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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레인저 Oct 11. 2023

작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기를.

- 결혼 4년차 부부 이야기

"여보, 변기 물 좀 잘 내려줘"

잠자기 전 볼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변기 물을 내릴 때 뚜껑을 꼭 닫고 내려야 균들 맴돌지 않기에  변기 뚜껑은 항상 닫겨 있다. 그리고 작은 볼일을 보기 위해 변기를 여는 순간. 아 깜짝이야. 변기 안에서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이런. 바로 물을 내리고 볼일을 보기 위해 변기 뚜껑을 다시 열었는데, 물이 차오른다. 도망갈까? 아마 잔득 넣은 휴지 때문에 변기가 막혔을 것이다. 이내 물을 내림과 동시에 처음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 곧장 화장실을 나와 책을 보고 있는 아내에게 지금 상황을 전했다. 아내가 화장실로 와서 상황을 보더니 한참을 조용히 스마트폰을 만진다. 뭐해?라고 물으니 변기 뚫는 방법 검색 중이란다. 


그냥 물을 내려주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지라고 이해할 수도 있었지만 아내에게 말 한 이유는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볼일을 볼 때 물을 꼭 내리고 한 번 더 확인을 한다. 혹여 흔적이 남았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가족끼리 뭐 어때라고 할 수 있지만 뭐든지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 가족은 아니니까. 밖에서는 더욱이 여러 번 확인한다. 내가 꼼꼼한 것인지, 아내가 덜렁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조금 시간이 걸렸다. 화장실에서 변기 참사를 겪고 나면 한동안 변기 뚜껑을 살포시 열어 본다. 


꽉 막힌 변기는 다음 날 열어보니 물이 슬슬 내려가 더 처참한(?) 모습이 되었다. 아침 일찍 집 근처 철물점을 검색해 본다. 아침 8시에 여는 철물점에 전화를 걸어 뚫어뻥이 있는지 확인 후 출발했다. 기본형 5천 원, 프리미엄 6천5백 원. 당연 프리미엄을 선택했다. 혹여 기본 뚫어뻥으로 해결이 안 될까 봐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변기를 시원하게 뚫었다. 아무래도 뚫어뻥을 만든 사람은 천재인듯했다. 아내에게 뚫어뻥으로 금방 뚫었다며, 다음부터 휴지를 넣지 말라고 한 마디 더 했다.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다. 이 말은 하지 말걸. 


부부란 일상생활 속 다툼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일 때문이다. 변기가 막힌 것도 6천5백 원에 1분도 안되어 해결되었다. 내가 불쾌했던 것은 변기에 꽉 막힌 휴지와 큰놈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마 꽉 막힌 변기 속 뒤엉킨 휴지처럼 내 마음도 다른 일로 뒤엉킨 탓이겠지. 결혼 생활 3년이란 시간 동안 변기 물을 안 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어떤 날은 아내에게 웃으며 농담 한 적도 많았기에.


작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기를. 결혼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자주 되내이는 말 중 하나이다. 결혼 생활 중 생각보다 작은 일로 다투는 사람이 참 많다. 빨래 할 때 옷을 뒤집어 넣는 것, 싱크대에 침을 뱉고 물을 뿌리지 않는 것, 옷을 갈아입고 치우지 않는 것 등 지극히 사소하면서 단순한 일들. 하지만 각자가 다른 삶과 인생을 살았기에 다른 기준으로 상황을 해석한다. 이걸 왜 못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기나긴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 결국 부부사이에 남는 건 상처뿐.


오늘도 빨래통에 뒤집어 놓은 티셔츠를 보며 생각한다. '아기 보느라 바빠서 그랬구나.' 싱크대에 침을 뱉고 물을 뿌리지 않은 것을 보며 생각한다. '비염이 심해서 그랬구나.' 옷을 갈아입고 치우지 않는 것을 보며 생각한다. '이건 왜 안 하는 거지?' 이해하지 못할 것들도 참으로 많지만, 지극히 사소하고 단순한 일. 사랑하는 아내와의 관계를 티셔츠와 침, 내리지 않은 변기 따위 때문에 저버리길 모두가 원치 않을 것이다. 오늘도 작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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