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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무요 Jun 12. 2022

10. 패션은 지속 가능한가.

아무리 외관이 중요한 산업이지만 이번만큼은 내려놓을 때.

지속 가능성.


 다섯 글자는 확실히 패션 업계를 점령했다. 다들 지속 가능성을 전면에 내걸고, 패션이 지금껏 지구에 해온 짓을 돌이켜보고자 노력한다. 다만 왠지 모르게 어릴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집집마다 가훈을 발표시키면 다들 우리 집에 그런 것이 있었나 고민하다가 '가화만사성' 하나 겨우 떠올리던 어릴  기억이 떠오른다. 마침 글자도   다섯 글자다. 물론 가훈이야 남의  가훈이고 정말 실천하고 있는 가치인지 우리는  길도 없고, 사실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하지만 지속 가능성은 우리 모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단순히 남의 일로 바라볼 일이 아니어서 문제다.  회사의 지속 가능성이 사라지면 나는 다른 회사   입으면  일이고, 분명 아무래도 좋은 일 같은데, 안타깝게도 이미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미 나의 일이고, 당신의 일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지속 가능성을 외치는가. 그건 안타깝고도 역설적이게도 옷이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옷은 지구를 해친다. 극단적으로 합성 섬유를 전부 없애버리고 자연 유래 섬유만 사용한다고 한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재배부터 가공까지 무해한 과정은 없다. 다른 산업들과 마찬가지로(어쩌면 보다 더), 패션 산업 역시 기후 재앙을 초래해온 것이다. 더욱이 패션 산업의 기술로는 이 재앙을 막을 수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길을 걸어 다니며 옷으로 탄소 포집을 할 수 없다. 나이키가 염색할 때 물을 사용하지 않는 기술을 생산에 활용한다지만, 둑을 막은 네덜란드 소년이 이 산업에 등장하기 전에 조금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역시 패션 회사가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일은 석유 회사만큼 어려운 일이다. 패션 회사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속 가능성을 외치고만 있는 현실이 최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애초에 지구에 무해한 옷은 없다. 업사이클링조차 그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0으로 할 수는 없다. 업사이클링을 하기 위해 디자이너가 옷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2차, 3차 소비자에게 다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업사이클링은 지속 가능성의 최전선에 서며 주류의 관심을 받고 있다. 쓰레기장에 쓰레기를 더하지 않고, 팔릴지도 모르는 옷들을 새로운 자원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만으로도 환경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H&M 인스토어 리사이클링 시스템 Looop

H&M은 2020년 6월 스톡홀름 매장 내에 위 사진과 같은 기계를 도입했다. H&M 재단과 홍콩섬유의류연구소(HKRITA)가 합작하여 개발한 이 시스템은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래된 옷을 새 옷으로 바꿔준다. 여기에 추가로 투입되는 물과 염료도 없다(고 설명한다). 자본이 투입된 업사이클링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얼마나 혁신적인 시스템인지와 무관하게, H&M과 같은 다국적 기업들의 역사라던지, 하필 고객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매장 내에 설치미술처럼 들여놓았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보아 결국 또 다른 그린 워싱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다만 패스트 패션 기업들이 과거에 단순히 옷을 수거해오던 것, 그리고 헌 옷을 가져온 사람들에게 본인들 제품을 새로 구매할 수 있는 바우처를 지급하던 짓들과 단절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나아가 실제로 옷을 수거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소비자들이 실시간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단순히 보여주기 식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저 기계 하나에 시스템이라는 칭호가 붙은 만큼, 사람들은 매장에서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일련의 과정을 목격할 수 있고, 직접 과정 전체를 바라보는 경험은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이는 오픈 키친 시스템이 어떻게 요리업계와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었는지 생각해보면 될 일이다. 오픈 키친과 유사한 효과를 이 시스템을 통해 기대해볼 수 있다. 누군지도,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생산되어 갑자기 튀어나온 옷을 구매만 하던 관행을 부술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 시도, 지속 가능성을 겉으로 보여주는 수준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이 리사이클링 시스템의 뒷면을 조금만 살펴보면 사실 그만큼 패스트 패션 회사들의 기존 방식으로는 그들의 전망이 밝지 못하고, 업사이클링, 지속 가능성과 같은 이슈들이 재무적 계산 아래 + 요인으로 편입되었다는 점만 입증한다. 나아가 시스템의 의의와 별개로 하루에 도대체 니트를 몇 장이나 생산할지 가늠도 쉽지 않은 h&m이 리사이클링 니트 기계를 도입한 모습이 기괴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거대한 산업의 지속성과 같은 중요한 일을 몇몇 의식 있는 조직과 개인들 정도의 노력에만 기댈 수도 없다.


