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딸 아이는 전반적으로 가라앉아있는데 사춘기 진행 중인 중2답게 짜증은 기본 옵션이다. 작년 봄에는 이따금 격렬한 감정 표현을 하며 엄마에게 대적하려는 양상을 보였는데 지금은 에너지가 제 안으로 스며든 것 같다. 생각은 많은데 적절한 방향을 찾는 게 어려운 듯하고 그렇다 보니 제가 원하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불안한가 보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작년 그 시기를 관통하며 사춘기의 정점은 찍은 것이라 여겼던 나의 결론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작년 아이가 많이 힘들어했던 시기는 내게도 인생 가운데 가장 버거웠던 지점이라서 그 괴로움이 말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 그때는 사십여 년간 아빠의 딸로 살아왔던 내가 더 중요했다. 아이의 들끓는 사춘기보다는 아빠와의 마지막 시간에 에너지를 쏟는 게 너무나 합당하게 느껴졌었다. 아이도 그 모든 상황을 머리로는 납득할 수 있었기에 더 힘겨웠을 것이다.
그 시간들은 내게 단단한 가시처럼 가슴에 박혀있어서 되돌려 생각해도 꼭 같이 아프다. 그래서일까. 지금이 그때보다는 나은 상황이라 여겨진다. 사춘기가 정점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종착점에 다가간다는 느낌이다. 엄마의 마음도 조금 자라서 그런 걸 걸까?
코로나로 인해 불안정해진 것은 아무래도 아이들이 더할 텐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맞지만 지향점만이라도 분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2년이나 학교를 들쑥날쑥 가다 보니 에미도 헷갈리고 안정이 안되는데 당사자인 아이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게다가 중2부터는 본격적인 평가가 시작되다 보니 아이들에게 학교는 평가받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다. 딸의 스트레스도 결국 거기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욕심이 있고 성취지향적인 아이이므로. 물론 기본적으로 호르몬 들끓는 15세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겠으나.
요즘 나는 그저 묵묵히 참아내는 중이고 남편은 수용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으되 우리 가정 안에 설정된 경계를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응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게 가장 알맞다. 이미 엄마 아빠의 성향과 한계점을 간파하고 있는 딸에게도 잘 통하고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다. 엊저녁 아빠와 오래 이야기를 나눈 아이는 다시 조율해서 지금 상황의 문제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는데 과연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게 아침에 다시 짜증스러워졌다.
머리 감고 말리고 등교하려면 몇 시부터 준비를 해야 할지 당연히 알고 있으면서 침대에서 뭉개더니 아침을 먹으러 나와서 바락바락 신경질을 냈다.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얼른 아이를 등 떠밀었다. 그럴 시간에 어서 행동을 하라며. 날이 추우니 머리를 바짝 말리고 가려면 어서 감아야 한다고 달랬다. 그리고 오늘은 학교에 데려다주겠다 했다.
글쎄. 내 방법이 딸에게 늘 옳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어느정도 내 아이를 알고 있고, 그녀도 엄마를 잘 안다. 내 목적은 아이를 꺾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아이는 이치와 책임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샤워하러 들어가서는 무어라무어라 짜증을 부리는 것도 같더니 끝나고 나와서는 마음이 많이 진정된 듯 보였다. 기분 좋게 엄마가 준비한 아침을 먹었고, 동생이 먼저 등교하는 동안 천천히 교복을 갈아입었다.
딸과 약속한 시간에 나는 옷을 입고 마스크까지 끼고 잠바 주머니에 차키와 핸드폰을 챙기고는 소파에 앉아있었다. 아이는 2분이 지난 다음 방에서 나와 엄마를 바라봤다. 갈까? 내가 먼저 신을 신고 엘리베이터를 붙잡았다. 아이가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자 다짜고짜 폭 끌어안았다. 괜찮아.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이니까. 너도 힘들지. 네 마음을 너도 어떻게 할 수 없잖아. 엄마도 그랬어. 엄마도 알아. 아이도 나를 꼭 끌어안았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참 멋진 엄마였을텐데. 쓸데없는 말을 덧붙였다. *아. 진짜 넌 좋은 엄마를 둔 것 같아. 그렇지? 내 말에 딸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는 웃었다.
에이, 그 말은 하지 말걸. 그 말 안 했으면 완벽했던 거였는데!!!!
딸 아이 방의 전등을 함께 누워 바라본다. 사랑은 오래참고....밤에는 사랑고백 하고 아침엔 짜증내는 너의 정체는 무엇이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