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처럼
나는 매일, 그 문 앞에 섰다.
잡지도 못한 손잡이 앞에서,
틈으로 새어 나오는 공기만 조용히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문을 열면,
따뜻했던 기억보다 먼저
고통스러웠던 그날이 달려들었다.
“왜 안아주지 못했어.”
“왜 아무 말도 못 했어.”
“왜 그렇게 보내버렸어.”
오로지, 후회뿐이었다.
그날처럼, 알리가 피똥을 쌌다.
검붉고 끈적한, 콧물처럼 질질 흐르는 똥.
보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런 똥, 어디서 봤더라?
토토.
그래. 그거구나.
나는 다시 달렸다.
도무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던, 토토를 보냈던,
그 망할놈의 24시 동물병원으로.
결과는 췌장염, 장염, 방광결석, 신장결석.
줄줄이 붙은 진단에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요즘의 나는, 놀라기보다는 그냥 받아들이는 쪽에 더 가까우니까.
‘생각보다 괜찮네.’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이며 돌아섰는데,
가슴이 묵직하게 꾹 내려앉았다.
누구 때문인지, 나는 안다.
풀숲에 환장하는 별이를 위한 구충제 이야기에서
말이 돌고 돌고 돌아, 결국 그 이름까지 가 닿았다.
그렇게 진료실 문턱에서 1년 가까이 삼켰던 말이, 불쑥 새어 나왔다.
“혹시… 작년에 왔던 토토라는 아이, 기록이 남아 있을까요?
있다면… 제가 한 번만, 볼 수 있을까요?”
그 친절한 수의사는 말없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토토는 당시 심장약을 복용 중이었고,
한 달 가까이 곡기를 끊고 수액으로 간신히 버티던 상태였습니다.
기록상, 그날은 호흡곤란 증상으로 내원하셨고
상태가 너무 위중해서 엑스레이도 찍지 못했다고 되어 있네요.
이런 경우… 보통은 폐수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 그랬겠지. 나도 알고 있었다.
몰라서 물은 건 아니었다.
그냥 그날 거기에 있던 수의사 중 하나였고,
그가 대표 원장이라길래
전문가의 확인을 1년이 다 되어서라도
들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고 했다.
어쩌면 살짝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놓아줄 때가 됐다고.
이제는 웃으며 기억하라고.
나도 안다. 머리로는, 다 안다.
그런데 마음은,
아직도 토토가 떠나던 그날의 그 문 앞에 웅크린 채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토토는
내가 그 문 앞에 그렇게 오래 쪼그려 앉아있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토토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다.
"언니, 이제 그만 나와. 나 거기 없어."
그래서, 이제는 닫기로 했다.
닫힌 문 뒤에 토토를 가두는 게 아니라,
이제는 다른 문으로 데려올 것이다.
생기 넘치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던 그 모습 그대로.
곧, 토토의 기일이 다가온다.
이 말은 곧, 지난 1년 내내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시기가 있었고,
웃는 순간마다 죄책감이 덜컥 따라붙었다.
6월 15일. 딱, 그날까지만.
그날까지만 아픔의 문 앞에 서 있다가,
그다음엔 ,
슬픔보다 사랑을 먼저 꺼내어
기억 속 가장 사랑스럽고 예뻤던 모습의 토토를
다시 꺼내 안아보려 한다.
토토가 진짜 머무는 곳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이라는 걸
이제는 정말, 믿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