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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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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이 May 06. 2023

개는 진짜 키우면 안 된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지난 주가 진심 컨디션 난조였다.

그래도 놀러 가서 푹 쉬고 푹 자야지 했더란다.

아직 팔팔한 8세 별이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알리는 여기저기 다른 강아지들의 흔적을 찾아 킁킁대느라 바쁘고 토토는 관절염 때문에 뛰어다니지는 못하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좋냐, 이 놈들아'하며 엄마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혀를 잔뜩 내민 토토가 너무 해맑아 보여서

처음엔 이 멍청한 주인은 토토가 여행온 게 좋아서 그러는 줄 알고 뿌듯해했다.


밤 11시. 이 녀석의 호흡이 비정상적으로 가쁘다는 걸 알아챘다. 분당 호흡 수 45~50회.

그리고 이어지는 개구호흡.


심상치 않아서 근처 동물병원을 검색해 봤으나 실패.


우리가  있는 곳은 공기 좋고 산 좋은 괴산.

이 산골엔 24시 동물병원 따윈 없다.

1시간 가까이 달려 청주로 가야 했다.


칠흑 같은 어둠과 억수 같은 비를 뚫고 고속질주해서

청주의 한 24시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지금은 응급 환자(견)가 많아 토토를 봐줄 수 없단다. 숨 넘어가기 직전인 애들이 많았나 보다.


결국 근처의 다른 병원을 검색해서 찾았는데 주차장이 보이지 않아 인도에 대충 욕먹어도 싸게 주차를 해놓고 뛰어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또 별일 아닌데 내가 설레발친 것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결국 폐수종이었다.


심장만은 멀쩡하길 바랐는데..

이렇게 심부전과 신부전의 콜라보가 시작되었다.

엑스레이 사진(왼쪽)을 보면 물이 많이 차서 심장과 폐를 구분할 수가 없다.

왼쪽 5월 5일 새벽.                     오른쪽 5월 5일 오후



토토는 이뇨제 주사를 맞고 산소방에 입원.

왜 내가 여기있는거냐!!


나는 다시 비를 뚫고 괴산으로 돌아갔다.

이때는 희한하게 눈물도 안 나더라. 


밤을 거의 꼬박 새우다시피 하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서 다시 청주 도착. 오후 2시에 데리러 오랬는데 나는 12시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라는데 나는 얘를 무조건 봐야겠어서 지금 가야 한다고 진상 짓을 해서 토토를 꺼내왔다.


지난밤보다는 물이 좀 빠져서 그나마 약이 반응하니 다행이라고 한다. 지금 데려가는 건 퇴원을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란다. 가야 한다니까 보내주는 거란다.

 아 몰라, 난 데려올래.


심장병은 몸에서 물을 빼내야 하는 병이고

신장병은 몸에 물을 넣어줘야 하는 병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부전이 걸린 토토는 주기적으로 정맥수액을 맞고 있었는데 폐수종이 와버렸으니 이제 정맥수액이 어려운 상황이고, 물을 빼려면 이뇨제와 강심제를 투약해야 하는데 신장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폐수종 - 이뇨제/강심제 - 신장 악화  이런 사이클로

신장에 신경 쓰면 심장이 망가지고

심장에 신경 쓰면 신장이 망가진다.


어쩌라는 거냐 대체.


이제 또 심부전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 나는.


토토와의 안녕은 언제여도 준비가 안 될 나는 이번에는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밤새 토토 호흡수를 관찰하며 밤을 지새우다 생각했다.


정이 이렇게 들어버려서 도저히 못 보낼 것 같은데

나는 얘를 대체 처음부터 왜 데려와 키운 거니.

그냥 예뻐해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지,

이 정도의 책임감과 이 정도의 아픔이 따를 줄 몰랐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엔 늘 '돌아가고 싶지 않다'했지만 이제는 토토를 만나기 전인 2009년 이전이라 대답할 거다.


나도 머리로는 안다. 사람으로 치면 얘는 90세가 넘었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는 건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란 걸. 그런데 그게 마음으로는 용납이 안 된다.



개는 진짜로 키우면 안 된다.

제대로 못 키울 것 같으면 시작도 하지 말고

잘 키울 것 같으면 더더욱 반대다.

나쁜 새끼들이다 진짜.

니들은 가버리면 그만이지.


도무지 강아지들의 수명은 늘지 않고,

반려견 키우는 인구가 어마어마한데도

수의학의 발전이 더딘 느낌이다.


괜한 수의학 욕하기.


이럴 거면 진작에 열심히 공부해서 수의대를 가지 그랬냐. 쓸데없이 영어교육을 전공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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