결국, 기술과 자본을 활용한 외침도, 사람들 개개인의 책임감과 함께하는 외침도 모두 다 의미 있고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해결책, 보여주기 식으로 그치지 않고 그린 워싱으로 치부당하지 않을 방법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면 된다. 지속 가능성이 공허한 외침에 그치지 않으려면,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것도 안 하면 될 일이다. 가장 무해한 옷은 어딘가로 이동할 필요 없이 당신의 옷장과 당신의 몸만 오가는 옷이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뜻은 시장 규모가 줄어들고, 그러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등등해서 산업과 기업, 국가, 개인 전체에 해를 끼치자는 뜻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수선에 대한 접근을 달리해볼 수 있지 않을까. '리셀'이라고 불리는 재판매 시장도, '업사이클링'이라고 불리는 회수 및 2차 가공 시장도 그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 정작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수선'에 대한 접근은 아직 부족하다. 옷을 얼마나 사랑하던지 옷을 수선하는 일은 아직도 낯설고 번거로운 일이다. 새로이 구매하는 것처럼 신나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중고 거래를 하는 것도, 업사이클링을 하는 것도 모두 결국 옷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일이고, 이 '오랜 기간 동안 사용'이 곧 지속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물건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우선되어야 할 요소는 관리와 수리다.


There is no circular movement without care and repair. - Emily rea, co-founder and head of marketing and business development, The Restory

출처: https://www.voguebusiness.com/sustainability/costly-time-consuming-and-a-sales-barrier-why-fashion-hates-repairs


왜 지금껏 의류는 수리의 대상이 아녔을까. 물론 소재와 옷의 종류에 따라 다른 문제겠지만, 옷이 수리가 불가능한 영역일까. 과연 어떻게 수선할 지에 대한 기술력이 없어서일까. 동네 세탁소의 수선 실력만 봐도 그렇게 바라보기는 힘들 것이다. 다만 수선에는 사업성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같은 소재, 디자인의 옷을 대량으로 제조하는 것보다 상황에 따라 다른 매뉴얼이 필요한 수리는 비효율적이다. 효율성은 중요한 원칙이라지만, 아무리 사업체라지만, 이번만큼은 계산기를 내려놓고 그저 책임감만으로 일을 실행할 수는 없을까.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 가치는 역시 기업의 이윤을 사회와 환경에 환원하는 것이 아니던가. 제품의 품질에 자신 있는 브랜드라면, 재무적 가치에서 벗어나 그에 걸맞게 제품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특히 패션 시장 속 소비에 재무적 가치가 판단된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지금껏 '그저 좋아서' 구매해온 사람들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산업인 만큼 그 산업의 기업이라면 같은 마음으로 무언가 해볼 수 있지 않은가. 신뢰할 수 있는 사후 관리를 통한 제품의 지속 가능성이 곧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이다. 이러한 '관리'가 뒷받침되어야 옷의 수명에 대한 인식도 바뀔 수 있다. 옷의 수명에 대한 인식이 변화해야 패스트 패션 같은 작금의 소비 방식이 바뀔 수 있다. 지금의 소비 방식이 달라진 곳에서만 우리는 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박무요

朴無要


instagram@parkmu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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