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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볕 들 날이 올까?

강서대묘 벽화 속 주작 이야기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만큼, 예술인들이 예체능을 진로로 선택하게 된 나이 또한 다양하다. 어릴 때부터 꾸준하게 예체능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예술인도 있고, 중고등학교 때부터 예체능의 세계로 들어온 예술인도 있고, 3-40대에 시작한 예술인도 있다. 혹은 76세에 신진 작가로 데뷔한 로즈 와일리 작가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혜안을 가지고 있는 나이에 작가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든 이유들을 내가 다 알 수 없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예체능이 죽을 만큼 좋아서' 시작했다는 것이다. 죽을 만큼 좋아서 시작했지만 정작 현실은 죽을 만큼 힘들다.


대학교 졸업 후 작품활동과 삶을 영위하려면 돈이 필요하니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예체능에 갓 입문한 뒤에 마주한 현실의 벽은 '진격의 거인'의 벽만큼 너무 높다. 도대체 예체능의 현실은 어떻길래 많은 작가들이 힘들다고 할까? 쉽게 말하자면 락다운되던 코로나 팬데믹 초기의 사회 속을 이미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하면 와닿을까. 일자리를 찾아보면 막상 생각보다 너무 없고, 고정 수입도 없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모든 일들이 뚜렷하고 깔끔하게 지나가는 법이 없고,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을 하루하루 그저 묵묵히 걸어 나간다. '아니, 왜 일자리가 없어? 사람이 없어서 일터에서는 곡소리가 난다는데?'라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당연히 일자리는 많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십중 팔구는 '예체능이 이걸 할 수 있겠어?, ' '예체능이 뭘 안다고?, ' '아니 가서 작품이나 하지 왜 여기서 일하려고?, ' '미안하지만 우린 예체능 출신은 안 뽑아' 등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예체능은 절대사절이라는 거절의 이유로 좁혀지고 수만 번 듣게 된다. 참 지독한 편견이자 선입견이다.


무한 긍정 파워를 깊은 속에서 끌어올려내어 '난 그래도 할 수 있다!'라고 마음을 다잡아보며 다시 일자리를 찾아본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저런 말들을 계속 듣다 보면 참 힘이 빠질 때도 있고, 속으로 울음과 분노를 삼키지만, 겉으론 평온한 얼굴을 보여주며 지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주저앉게 되면 정말 사회가 바라보는 부정적인 예체능인이 되어버릴 것만 같고, 이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어린 봉황도 처음부터 멋지게 날진 않았을 것이다. 수만 번 나는 연습을 한 후에 우아하게 날아다니는 어른 봉황으로 성장한 것이 아닐까? 분명히 봉황도 우아하게 나는 연습을 할 때에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고 실수도 많이 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머리 한 구석이 훨씬 가벼워진다.


아니, 좋다. 닥치는 대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 N잡러로 살아간다 해도 이 세상은 언제 나의 예술성을 알아줄 것인가? 신이 있다면 나의 절박한 외침은 한 번쯤은 들어보신 것일까? 라며 취기가 어린것 같은 객기도 부려본다. 조상님들은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도대체 언제인가 싶다. 나는 빨리 자리 잡고 싶은 마음에 더 조바심이 나고 현실의 벽이 넘어버리기엔 너무나도 버거운 존재로 느껴지는 나날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강서대묘의 주작을 만나게 되었다. 박물관 1층 상설 전시실로 가면 바로 오른쪽에 선사, 고대관 입구가 보인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걷다 보면 고구려실이 나오고, 고구려 무덤 벽화의 절정기를 보여주는 강서대묘의 벽화가 고구려 실을 찾아온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벽화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어 특별함을 더한다. 사신도의 주인공은 청룡 (파랑), 주작 (빨강), 백호 (하양), 현무 (검정)이다. 이 네 마리의 상상 속의 동물들은 지키는 방향도 정해져 있다. 동쪽은 청룡, 서쪽은 백호, 남쪽은 주작, 북쪽은 현무이다. 방향이 정해져 있어 '사방신'이라고도 불린다. 주작은 영어로 Red Phoenix로 번역이 된다. 그렇다. 불사조로 번역이 되지만 봉황도 영어이름이 Phoenix다. 불사조와 봉황은 살짝 결이 다른 것 같지만 영어 이름이 같은 걸로 보아 봉황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관점이 다를 수도 있고, 혹은 이 둘은 사촌 지간일 수도 있다. 무튼 주작이 봉황이다.


강서대묘 속 사방신은 죽은 이를 지키기 위해 그렸다. 강서대묘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고 상상해 보자. 전기가 없으니 그 안은 컴컴할 것이다. 오직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손에 든 손전등 불빛 하나다. 해리포터 덕후인 필자는 어디선가 "딴 따라 딴 따 라 라~"로 시작하는 헤드위그의 주제곡이자 해리포터 영화의 도입 부분 음악이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손에 손전등이 아니라 마법 지팡이에 '루모스'를 외치며 걷고 있단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현실은 아주 고요하다 못해 적막할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사방신을 만난다면? 사방신이 그림인지 아니면 현실에 있는 동물인지 순간 분간이 안될 거 같다. 너무 놀라면 이성의 판단을 잃어버리게 되니깐. 아마 해리포터의 비밀의 방에 나오는 고대 괴물인 '바실리스크'를 실제로 마주하는 느낌이 아닐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평남강서 강서대묘 현실 입구 남벽 동쪽 주작.

다음은 국립중앙박물관 100선 도록에 나오는 강서대묘 설명글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강서대묘 그림은 벽화모사도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의뢰를 받은 동경 미술대학교 오버스네키치와 오타 후쿠조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지금까지 발견, 조사된 고분 벽화 가운데 매우 중요한 고분 벽화를 실물 크기로 모사한 것이다. 현지에서 벽면의 장면을 분리한 부분도를 낱장 형태로 그리고, 다시 완전한 벽면으로 조합해 완성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돌방벽화 무덤으로 잘 다듬은 벽면에 사신도가 그러져 있다. 벽화의 사신은 사리적이면서도 운동감이 넘치는 유려한 필치를 자랑해, 동아시아 회화의 백미로 꼽힌다. 이 모사도는 벽화가 훼손된 모습까지도 그대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대단히 높고 벽화를 복원하는데 유용한 자료로 쓰이고 있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가서 보시라고 흑백 사진으로 올려둔다.



학술적인 가치가 엄청난 강서대묘의 벽화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많은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까지 천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강서대묘 벽화를 그린 장인은 인정받고 싶어서 벽화를 그린 것이 아닐 것이다. 세상의 인정을 받는 것은 나의 의지와 노력이 아닌 다른 차원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당장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또래들처럼 번듯하게 자리 잡고 나의 작품들도 빛이 나는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한 번뿐인 인생, 현실의 감각도 지켜내며 시간과 물질적인 것을 초월하여 오로지 나 자신을 작품에 몰두하는 두 가지의 시간을 한 번에 살아내 보는 것도 참 값진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 다짐하며 새로운 하루를 맞이해보려 한다. 누가 뭐래도 내가 나에게 떳떳한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젠가 볕 들 날이 찾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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