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물은 썩기 마련.
흔히들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다르게, 패션 업계는 느리다. 그러면서도 소모하는 에너지는 엄청나서 다들 기진맥진하는데 정작 나아가는 속도는 느린 것을 보면 여기처럼 비효율적인 산업이 또 있을까 싶다. 다들 바쁘고 엄청 돌아다니느라 이 업계 전체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또 빨리 쫓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산업의 진보는 너무나도 느린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분명 다 같이 빨리 움직이고 있는데 사실 쳇바퀴 속에서 빨리 돌고 있다. 모든 에너지를 가져다 쓰고 있긴 하지만 정작 끝나고 보면 제자리다. 쳇바퀴에서 돌던지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던지 버피를 하던지 운동은 제자리에 머물지언정 건강에라도 좋은 반면에 이 정신없는 산업은 심지어 건강도 해치고 있다. 이 산업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이어 말하자면 유행이 돌고 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언제까지 돌고만 있을 생각인지 묻고 싶은 마음이다. 새로운 브랜드가 계속 생겨나고, 혜성 같은 디자이너도 끊이지 않고 다들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 있지만 그곳에 진정한 새로움이 있는지 살펴보면 역시 잘 보이지 않는다. 글을 쓰는 본인의 부족함 탓도 있겠지만, 진정 변화하려면 나 같은 대중들에게도 무언가 와닿는 지점에서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옷에서 굳이 즐거움을 찾을 생각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위치에 서서 함께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다 똑같아 보이지 않을까. 이 정도면 우리나라 아파트들과 다를 바가 있나 싶기도 하고. 같은 동네라고 다 똑같은 아파트가 모이는 것도 아니고, 같은 건설사라고 자기들 아파트를 다 똑같이 짓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파트들 간 외관의 미묘한 차이들을 신경 쓰고 있나. 더 중요한 것은 입지와 시공사의 네임 벨류다. 여기까지 적어놓고 보니 정말 패션 산업과 건설 산업이 다를 바가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이 업계는 디자인의 측면에서도 산업의 측면에서도 확실히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기껏 몸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가 싶더니 정작 유행하고 있는 옷들을 보면 패션 산업은 시대를 역행하려고 작정한 듯하다. 자신들의 업적을 과거의 유물로 밀어두더니 오히려 과거에 이 업계가 저질렀던 과오들은 지금까지 청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사실 몸을 얼마나, 어떻게 드러낼지 그리고 몸보다 얼마나 과하게 큰 옷을 입는다던지와 같은 변주는 패션 디자인만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다. 따라서 어떻게 입을지 혹은 어떻게 안 입을지와 같은 문제는 전적으로 개개인의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길에서 우연히 그런 옷을 입은 사람을 보는 것과 미디어로 그런 옷을 보는 것은 분명 다르다. 이 산업은 말 그대로 유행 그 자체이고 이 유행이라는 것이 무슨 세계 시민 투표 같은 걸 열어서 매년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탑 다운 방식으로 퍼져가기 때문에 탑에서 자리 잡고 계신 분들은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감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다수가 입기 어려운 옷들로 논란을 만들어내야 할까. 언제까지 몸을 옷에 맞추며 살아가야 할까. 언제까지 사람들이 원하는 옷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일단 저지른 다음 사람들이 원하도록 만들 생각일까. 유행이 돌고 도는 산업이니 불가피하게 과거의 디자인을 다시 꺼낼 필요가 있겠지만, 이런 문제에서까지 시곗바늘을 뒤로 돌려야 하는지.
제조로 눈을 돌려도 매한가지다. 오늘날 럭셔리 하우스들은 단지 그들이 유명하기 때문에 인기 있다. 럭셔리 하우스들은 장인 정신과 그들이 보증하는 고품질 위에 지어졌다. 소비자들도 구별되는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이들 요소는 그들의 고유한 유산과 문화로, 그들이 유지하고 보호해야만 한다. 그러나, 럭셔리 하우스들은 그들의 미션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자라나 유니클로처럼 군다. 너무 많은 아이템을 생산한다. 프린트된 이름 없이는 점점 구별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유산은 말 그대로 과거의 것이 되었다. 장인정신은 그들의 가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소셜 미디어 속 이미지에 불과하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착취에 가까운 임금을 받으며 '생산'할 뿐이다. 대량 생산에 맞추어 생산 설비에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는가 하면 이 역시도 아니다. 여전히 노동자들이 본인의 손과 발로 직접 만들고 있다.
미디어에서 아무리 패션 디자이너들에 대한 환상을 심어 보아도 패션 산업은 결국 제조업이고, 2차 산업이다. 21세기가 도래하고도 강산이 두 번 더 변한 지금도 여전히 패션은 인간 노동 집약 산업이다. 이곳에 자동화, 첨단 같은 단어가 들어올 틈은 없다. 완전한 자율주행이 도래해서 자동차에 페달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미싱 페달을 밟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덕분에 다국적 기업들은 그저 더 저렴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를 찾아 공장을 새로 세우고 그 사이 다시 다른 후보지를 찾아보면 될 일이다. 임금 삭감과 체불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2013년 라나 플라자 참사 이후 방글라데시처럼 의류 생산이 국가의 주요 산업 중 하나인 국가들의 노동자들도 임금 협상 및 실질적 인상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가 싶었지만, 정부도 기업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갈 길은 멀다.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약간의 변화도 차단하고자 부단히 애쓰는 형국이다. 가장 변화에 예민해야 할 산업이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둔감하기 그지없다.
한국으로 좁혀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전태일 열사께서 분신 항거하신 이후에도 여전히 봉제사들에게 복지는 북유럽만큼 멀기만 한 이야기다. 여전히 그들은 당일 작업 수량과 옷의 종류별 단가에 따라 정산을 받아 제대로 된 식사 시간도 가지질 못하고 있다. 한겨레의 2018년 기사에 따르면 트렌치코트의 공임료 7천 원은 30년 동안 오르지 않았다. 일요일을 보장해달라며 스스로를 희생했건만 정말 일요일만 겨우 쉬고 있는 실정이다. 그 사건도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인류가 다른 분야에서 이뤄 온 업적들을 돌이켜보면 이 산업은 제자리걸음 수준이 아니라 퇴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쌓아두면 좋지만 물가 상승률을 따지면 해마다 마이너스 수익률인 현금 더미처럼 패션 산업은 당장 눈앞에서 바라볼 때나 즐거울 뿐, 미래에도 유익한 가치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4561.html
다 차치하고, 당장 첨부된 두 사진이 같은 산업, 같은 시대(심지어 지금 이 시대)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점은 자명하지 않은가. 한낱 유행 때문에 누군가가 최소한의 근무 환경도 보장받지 못하면서 착용자에게 편하지도 않은 옷을 매일같이 만들며 작동하는 이 시스템은 기형적이다. 만드는 사람도, 입는 사람도 불편하다면 옷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