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과 단둘이 사내 카페 앞 테라스에 나무 벤치에 앉아 있다. 날씨는 더없이 화창하다. 여름을 목전에 두고 있는 파랗고 화창한 하늘과 난간 건너로 보이는 나무의 짙푸른 머리 꼭대기들.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고, 초록빛 나뭇잎도 파도친다. 테라스 위에 나무로 만들어진 차양이 만든 얼룩말 같은 그림자가 나와 팀장님 사이를 수놓는다. 얼룩덜룩한 그 빛처럼 마음도 혼란하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금요일 오후의 설렘이 여기엔 없다.
여러 번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지만, 입 밖으로는 아직도 나오기 쉽지 않다. 한 번 더 숨을 크게 들이쉰다. 폐 속에 차오르는 공기처럼, 마음속 용기를 더 채워본다.
“팀장님 이젠 정말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요.”
손에 쥐고 있던 플라스틱 컵이 살짝 찌그러지면서 끼끽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남은 말을 이어간다.
“휴직하고 싶습니다.”
작년 말부터 격주 간격으로 이루어진 주말 출근이 어느새 매주 주말 출근으로 바뀌는 동안, 몸과 마음도 꽤 바뀌었다는 걸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회사에서 더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으니깐. 그때와 비교하면 그래도 별것 아닌걸. 그렇게 무심코 넘기고 있었다.
“요즘 스트레스 정말 많이 받나 보네요?”
목에서부터 어깨까지 뻣뻣하게 잘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로 찾은 한의원에서 진료를 봐주던 J가 이야기했다. 회사 일로 무척 힘들었던 3년 전보다 더 힘든 것 아니냐고 묻는 친구의 걱정에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닌데?”라며 웃으며 답한 것도 어느덧 2달 전 일이다. 힘이 들어간 내 손 안의 플라스틱 컵처럼 찌그러지는 소리를 낸 건인지 그때는 몰랐다. 찌그러진 몸과 마음은 나도 모르는 사이 뾰족한 모서리를 만들고 있었다. 팽팽해진 긴장의 끈은 이제 탄성의 한계에 도달했다. 이렇게 잔뜩 구겨진 상태가 되어서야, 어떤 방식으로든 멈춰야 하는 상태인 것을 깨달았다.
회사 일에는 재미있는 구석이 분명 존재한다. 이렇게 맞춰보고 저렇게 맞춰보며 만들어 가는 연구개발 과정은 나와 잘 맞는다. 하지만 내 인생이 그것만으로 구성되는 건 원치 않는다. 사진도 찍고 싶고, 음악도 듣고 싶고, 책 역시 읽고 싶다. 화창한 햇살 아래에서 노곤해지고 싶고, 기분 좋은 바람을 피부로 느끼고 싶고, 뚝하고 묻어날 것만 같은 초록을 눈에 담고 싶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내 탄성의 영역 안에서 올바르게 다루고 싶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내 자리를 찾고 싶다.
후퇴라는 말이 존재하는 이유는 때로 후퇴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육아 휴직도 아닌, 그냥 휴직은 좀처럼 보기 힘든 보수적인 회사에서, 휴직은 이러나저러나 낙인처럼 남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표류하듯 방향을 잃고 나아가기보다, 잠시 멈춰 방향부터 찾아보기로 한다. 수십 년이 흘러도 여전히 모르는 몸과 마음에 관심도 가지고, 앞으로 수십 년 함께할 몸과 마음도 튼튼히 가꾸고. 팀장님과 대화 끝에 휴직은 한 달 정도 뒤에 하기로 합의했다. 기간은 두 달 정도.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하지만 방향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더 중요하다. 생각의 봄을 지나 생각의 여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