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보스턴 여행하기 1일 차
보스턴에서 여행한 이야기를 듣기에 앞서, 내가 보스턴으로 향한 이유가 무엇인지가 궁금할 것이다.
첫 번째로, 앞서서 여행한 뉴욕에서 이동하기에 편하고 저렴하다는 점이다.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JetBlue 와 Delta 항공사에서 거의 1시간에 1대 꼴로 버스 다니듯이 비행기가 다닌다. 때문에 가격도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50 ~ $70). 뉴욕과 보스턴은 가깝다곤 하나, 그래도 차로 다니려면 4시간 20분 동안 200마일 남짓한 거리를 운전해야 한다.
두 번째로, MIT와 Harvard를 가보고 싶었다. 나는 비록 어드미션을 받지 못한 MIT이지만, 그래도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은 곳이었다. 두 탑스쿨 모두 보스턴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니!
세 번째로, 보스턴만 따로 여행 갈 일이 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보통 뉴욕은 관광객이 엄청나게 몰리는 관광명소이지만, 보스턴은 관광명소라기보다는 역사와 학문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보니 소위 말해 '지루한' 동네다. 이런 보스턴을 단순히 여행하러 갈 일은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인데 이렇게 가까울 때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는 생각에 결국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궁금하지 않았더라도, 여행 갈 때 참고하길 바란다.
뉴욕의 LaGuardia 공항을 출발하여 보스턴의 Logan 공항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맞닥뜨린 건 보스턴의 지하철인 MBTA(Mesachussets Bay Transportation Authority) subway 였다. 당연히 뉴욕처럼 애플 페이로 결제될 줄 알고 당당하게 내 아이폰을 갖다 대었지만 보란 듯이 튕기고 말았다. 결국 한번 탈 때마다 일정 금액을 내는 선불 티켓을 자판기에서 구매하여 탑승했다.
'T'라고도 불리는 보스턴 지하철의 첫인상은 상당히 좋았다. 뉴욕에 비해서는 시설이나 차량이 모두 깨끗했고, 차량 내부의 분위기도 상당히 차분했다. 상당히 정돈된 분위기였고, 뉴욕 지하철처럼 악취가 나지도 않아서 전반적으로 깔끔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보스턴 시내를 돌아다녀 보니, 전형적인 미국의 도시라기 보단 영국이나 독일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도 영어보다는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차들도 거의 경적을 울리지 않았고, 분위기가 차분해 보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혼돈의 도가니였던 뉴욕에 있다 와서인지, 좀 더 과장하면 지루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뉴욕도 식후경이었으니 보스턴도 식후경 아니겠는가? 보스턴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Clam chowderI(클램 차우더)와 Lobster roll(랍스터 롤)을 먹으러 갔다. 내가 간 곳은 클램 차우더보다는 랍스터 롤로 유명한 James hook & Co. 였다. 평점 4.5에 2,700개에 달하는 리뷰를 보고 바로 선택했다. 딱히 게, 새우, 가재 등의 갑각류 요리를 좋아하거나 찾아먹는 스타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한 번도 못 먹어본 랍스터 요리라 이번 기회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가게 안에서는 음식뿐만 아니라 생물 랍스터를 비롯하여 신선한 Sashimi grade(날것으로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신선도라는 뜻)의 생선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생물 랍스터들은 작은 수조에 집게발을 봉인당한 채로 숨만 쉬고 있는 듯했다. 가격은 랍스터 무게나 크기별로 달랐고, 한국에 비해서 싼지는 모르겠으나, 전반적으로 높은 보스턴의 물가를 고려한다면 여기서 랍스터가 비싸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후기를 이야기해보자면, 메인인 랍스터 롤보다는 클램 차우더가 더 기억에 남는다. 보스턴에 오기 전까지 내가 먹어본 클램 차우더는 깡통에 들은 Campbell 수프가 전부였는데, 여기서 먹은 클램 차우더에서는 풍미와 감칠맛을 느낄 수 있었다(당연히 그래야지 어디 캠벨 수프랑 비교를...). 보스턴에 다시 간다면 클램 차우더부터 꼭 한 사발 하고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줬다.
