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육아는 잘 몰라 서툴렀지만, 아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래서 감정적으로 풍부했던 시간이었다. 둘째가 오고 첫째가 아기였을 때 느꼈던 몽글몽글한 감정들을 다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설렘도 있었다. 하지만 첫째 때보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진 육체는 둘째를 온전히 받아들일 힘이 없었다.
첫째 때보다 둘째를 향한 손길은 거칠었다. 둘째에게 미안했지만, 아이를 소중히 다루기 위해선 힘이 있어야 한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둘째가 아기일 무렵 인사이트 카드를 뽑을 때마다 미르가 많이 나왔었다. 미르 뚜껑을 열면 쌉싸래하면서 고요하고 묵직한 향이 퍼지기 시작한다. 미르는 찐득찐득한 꿀 같은 점성을 지녔다. 오일이 떨어지길 한참 동안 기다리면 짙은 밤 갈색 오일이 천천히 흘러나온다.
손끝에 한 방울 덜어내어 꼬리뼈 쪽에 문지른다.
향을 맡으며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한다. 이 오일이 내게 힘을 주길 바라면서.
쌉싸름하면서도 짙은 내음이 느껴지는 묵직한 향에 호흡을 집중하고 있으면 나무로 둘러인 사찰에 들어선 기분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내가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해 본다. 손길이 지나는 곳마다 스쳐 지나가는 미르향이 나를 현재에 머무를 수 있게 도와준다.
첫째를 만나 아기의 표정 하나 움직임 하나에 신기해하고 몰입하던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둘째는 둘째의 욕구를 처리해 주기 급급한 시간이 흘러갔다. 첫째가 울면 아이의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시도해 보며 서툴렀지만, 아이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도 같이 느꼈었다. 둘째는 울면 첫째를 키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빨리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그러고 나면 아이를 바라볼 새 없이 첫째 부름에 달려가거나 씻어 놓지 않으면 쓸 젖병이 없어 젖병 씻기에 바빴다.
왜 둘째에겐 첫째 때와 같은 감정이 생기지 않는 건지 여유가 없어서인지 내 마음이 변해서인지 답답했다. 첫째를 키우던 시절처럼 아이에게 몰입하고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현실에 예전 감정이 계속 그리웠다. 나중에 알았다. 첫째 때 느꼈던 몽글함과 행복감은 '그때의 나'에게 허락됐었던 시간이었다는걸.
그 시절 오일을 바를 때마다 힘을 얻어 다시 현재에 집중했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나 혼자 버텨내야 하는 날에는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오일을 발랐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현재에 집중하려고 발버둥 쳤다.
그랬던 시간을 지나 둘째가 27개월이 되었다.
지금은 미르 오일이 자주 나타나진 않는다. 아이가 자란 만큼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아이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말을, 단어를 한마디로 표현할 줄 알게 되었고 그만큼 내게는 여유가 생겼다. 다시 아이와 있는 현재에 집중할 수 있고 아이와 함께 있음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쌉싸름하면서도 묵직한 흩내음을 지닌 미르향을 맡아본다.
천천히 흘러내리던 그 짙고 묵직한 오일처럼 내 시간도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