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짧음 Apr 21. 2024

관찰 2. 우리는 모두 열정적이었다

맡겨만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다던 열정을 접어둔 그대들에게.

마음만은 청춘인지라 여전히 후배들과 새벽까지도 술을 때려 붓는 나지만, 회사생활을 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다 된 대선배님(?)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 사수이자 멘토였던 선배가 10년 근속상을 받았던 것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는데 내가 바로 그 위치에 도달한 것이다. 팀에서 나의 위치는 허리쯤이다. 음, 배꼽 쪽보다는 젖꼭지 쪽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인지 팀장은 나에게 조직의 허리로서 선배들과 후배들을 잇는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다행히 태생적으로 사람만 보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개과인지라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반갑기 그지없다. 때로는 그냥 놀고 싶을 뿐인데도 ‘Team Building이다’, ‘구성원들의 고충을 상담하는 것이다‘ 여러 합법적인 명분을 챙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덕분에 나는 회사 동료들의 속 깊은 이야기도 종종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나 후배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고충사항이라고 해도 선배들에게 있는 그대로 털어놓기가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선배들의 말 중에 가장 불편했던 것이 ”편하게 이야기해 봐.“ 였으니까.


그중에서도 단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역시 ‘인간관계’이다. 신입사원이든, 경력사원이든 공통적으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일보다는 사람이다. 사실 회사에서의 업무라는 것이 어려워 보이지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나름의 절차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절차에 맞추고 미리 확인할 사항들만 잘 챙긴다면 서툴고 느릴 수는 있어도 실패라고 할 만한 일은 없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는 것에는 절차가 없다. 옳다고 생각한 접근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 by 사람이라, 누구는 웃는 얼굴로 반겨주는가 하면 누구는 성난 얼굴로 침을 뱉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불필요한 감정과 정신력을 소모하게 된다. 일하기에도 바쁘고 벅찬데, ‘이 사람에게 이런 것을 요청해도 되는 건가?‘, ’저 사람에게 이걸 부탁하면 뭐라고 하진 않을까?‘ 굳이 필요하지 않은 고민으로 시간을 허비한다. 심지어는 어디로 방향을 꺾을지 예측이 안 되는 메시급 인물들도 만날 수 있다.


봄의 문턱으로 들어가던 며칠 전, 꽃 보고 신난 강아지처럼 후배들을 우르르 이끌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화창한 날씨와 달리 후배 중 하나가 한껏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슬쩍 눈치를 보다가 ‘누가 그래쪄!, 말해봐!’라고 대뜸 물었다. 일 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별생각 없이 툭 던진 몇 마디의 말에 그 친구의 하루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옛날옛적 메신저 한 통, 전화 한 통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나의 모습이 보였다.


입사를 한 지 갓 3개월이 되던 때, 선배의 지시에 따라 유관부서 멍 과장에게 한 가지 업무사항을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그룹사 교육을 통해 배양한 업무 예절을 한껏 발휘하여 정중하게 메일을 보냈다. 내가 읽어보아도 기승전결은 완벽했고 존칭에 존칭을 보태 극존칭을 이루는 명문장이었다. 친절한 답변을 기다리던 나에게 한 통의 메신저가 도착했다. 아주 조금의 양념을 친다면 ‘뉘신대, 감히 나에게 이런 걸 묻습니까?’라는 내용이었다. 침착함을 유지하며 다시 한번 자기소개를 하고, 문의하게 된 배경과 필요한 사항을 전했다. 홀로 애간장을 태우며 기다린 답장은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모르는 일이니, 왕 차장에게 물어보라‘며 퉁명스럽게 돌아왔다.


모른다니 어쩔 수 없고, 물어볼 사람까지 알려주었으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메일을 왕 차장에게 전달했다. 아, 혹시나 또 ‘뉘신대, 나에게 이런 걸 묻습니까?’라고 할까 봐, 어떠한 경위로 연락하게 되었는지도 자세히 설명했다. 이번에도 순수한 마음으로 친절한 답변을 기다렸다. 앞선 멍 과장보다는 말투가 부드러웠다. 확인 후에 알려주겠다는 말도 나름 듬직했다. 곧이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멍 과장이었다. 그는 ‘내가 모른다고 했다고 그걸 곧이곧대로 왕 차장에게 말하면 어쩌냐’며 나를 호되게 혼냈다. 그럼 어쩌라는 말이었을까 고민스러웠다. 왕 차장이 확인하겠다는 것이 멍 과장에게 따지겠다는 말인 줄도 몰랐지.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같이 일하기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단은 모른다, 내 일이 아니라는 말로 시작하는 대협상가(?)들이었던 것이다.


그 일을 기점으로 나는 타인에 의해 상처를 받을 때마다 반감을 조금씩 키워갔다. 누군가 잘잘못을 따지고 들면 ‘뭐 나만 개새끼인가? 나만 잘못했어?’라며 뻔뻔한 마음가짐을 탑재하기도 하였다. (앞서 말했듯 스스로 개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타 종족을 비하할 의도는 1도 없음을 밝힌다.) 그러고 나면 잠깐동안은 후련했지만, 마음 한 켠은 여전히 무거웠다. 그런 태도가 장기적으로 나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마법의 문장을 만들어 마음속에 새겨두기로 했다. ‘우리는 모두 열정적이었다’


[개새끼라는 말을 쓴 것을 반성하며, 우리 시골 강아지 사진을 첨부한다.]


‘고작 10년이란 세월 속에서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보다 훨씬 오래 회사에 머물렀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풍파와 고난들을 겪었을까.‘

‘얼마나 과거에 큰 상처를 받았으면 저렇게 토라져서 남들에게도 상처를 줄까‘

‘나도 상처를 받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겠다’

‘그들도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 순수하고 열정적인 신입사원들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물론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그걸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단순히 그들을 이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한 연고 같은 문장이었다. 물론 나는 요즘도 상처를 받는다. (심지어 잘 받는다 흑흑.) 그렇지만 남이 버린 쓰레기를 굳이 내 주머니에 넣을 필요가 없다는 말처럼, 누군가가 주는 상처를 또 고스란히 받아 챙길 이유도 없다. 후배들에게도 말을 전했듯이 혹시라도 회사생활을 하며 본의 아니게 상처를 받는 이들이 있다면, 그냥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보길 권한다. 뭐, 우리는 모두 다 한 때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사람들이니깐.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 1. 오솔길을 돌아 나오는 중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