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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cellaneous Aug 06. 2022

뮤지컬과 함께 막을 내린 뉴욕 여행

혼자서 뉴욕 여행하기 5일 차

드디어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일부러 오늘의 일정은 많이 잡질 않았다. 여행이든 뭐든 마지막이 좋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이전의 일정들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은 좀 cool down 하자는 의미에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일정들로 채워 넣었다. 


일단 가장 먼저 찾은 곳은 Central Park(센트럴 파크)였다. 센트럴파크는 물론 뉴욕에만 있는 훌륭한 볼거리이지만, 워낙 넓은 데다가, 공원 자체가 유명할 뿐, 내부에 특별한 장소가 있지는 않아서 앞선 일정 동안 제대로 가볼 생각을 못해봤다. 공원 말고도 워낙 볼 것이 많았던 탓에 미루고 미뤄놓은 과제 같은 것이 되어있었다. 

공원이 매우 크다 보니, 마치 차도처럼 자전거를 위한 도로가 나있고, 자전거와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설치되어있을 정도이다. 보행자 도로와 자전거 도로가 아예 분리되어 있을 정도이니, 공원이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될 것이다. 공원 내부에는 호수도 조성되어 있어서, 멋진 뷰를 보여주기도 했다. 건물만 빼곡히 들어선 이 콘크리트 정글 속에만 있다가 조용하고 평온한 녹지 속에 몸을 담그니 뉴욕이 사뭇 달라 보이기도 했다. 한편 공원에서도 볼 수 있는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은 이곳이 뉴욕 중에서도 맨해튼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었다. 

호수 너머 공원 가장자리에 위치한 맨해튼의 빌딩들, 이곳이 뉴욕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내부에 차가 다니지는 않지만, 자전거가 다니기 때문에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존재한다.
잔디밭 곳곳에는 태닝을 하시는 언니들도 계셨다.

그냥 센트럴파크를 거쳐 지나가는 좀 바빠 보이는 사람들, 신나서 방방 뛰는 개를 산책시키느라 바쁜 사람들, 아예 잔디밭에 엎드리거나 누워서 햇볕을 만끽하는 사람들, 한자리 잡고 공연을 하고 있는 밴드까지, 이곳도 워낙 넓은 공원이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저마다의 센트럴 파크를 만끽하고 있었다.

 



센트럴 파크를 지나서 향한 곳은 이번 여행의 큰 목적 중인 하나, 바로 Wolfgang Steakhouse(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것이었다. 물론 Wolfgang Steakhouse 말고도 Brooklyn에 위치한 Peter Luger나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가 열리기로 유명한 Smith & Wollensky 도 있지만, 나의 여행 예산 안에서 시도해볼 만한 나름 '서민적인' 곳은 Wolfgang Steakhouse가 유일했다. 물론 이조차도 비교적 '서민적인' 것이지 절대 가격이 저렴하진 않다. 나름 대중적이기도 한 이름 있는 스테이크 레스토랑이다 보니 뉴욕 곳곳에 지점이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 그나마 평점이 좋은 Time Square에 위치한 곳으로 예약을 잡았다.

예약까지 잡고 갔는데, 사진과는 달리 상당히 한적해 보였다? 뭐지?

애써 예약까지 하고 간 곳이었는데, 식당 내부가 텅텅 비어있었다. 애매한 시간대라 그랬을지 몰라도, 이 정도로 사람이 없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어쨌든 조용한 이 레스토랑 전체를 통째로 대관한 기분으로 고요 속에 홀로 스테이크를 썰어먹을 생각에 난 한껏 들떠 있었다.

