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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나는 봉황 (2)

당당하게, 우아하게, 자신 있게! 

서봉총 금관의 봉황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그 자태가 하와이에서 보았던 '천국의 새'라는 꽃이 연상된다. 극락조라는 새의 모습과 유사한 꽃이어서 꽃의 이름도 새와 똑같이 천국의 새 (Bird-of-Paradise)로 불린다. 남 아프리카에서 자란다는 이 꽃은 하와이의 길거리에서도 눈에 띄고, 꽃집에서도 볼 수 있고, 전시 오프닝 리셉션이나 로비 등에  분위기를 화사하게 해주는 꽃꽂이의 특별 손님으로 종종 등장한다. 여행 중에 이 꽃을 보물찾기 하듯 한번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와이키키 비치 리조트 근처에서 찾았던 천국의 새

처음 이 꽃은 대한항공 (혹은 아시아나 (?) 너무 어릴 적이라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어린이 항공 뉴스레터에서 하와이를 소개하는 글에서 봤다. 짧은 글에 곁들여진 꽃의 사진은 어린 나의 눈길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어떻게 쨍한 색깔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데 조화로울 수 있을까?'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언젠가 꼭 내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천국의 새와 금관의 봉황은 참 당당하고 우아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왕관을 만든 장인이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금관 속 봉황들처럼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히든 메시지를 넣어둔 건 아닐까 하는 '내 맘대로' 판타지 소설도 써본다. 내 맘대로 판타지이니 금관의 봉황은 천국의 새처럼 알록달록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상해보기도 한다. 여러 동양화에 붉은색으로 묘사되어 있으니 너무 터무니없는 상상은 아닐 것이다. 


예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낮춰 부르는 환쟁이, 딴따라 등의 말들이 있다. 이 단어들은 예술가 자신만이 자신을 '겸손'하게 말할 때 사용할 수 있다. 가령 그림이 본업인 필자가 "환쟁이의 삶은 녹록지 않죠."라고 말하는 건 괜찮지만 다른 타인이 필자에게 "환쟁이 삶은 참 힘들죠?"라고 하면 그건 굉장히 무례한 것이다. 아주 작고 미세한 차이이지만 예술을 업으로 삼은 이들이 듣기엔 큰 차이가 있다. 


환쟁이는 이미 현대 사회에서 많이 사라진 단어라고 하지만 의외로 심심치 않게 종종 들리는 단어이다. 오늘날 이 단어를 한 번쯤은 들어본 것은 아직도 예술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들이 그리 따스한 편이 아니기도 하고 예술가들이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말할 때 종종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들도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지칭하기 위해 낮잡아 부르는 호칭의 사용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이미 현실 속에서 많은 편견과 선입견을 씩씩하게 헤쳐 나가며 살아가고 있는데 굳이 낮춰서 우리의 직업을 지칭할 필요는 없다. 이 매력적인 직업을 스스로 낮춰서 소개하지 않았으면 한다. 예술의 길로 들어설 때의 첫 마음 그대로 자신감 넘치며 금관의 봉황처럼 당당하고 천국의 새 처럼 우아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이니 우리부터라도 그저 담백하게 '작가', '예술가'라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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