에게, 하지 않으면 일반차주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상황과 그럼에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일을 묵묵히 해온 주차요원, 그분께 속 좁은 마음으로 대처한 것이 너무도 죄송했다. 


다음날, 나는 시장에서 맛있어 보이는 사과를 사서 공용주차장으로 향했다. 경차자리에 차량을 주차하고 주차요금소로 달려가 그녀에게 사과를 전하고 내 지난 행동을 사과했다. 사과를 먹으며 나로 인해 불편했을 그녀의 마음이 풀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내 행동에 당황한 듯 보였지만 흔쾌히 내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내가 준 사과 중 유독 맛있어 보이는 사과 하나를 다시금 내게 건네며 그녀도 사과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서로가 서로를 조금만 더 이해하고 배려하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남들이 쉽게 생각하는 주차요원이지만 여기서 주차관리를 하며 그 사실을 깨달았어요. 나만 편하자고 하는 주차는 결국 자신을 슬프게 만든다는 걸요. 우리네 인생처럼요. 사과 잘 먹을게요.” 


얼마 후 그녀는 주차요원직을 관두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어딜 가서 든 경차자리가 있으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최대한 경차자리에 주차를 한다. 그것이 그녀가 내게 알려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최소한의 배려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날, 지하주차장 경차자리에 대한 서로의 입장차이로 인해 주민과의 불화가 심각해지는 요즘, 그녀의 배려가 더욱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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