여러 추천 메뉴가 있었다만, 나는 Porterhouse steak(포터하우스 스테이크)가 먹고 싶었다. Porterhouse steak는 티본스테이크의 일종으로, 티본스테이크답게 안심과 등심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보통 양이 많기 때문에, 1인분으로 는 잘 팔지 않는다. 역시나 Wolfgang steakhouse도 2인분 이상부터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굶주린 채 뉴욕을 누비는 짐승이었기에, 


"최소 2인분이지만 주문해도 돼, 남은 건 우리가 포장해줄 테니까 걱정할 거 없어"


라고 말해주는 웨이터의 스위트 한 조언을 귓등으로 들은 채 쿨하게 혼자서 2인분을 주문했다. 잠시 후 나온 스테이크는 뜨겁게 달궈진 접시 위에서 버터와 함께 지글거리며 내 앞에 놓였다. 아래로 흘러내린 버터와 육즙을 다시 고기에 끼얹을 수 있도록 큰 스푼이 같이 나왔다. 

 뜨겁게 달궈진 접시 위에서 스테이크가 버터와 함께 뜸 들여지고 있다.
미디엄 레어로 구워져 나온 스테이크를 비스듬히 세워놓으면 버터와 육즙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별다른 사이드 메뉴 없이도 충분히 맛있는 식사였다. 약간 질긴 감도 있고 가격에 비해서 특별하다는 건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남이 구워준 고기가 제일 맛있다'라는 절대불변의 법칙이 적용되어서인지 흡족스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최종 지불 가격은 156달러;;; 가격까지 생각한다면 총평은 5점 만점에 3.5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뉴욕 여행 특수로 생각하면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좋은 기억이었다(라고 말해보지만 내적 눈물이 흐르는 건 왜일까?)




맛있는 식사를 끝마친 후, Time Square 인근을 누비면서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인상 깊은 장소를 마지막으로 뇌리에 새기고 있었다. 물론 밤에 왔을 때만큼의 감흥은 없지만, 여전히 흥미롭고 생동감 넘치는 장소였다.

낮에도 붐비는 건 역시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밤만큼은 아니지만

 

여태껏 못 봤던 Naked cowboy도 있었다. 아무래도 밤에는 날씨가 약간 쌀쌀해서 차마 버스킹 할 엄두가 안 났을지도 모른다. 처음 봤을 때는 원조 Naked cowboy 인 Robert John Burck을 따라한 건 줄 알았는데, 나중에 찾아보니까 본인인 듯하다. 올해 51살이라고 한다. 저 나이에도 저 정도 근육량을 유지하다니, 대단하다. 역시 헬창 눈에는 이런 거밖에 안 보인다. 

뉴욕에서만 볼 수 있는 숨겨진 명물 Naked cowboy를 어쩌다 마주쳤다. 그 와중에 체격과 근육이 다부지다.




밤에 예약해놓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러 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렇다고 숙소에 가서 쉬다 나오기는 애매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꽤나 피곤했다. 안 가본 곳 중에서 어디 앉아서 시간 보낼 곳이 없을까 찾던 중 들어온 것은 Bryant park(브라이언트 파크)였다. 잔디밭에 왜 사람들이 안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렇게 한적하게 비워진 공간이 번잡한 뉴욕 속에서 한가로운 느낌을 선사했다. 앞에는 무대와 공연장비들이 놓인걸 보니 주기적으로 퍼포먼스가 열리는 것 같았다. 더 찾아보니 겨울에 이 공원은 아이스링크로 둔갑한다고 한다. 

잔디밭을 중심으로 의자와 테이블들이 놓여있다. 고층빌딩들에 둘러싸여 있는 잔디밭의 모습이 센트럴파크를 연상시킨다.




날씨 좋은 뉴욕의 낮을 원 없이 즐기고, 이제 대망의 Broadway Musical을 보러 갈 시간이 됐다. 정해진 입장시간보다 40분은 일찍 왔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극장 앞에 줄을 서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나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Musical Chicago(뮤지컬 시카고)였다. 오늘 공연은 한때 미국을 주름잡던 글래머 모델인 Pamela Anderson(파멜라 앤더슨)이 뮤지컬의 주인공인 Roxy 역을 하는 마지막 공연이었다.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미국에서는 왕년에 꽤나 유명했던 셀럽인가 보다. 한국으로 치면 누구에 빗대야 할지 적절한 예시를 못 찾겠다. 

