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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a Mar 18. 2024

삶과 여행의 중간지대에서

미술 전공자가 시작하는 다른 여정

 "생을 여행해 보는 건 어떠신지요" 

이건 제가 블로그의 소개글에 쓰기 시작했던 문장입니다. 일기장에서 튀어나온 말이기도 하고요. 


 "구체적인 압박에 대하여 추상적인 자유를"

이 문장은 저의 모든 일기장의 첫 페이지에 제목처럼 박혀있는 문장입니다. 언제나 구체적인, 너무나 사실적이고 그래서 이것이 삶인지 아닌지가 헷갈리는 그러한 압박에 대하여 추상적인 자유를 갈망하는 것. 



 저는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평면에 선을 늘어뜨리고 색을 바르고, 그러다가 흙을 만지고 부드러움이 단단함이 되는 과정을 좋아하고 이런 실제적인 물성에 대한 감각은 언제나 저의 곁에 있었습니다. 모든 고민의 모서리에는 언제나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느끼고, 세상의 어느 곳에 위치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딱쟁이처럼 남아있었습니다. 딱쟁이를 떼어내면 또 딱쟁이가 생겼습니다. '나'에 대한 감각은 벌거벗고 바닷물에 뛰어든 것과 비슷하여 입을 벌리면 따갑고 숨을 쉬면 괴롭습니다. 누군가가 발견하면 부끄럽고 필요하지 않았던 옷가지가 필요해집니다. 어떨 때는 움직인 만큼 나아가고 또 어떨 때는 나의 밖에 너무나 거대한 것이 있어서 무력해지죠. 


 돌아서서 바라보면 다양성의 수용과 무언가를 향한 맹목적 애정이 좋아서 미술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에 틀림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어쩌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태도를 훨씬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라는 불확실한 종결이 두 번이나 연달아 있는 이유는 그만두겠다는 다짐도, 지속하겠다는 열정도 없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태도에 대한 더 내밀한 의미를 알지 못했던 때, 즉 태도가 무엇을 내포하는 지를 언어로 치환하지 못했던 때에서 한 발자국 진보하여 시선을 공유하겠다는 확신이 들었으니 이 작업을 먼저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 프랑스의 남부도시에 있습니다. 2년 정도를 혼자 공부하던 프랑스어를 이곳에 와서 배우고 있습니다. 들었던 것을 말하고 외웠던 것을 밖으로 꺼내고 그렇게 나의 말이 되고, 읽었던 것을 듣고, 이런 말과 말 사이의 상호작용, 들리는 말과 읽히는 말 사이의 유동적인 움직임에 소리와 모양과 의미를 하나씩 집어넣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낯선 언어로 저를 소개하고 말의 막힘을 느낄 때 머릿속에선 한국어로 된 생각들이 가득 찹니다. 


 하얀 평면에 까만 글자가 비석처럼 박혀있는 글이라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입체적일 수 있고 그 입체성으로 세상의 뒷면과 구석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여전히 신기함으로 다가올 때, 당연함에 매몰되지 않을 때 쓰인 날것의 글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쓰겠다거나 들려드리겠다는 말이 아닌 보여준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저의 글이 그렇게 다가가길 바라기 때문이죠. 세상의 사각지대를 보고 모서리를 산책하고 구석에 앉아있는 그런 순간들을 텍스트의 형태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여준다'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마음은 세상을 어떻게 여과할까요. 삶과 여행의 중간지대의 시간. 달리 보내는 시간은 세상을 다르게 여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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