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프롤로그

봉황의 생존일기를 시작하며

봉황. 네이버의 '유물 속 동물 상징' 백과사전을 보면 이러하게 적혀있다. 


"'새 중의 왕은 봉황새요, 꽃 중의 왕은 모란이요, 백수의 왕은 호랑이다'라는 말처럼 봉황은 모든 새의 우두머리로 여겨지며, 한국인의 의식에서 상당히 비중 있는 민속 상상 동물이라 할 수 있다.... (중략)...  봉황은 우는 소리가 퉁소를 부는 소리와 같고, 살아 있는 벌레를 먹지 않으며, 살아있는 풀은 뜯지 않고, 무리 지어 머물지 않으며, 난잡하게 날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으며, 오동나무가 아니면 내려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아무리 배고파도 조 따위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중략)"


새 중의 왕인 봉황이 묘사되어 있는 유물들을 보면 참 우아한 상상 속 동물이지만 그만큼 많이 예민하고 까다로운 동물임에 틀림이 없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아무리 앉고 싶어도 오동나무가 아니면 패스, 아무리 배고파도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안 된다니. 우리의 기준으로 봉황을 바라봤을 때 '참 세상 살기 힘들겠다' 싶지만, 봉황도 오동나무에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를 안 먹는 우리를 보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나, ' 혹은 '저러다 배탈 나지! 쯧쯧!' 하며 근심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나의 예민함이 세상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봉황과 비슷한 것 같아 그만 실소를 했다.


봉황에 대한 글이나 유물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이 세상에서 예술가로 살아남기란 마치 봉황이 세상 속으로 내려와 좌충우돌 현실의 장벽에 수없이 부딪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예술을 전공으로 선택하여 진학할 땐 예술계에 한 획을 긋는 우아한 봉황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입학하지만, 교수님들은 하나같이 이 동기 중에 중년 작가로 살아남는 학생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기수라고 말씀하신다. 어린 마음에는 그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시작인데 왜 저런 말씀을 하실까?' 라며 '난 반드시 살아남겠어!'라는 오기도 생긴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한 지 11년인 지금도 예술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내가 주위를 둘러보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제야 말씀에 담긴 깊은 의미를 알겠다. 


본업을 위한, 그리고 생계유지를 하기 위한 일을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바뀌고 있고, 철도 아주 조금은 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곰돌이 푸의 당나귀인 이요르 (Eeyore)처럼 어딜 가나 작은 비구름이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기분이다. 아마 나만 이런 기분, 이런 마음이 들진 않을 것이다. 생존일기를 통해 이제 갓 현실 속의 예술로 입문한 작가님들께는 같이 힘내보자는 응원을, 이 순간에도 열심히 삶을 영위하고 있는 청년 작가분들께는 오늘도 고생이 많았다는 위로를, 그리고 청년 예술가의 삶이 궁금하여 읽기 시작하신 분들께는 소소한 재미를 드리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