랍스터 롤은 간단히 표현하면 랍스터 속살에 마요네즈 베이스 양념이 들어간 랍스터 샌드위치인데, 솔직히 다시 사 먹을 맛은 아닌 것 같다. 싱싱하고 담백하고 푸짐하다는 점은 인정하나, 맛이 싱겁고, 무엇보다 '랍스터의 맛'이라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는데 일조한 음식이다. 누가 사주면 먹을 수 있으나 내돈내산 하기에는 망설여지는 그런 음식이다. 그래도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은 좋을 것 같다. 비린내가 나거나 이상한 질감이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지극히 평범하고 담백할 뿐이니.
식사를 마치고 간 곳은 Boston Tea Party Museum(보스턴 차 사건 박물관)이었다. 보스턴 차 사건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이미 다 알고 있거나 자신이 미국 역사에 관심이 없다면 스크롤하기 바란다), 당시 식민지였던 미국에 대해 영국이 과도한 관세를 매겨 불만을 얻던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식민지의 밀수업자들은 네덜란드에서 홍차를 밀수하여 납세 없이 홍차를 판매하며 부를 축적하고 있었는데, 영국이 본국에 쌓인 홍차 재고를 처리하고, 동인도 회사의 무역 독점권을 증가시키기 위해 '홍차 법'을 제정하였고, 그 결과로 홍차 유통망은 밀수가 아닌 동인도 회사를 거쳐 관세가 부과된 채로 식민지에 유통이 되었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밀수 가격보다 싼 정가에 홍차를 구매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겠지만, 밀수업자를 비롯한 미국의 식민지 지식인들은 영국이 식민지와의 충분한 협의도 없이 세수를 늘리고 유통망을 독점하기 위해 횡포를 부린 것으로 간주했다. 결국 이 같은 불만이 원인이 되어 보스턴의 저항세력이 인디언 분장을 한 채 보스턴 항에 정박해 있던 배의 홍차들을 모두 바다에 쏟아버리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영국과 미국 간의 갈등을 조장하여 미국 독립전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된다.
박물관 가이드들이 전통의상을 입은 채 그 사건의 중심인물이 되어 연기를 하며 사건을 설명하였다. 미국의 역사에 흥미를 들이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더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아 약간 오글거리긴 했지만, 그들의 열연 덕분에 미국인들에게 보스턴 차 사건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쉽게 체감할 수 있었다.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당시에 바다에 던져버린 찻잎으로 우려낸 차를 바이알에 담아서 마치 유물처럼 모셔놓은 것이었다. 물론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믿거나 말거나지만, 1773년에 일어난 그 사건의 증거물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는 게 신기했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대표 없이 과세 없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영국의 지나친 횡포에 반발하며 Sons of liberty(자유의 아들들)이라는 이름의 집단을 꾸려 세상에서 가장 큰 찻잔에 찻잎을 던져버리고 훗날 이 사건에 Tea party(다과회)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자유 위에 세워진 미국의 미국스러운 역사였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서는 숙소에 체크인하고 2시간 정도 기절했다. 여행이 6일 차에 접어드니 슬슬 내 체력이 여독에 잠식당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특히나 혼자서 다니는 여행이다 보니 혼자서 계획하고 혼자서 고민해야 하다 보니 정신적인 피로감이 적지 않기도 했다. 초라해져 가는 나 자신을 휴식으로 달래는 것도 잠시, 삼각대와 카메라를 챙겨서 보스턴의 야경을 찍으러 떠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다운타운의 야경은 보스턴 다운타운이 아닌 내가 위치한 East boston이나 그 외에 바다 건너에서 잘 보인다. 특히 East boston에서도 항구를 끼고 조성된 Pier park가 최적의 장소였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인지 아직 야경을 보기엔 무르익지 않은 하늘이었다. 삼각대로 자리를 잡아놓고 타임랩스 촬영을 켜놓은 채로 노을을 카메라에 담았다.
삼각대 놓고 옆에서 바닷바람으로 인한 추위에 떨며 뻘짓을 하는 내가 흥미로워 보였는지 보스턴 로컬 한 명이 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가 한평생 살아온 보스턴과 내가 잠시나마 살아온 인디애나를 비교하며 결론은 보스턴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난 10분간의 대화를 했다. 영어가 서투른 나에게 영어를 시킨 대가로 그가 떠나려는 찰나에 그를 나와 함께 영원히 박제시켰다.
보스턴의 야경은 뉴욕만큼의 감흥을 주는 스카이라인이나 고층빌딩은 없었지만, 잔잔한 바다 위에 떠있는 도시의 밤은 나에게 충분한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보스턴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유난히도 차분했던 첫인상으로 내 기억에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