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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공감 Apr 05. 2022

우리, 변치 말자!

스물다섯 스물하나 ost



요즈음 딸아이는 산들바람 같다. 과하지 않게 밝고 부담스럽지 않게 친근하다. 온기를 머금고는 있지만 적당히 쿨하다.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본래 그녀가 이런 모습일 것이다. 아이는 여전히 사춘기를 관통하는 중이지만 잊지 말라는 듯이 이따금 제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씩 그 빈도가 늘어나고 지속되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생각도 많고 그만큼 불안 수준도 높은 엄마는 그럴 때면 얼마나 오래갈까 혹은 이다음은 뭘까 마음을 졸이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그냥 그 시간에 머물러보려 노력한다. 어차피 지나갈 시간이고 아이의 본디 모습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그랬고 내가 아는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변함없이 내가 주어야 할 물리적 정서적 양분을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어젯밤 딸아이가 일찍 잘 거라며 산책하고 돌아온 내게 제 곁에 잠시 누웠다 가면 안 되겠느냐 물었다. 사실 이런 일은 흔한데 내가 기꺼이 응해준 적이 많지는 않다. 아직 동생이 잠들지 않아서 혹은 엄마 허리가 아파서 그리고 보통은 낮에 그녀가 했던 말이나 행동이 가슴에 남아서 그러고 싶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어제는 컨디션도 괜찮았고 아들 녀석도 일찍 잠든 뒤였다. 그래서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그녀 옆자리에 누웠다.



딸은 한 손을 끌어당겨 제 손을 포개 놓고 엄마가 옆에 있으니 너무 좋다며 뺨을 비비고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어느덧 열여섯. 이제 엄마보다 키도 손가락도 길어졌다. 그녀의 기분이 유난히 좋은 것 중 하나는 아무래도 치과 대기실에 앉아 그녀가 부탁하는 대로 지체 없이 엄마가 결제해 준 스물다섯 스물하나 ost 때문일 거다. 물론 그 순간엔 치과 치료 비용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생길 줄은 몰랐다. 지르코니아 하나가 순식간에 둘이 되어버린 후덜덜한 사건. 어쩌면 그런 상황에서도 그 어떤 내색 없이 치료 비용을 결제한 엄마에게 미안했을지도 모르겠다. 한 시간이나 입을 벌리고 있었으니 몹시 피곤해했고 집에 돌아왔다 다시 나서기엔 시간이 애매해 학원 앞에 차를 세워두고 의자를 젖혀 이십여 분 자게 해준 엄마의 배려가 고마웠을 지도.



어쨌든 나는 딸아이가 나이에 걸맞은 개념과 행동거지를 지니고 있음이 고맙다. 때로 어쩜 이리 이기적일 수가 있나 여겨질 법한 발언으로 어미를 기겁하게 만드는 적도 있지만 아이는 이내 그게 잘못된 것임을 안다. 그리고 제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엄마 아빠가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딸이 그럴 때면 아이는 조절 능력을 배워가는 중이고 지금 이 모습이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되뇐다.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딸아이가 갖고픈 물건들에 대해 얘기했고 내게도 물었다.


엄마는 별로. 특별히 뭐 갖고 싶은 거 없는데? 너도 알잖아. 엄마 물욕 되게 없는 거~


그랬더니 딸이 그랬다.


맞아요. 엄마는 진짜 그러더라. 근데 엄마 MBTI 유형이 좀 그렇대요. 가성비도 따지고 좀 알뜰하고 약간 무소유, 뭐 그런 느낌?


무소유? 큭큭.


근데 나는 그래서 엄마가 더 고마워요.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내가 원하는 건 늘 바로바로 사줘서.


그 말이 정말 너무너무 예뻤다. 그래서 꼭 안아주며 말했다.


네가 과한 요구를 한적 없으니까. 늘 해줄 수 있는 수준으로만 부탁하니까. 그리고 이렇게 고마워하는 딸이니까. 무엇보다 성실하게 생활하니까. 그러니까 엄마는 앞으로도 그렇게 해줄 거야.


사실 나는 중3 여자아이들이 얼마큼의 용돈이 필요하고, 얼마나 자주 옷을 사는지, 연예인 덕질 비용은 어디까지 허용해 주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대단히 허용적인 편은 아님에도 아이가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 이 정도가 맞는 지점인 걸로 여기려 한다. 그러니 우리 서로 변치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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