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도 산타가 필요하다.

by eun

올해는 트리를 하지 않았다.

처음이다.


집에서 최대한 보내고 싶은데

집은 엉망이고

나는 지쳐 있고

남편은 몸살로 누워 있다.


늘 공휴일에 아이들이 심심하게 집에 있으면 마음이 굉장히 불편하던 나였다.

그럴 때면 누워있는 남편한테 화살이 돌아가기 일쑤였고, 집안 분위기만 험악해진 채로 공휴일을 흘려보내곤 했다.


아이들 리듬에 멀리 나가는게, 현란한 것들을 보여주는게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주말을 집에서 보내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 마음은 2025년을 지나며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다시 불편하다. 한동안 괜찮았는데 왜 지금 아이들이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게 불편할까... 둘째가 심심한게 눈에 보여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본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가 되면 밖은 한껏 들떠 있었는데, 우리 집은 늘 조용했다. 아빠는 낮잠을 주무시고, 엄마는 집안일을 했고, 나는 심심해서 재미없는 TV를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아마 TV가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요란하게 떠들어대지 않았다면, 나는 내 하루를 그렇게까지 작게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인데 나는 뭐 하고 있지?' 그 질문이, 그때의 나를 유난히 외롭게 만들었다.


역시나 원인은 어린 시절의 나였다.


그때의 텅 빈 마음을 이제라도 채워주고 싶어, 어린 나에게 편지를 써본다.


"은아, 그 시절 많이 외로웠구나. TV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너만 집에서 심심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 많이 속상했구나. 이리와 엄마가 꼬옥 안아줄게. 그때는 사느라 바빠서 어린 네 마음을 살필 여유가 없었어. 그렇게 혼자 두어서 미안해. 올해부터는 아이들만 챙기지 말고 우리 딸이 크리스마스에 하고 싶은 것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사랑한다. 우리딸."


내가 나에게 이상적인 엄마가 되어 편지를 적고 있으니 겨울이 될 때마다 갖고 싶었던 빨간 목도리가 생각난다. 늘 고민만하고 사지는 않았던 것. 오늘 나에게 선물해줘야겠다.


내 마음의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 아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설거지를 하며 아이에게 크리스마스에 하고싶은 일을 적어서 와보라고 했다.


아이는 색종이 접기, 가족이랑 숨박꼭질하기, 아이스크림 먹기, 아지트 놀이, 1,2,박수 놀이, 놀기를 적어왔다.

아이가 지금 어디 멀리 가고 싶은 건 아니구나. 그 사실이 괜히 고마웠다.


아이가 색종이를 접게 만들어 주고 점심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이는 동생과 건조대를 세모로 세우고 그 위에 이불을 덮은 아지트 밑에서 뒹굴었다. 캠핑의자를 양 옆에 두고 가운데 이불을 깔아 새로운 아지트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지트 안에서

아이들은 이불을 끌어당기고 웃고 떠들었다.


트리는 없었다.

사진에 남길 장면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내 어린 시절의 기억 한 조각을 찾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크리스마스

아직은 잘 보낸 것 같지도, 그렇다고 못 보내고 있는 것 같지도 않지만, 나를 놓치지 않고 하루를 보내고 있다.

엄마에게도 산타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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