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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훈천 Jul 14. 2024

나경원과 정율성 기념사업

정율성 논란으로 짚어 본 나경원의 정치리더로서의 자질

국민의힘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거 첫 합동연설회가 광주에서 열렸다.

지난 총선에서 광주시민은 국민의힘에 대해 실낱같은 기대마저도 접으며 차갑게 평가했지만, 그래도 집권 여당이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는 선거를 광주에서 시작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우호적인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나경원 당 대표 후보에 의해 발생했다. 그녀가 합동연설회에 앞서 ‘정율성 공원’ 조성 현장을 방문해 쏟아낸 말들 때문이다.

나경원 후보는 정율성 공원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라고 치를 떨면서 공산주의자를 광주에서 기념하다니 “치욕”이며, “국가의 근본을 부정하는 행태에 분노”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정율성에 대한 가치 평가와는 별개로, 당 대표 후보로 나선 인물이 자기 정당의 정치적 불모지에 가서 그 지역에서 이미 완성단계에 있는 사업에 대해 시비를 걸고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며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 모습인지 의문이다.


나경원 후보는 광주에 시민의 이해와 지지를 구하러 왔는가, 광주시민을 모욕하고 비난하러 왔는가?

나경원 후보는 합동연설회에서도 "민주당의 호남 가스라이팅, 민주당의 호남 착취를 끝내겠다"라고 외쳤다.

국민의힘이 호남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이 민주당의 가스라이팅 때문이라는 인식은 인지 부조화의 끝판왕이며, 호남 시민을 가스라이팅이나 당하는 우매한 군중으로 취급하는 엘리트주의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당 대표 후보로 광주에 왔으면 광주시민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지지를 구해야 한다. 광주시민의 자부심에 상처를 주고 지역 사회의 노력을 폄훼하는 언행에는 신중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경원 후보는 정치인의 기본 소양인 존중과 배려가 매우 부족한 함량 미달의 정치인임을 증명한 셈이다.

 정율성 논란은 광주 지역 사회의 아픈 상처로 곪아가고 있다.

광주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중국과 북한의 군가를 작곡하고 한국전쟁에 적국의 군인으로 참전한 정율성을 기념하는 것이 국가 정체성 문제를 불러올 수 있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할 수 있다. 정율성을 항일 독립운동가로 기념하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에 맞는지 그의 음악적인 성취를 지나치게 미화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변화하는 한중관계에서도 정율성 사업이 여전히 한중우호와 중국 관광객 유치에 실효성이 있는 사업인지 의문을 표하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런 의문 제기와 논의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차분하고 진지하게 지성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정율성 논란은 철저히 정략적인 계산 아래 비이성적인 여론몰이의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강압적으로 진압당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돼가고 있다.

국민의힘 당 대표 나경원 후보는  7월 8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현장을 방문했다. 이와 관련해 나후보는 그녀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국민의힘 호남·제주 합동연설회 이전 꼭 들려야 할 곳이 있어 다녀왔습니다. 일명 ‘정율성 공원’이라 불리우는 이 곳, 중국 내 혁명 서열 10위 안에 드는 6.25 전쟁 주범 정율성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경악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중국과 북한 국적의 공산주의자를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기념하다니요. 치욕입니다."저는 우리 국가의 근본을 부정하는 이러한 행태에 대해 분노할 수 밖에 없습니다.즉각 철회하고 진정한 민주화를 기념하는, 시민을 위한 역사공원으로 바뀌어야 합니다.광주시민께 민주화 역사공원, 광주 근현대 역사공원을 되돌려주십시오."  /사진=나경원 페이스북


정율성 논란은 지난해 8월 당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누구를 위해 48억 원을 바친단 말입니까?'란 선동적인 글을 올리면서 촉발됐다. 지난 30년 가까이 중앙정부가 주도하고 광주시와 남구청, 화순군이 호응해서 진행하던 사업을 뜬금없이 현직 장관이 행정적인 절차가 아니라 SNS를 통해 이슈화했다. 이는 홍범도 흉상 철거 문제와 함께 여당 내 반공 보수 강경파의 이념 공세를 통한 국정운영 드라이브이자 총선전략이었으나, 홍범도 흉상 철거에 대한 여론의 지탄과 강서 보궐선거의 참패 등으로 반공 이념 공세를 국정 운영 기조로 삼으려던 정부의 시도는 중단되었다. 그런데 유독 정율성 논란은 여전히 정략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정율성 문제가 이데올로기의 문제일 뿐 아니라 뿌리 깊은 호남차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공 전체주의자 박민식이 선봉에서 깃발을 들자 냉전 구태 세력과 호남차별론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보수언론은 대대적으로 기획 기사를 쏟아냈고 지역 내 몇몇 보수단체가 시위에 나서자 호남차별론자들은 이를 먹이 삼아 신바람이 나서 정율성 논란을 키우고 또 키웠다. 마침내 공산주의자 정율성을 기념하는 광주는 반국가세력이라는 여론몰이에 광주는 무릎을 꿇었다. 냉전 구태세력과 호남 차별론자들의 공세에 민주당이 방조하면서 정율성 기념사업은 모조리 무산의 길로 들어섰다. 화순군은 정율성 관련 기념물을 모두 철거했으며, 광주시는 정율성 음악축제와 전시관 사업을 전면 백지화했다. 정율성 역사공원도 그 명칭변경과 운영방안에 대한 최종 검토가 회의 일정으로 잡혀있다고 한다.


정율성 기념사업이 중단된 것은 호남 차별의 결과다. 김원봉 기념사업은 경남 밀양에서, 윤이상 기념사업은 경북에서 계속 추진되고 있다. 북한과 연관성이 있지만 항일 운동과 문화 예술 분야에서 업적이 있는 김원봉, 윤이상 기념사업은 지속되는 반면, 정율성 기념사업은 중단됐다. 이는 호남 지역에 대한 차별적 대우이며, 이를 극복하지 못한 호남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정율성 기념사업은 김원봉, 윤이상과 달리 단순한 기념을 넘어 실질적인 경제적, 외교적 이익과 관련이 있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의 유착이 강화되고 있는 국제정세에서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이를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지난 1월에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율성 선생은 존중받을만한 저명한 음악가"라며 광주전남의 "정율성 선생과 관련한 문화 교류 활동은 중한 우호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라고 평가했다. 정율성 기념사업이 중국 관광객의 유치뿐 아니라 중국과의 외교적인 교류 협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집권 여당을 이끌 정치 지도자라면 정율성 논란과 관련된 이상의 맥락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보수언론이 나팔을 불고 지역 내 일부 보훈단체가 박자를 맞추니 얼씨구나 하면서 다 죽은 거나 진배없는 사업에 침 한번 뱉고 지나가는 나경원 후보의 행태는 국민의힘과 보수에 대한 호남인의 염증을 극대화한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 첫 합동 연설회가 열린 광주에서 벌어진 나경원 후보의 발언과 행동은 그녀의 정치적 성숙함과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대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는 광주시민에 대한 모독, 지도층 인사로서의 냉전적 사고의 편협함, 역사와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나경원 후보는 국가와 국민 그리고 여당의 불행을 막기 위해 본인의 정치적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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