뮤지컬 시카고는 Ambassador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이 극장은 1921년에 오픈하여 올해로 100살 가까이 된 곳이다.


극장 건물 아래에 있다 보니 건물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1921년에 오픈한 극장이라고 하니 올해로 100년 가까이 되어가는 건물인 것이다. 특히나 다좌석 사이사이 공간이나 레그룸 등이 상당히 좁은 것이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아트센터와는 매우 달랐다. 건물 장식도 뭔가 고풍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투박한 게 이 극장의 오래된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왜 더 유명한 뮤지컬을 안 보고 하필 '뮤지컬 시카고'를 봤냐는 의문을 가질 법도 한데, 한국에서 인상 깊게 본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 한국에서 보았던 것과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미 줄거리를 알고 노래도 알고 있지만 선택하게 되었다. 사실 뮤지컬은 줄거리 보려고 보는 게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서투른 영어실력 때문이다. 생판 처음 보는 뮤지컬을 영어로 바로 접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았다. 한국 뮤지컬도 가끔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는데, 미국에서 그걸 겪으면서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정리할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사실 내가 뮤지컬 시카고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We Both Reached For The Gun' 장면이다. 주인공인 Roxy가 내연남인 Casely를 총살하였음에도 이것이 정당방위였음을 입증하기 위해, 둘 다 총을 향해 손을 뻗었다고 변호하는 장면이다. 가장 인상 깊은 포인트는 변호사인 Billy Flynn 이 Roxy를 무릎에 앉힌 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면서 뒤에서 복화술을 하여 마치 Roxy가 말하는 것처럼 두 배우가 합을 맞추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번에 본 Billy Flynn은 그냥 대놓고 입을 움직여서 감동이 좀 덜했다. 마지막에도 Billy Flynn이 긴 호흡으로 마지막까지 쥐어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부분 마저도 임팩트가 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시카고를 안 본 사람을 위한 'We both reached for the gun' 2017년 내한공연 링크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5F9xds-yGI&ab_channel=%EC%98%AC%EB%8C%93%EC%95%84%ED%8A%B8allthatart

2017년 내한공연에서의 퍼포먼스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런 걸 기대하고 갔지만 실망하고 말았다.


**참고로 내가 한국에서 봤던 민경아, 최재림 배우께서 주연을 맡으신 뮤지컬 시카고 영상이 마침 있어서 첨부한다. 원작을 보면서 상당히 많은 노력과 연구를 했다는 것이 돋보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kCWBWXyUh2Q&ab_channel=NEWSTAGE%EB%89%B4%EC%8A%A4%ED%85%8C%EC%9D%B4%EC%A7%80

한국의 뮤지컬도 수준이 상당했음을 느꼈던 공연이었다.


말이 길었다. 아무튼, 몇몇 실망한 포인트를 빼고는 상당히 좋은 공연이었다. 특히 인물들의 대사가 각색되고 번역되는 과정이 없이 오리지널 그대로 들어오다 보니 "아하, 이거였구나?" 하면서 보게 되는 장면들이 많았다. 마지막 커튼콜에 이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관객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듯 합주를 할 때는 객석 모두가 기립박수를 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관객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선물이다.

 

전체적으로 훌륭한 공연이었고, 한국과 미국의 공연에서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비교를 하면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5일간의 뉴욕 여행은 나에게 짧고도 치열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가장 가까운 도시인 시카고를 보면서 뉴욕을 대충 짐작했었지만, 내가 어리석었다. 뉴욕은 단순히 규모만 큰 대도시가 아니라 문화와 구성원부터가 아예 다른 곳이었다. 미국의 다른 곳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이상하기까지 한 것들이 보통의 일상으로 자리 잡은 뉴욕은 매우 낯선 장소였다. 어쩌면 젊은 나이에 혼자 간 여행이기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욕심나는 만큼 원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또다시 오게 될 그날을 그리며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끝으로 뉴욕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뉴욕을 떠나 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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