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다스린다는 것: 조조
많은 곳에서 그러하지만 환상의 커플이 존재한다. 삼국지에도 마찬가지이다.
주군과 참모라는 이름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커플이다.
그리고 주군은 사람을 다스리는 능력이 뛰어나고 참모는 그러한 주군을 보필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한지에도 이러한 구도가 등장한다.
항우에겐 범증이 있다.
유방에겐 장량, 한신, 소하 등이 있다.
범위를 넓혀보면 사람을 다스리는 자와 전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자이다.
삼국지에서 보자면 유비 곁에는 공명(공명밖에 없었지만) 있다. 오나라 손권의 곁에는 주유, 육손, 여몽 등(이외에도 많다)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 중에 이들의 신뢰를 어긋나게 만들어 서로를 배신하게 만드는 전략이 있다.
유방이 항우와의 최종전쟁에서 승리할 때 항우로 하여금 범증을 쫓아내게 만들었다.
여러 관점이 존재하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이는 책임자의 사람 다스리는 능력부족으로 인해 만들어진 구조이다.
이러한 틀에서 벗어난 사람이 조조이다.
읽다 보면 조조는 간웅이고 천하의 몹쓸 사람으로 나와있다. 아마도 나관중이 조조를 몹시 싫어했나 보다.
여포에게 쫓기는 중에 수염 기른 자가 조조라는 말을 듣고 자기 수염을 불태우는 등의 찌질한 모습이나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행동의 묘사등을 보면 그렇다. 처음에는 조조가 잔인하고 간사한 인물로 그려진 탓에 죽은 관우의 머리를 보고 환영에 시달리다가 죽는 모습을 보며 인과응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다 보면 다른 점이 보인다. 조조가 이렇게 나쁜 짓을 저질렀다면 삼국지 초반에 부하들에게 죽음을 당하는 장면이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조조는 삼국지의 엄연한 주인공이다. 그리고 조조의 부하들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을 때까지 충성했다.
조조는 주군과 참모의 구도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유비의 능력과 공명의 능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촉나라의 유비 오나라의 손권 등은 전투를 직접 지휘한 적이 별로 없다. 손권은 장수들을 보내 전투를 치른다(적벽대전이 대표적). 유비는 공명의 작전계획을 그대로 이행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혼자 나가면 나라를 말아먹는다(이릉대전이 대표적). 이러한 모습을 조조에게서는 볼 수 없다.
대개의 경우 조조가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전투에 실제 임했다.
적벽대전에서의 패배 때문에 조조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조는 삼국지 3대 대전 중 하나인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위나라의 기틀을 마련했다. 관도대전은 병력 숫자에서 거의 10분의 1 차이를 극복하고 승리한 전투였다. 여러 번 지고 이 기고를 반복하기는 했지만 그의 업적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면 조조의 진짜 능력은 무엇이었을까?
조조는 인재영입에 진심이었다.
남의 편이건 우리 편이건 좋은 인재라고 생각하면 앞뒤 안 가리고 자기 사람을 만들려고 했다. 관우도 영입하려고 했고 조운도 영입하려고 했다. 선입견이 없었다. 출신도 따지지도 않았다.
조조의 인재에 대한 열망을 나타낸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조조는 적이라도 진정한 용사, 진정한 장수를 보면 병적으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 열망은 연모의 정에 가까웠다. 그 정열은 너무 자기중심적이자 맹목적이기도 했다. 관우에게 경도된 것을 후일 깊이 후회하면서도 다시 조자룡을 보고 욕심이 생겨 집착하는 것이었다. 이 또한 조자룡과 어린 아두에게는 천우신조였다."(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에서 발췌)
여기에서 보면 조조의 인재에 대한 갈망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장의 핵심을 나는 '진정한'으로 읽었다. '진정한'이란 무얼 뜻하는 걸까?
다음 문장을 보자.
"조조는 자신의 적이라 생각하면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으나, 반대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인정하면 그에게는 다른 어느 장수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정성을 다했다. 그는 인재를 사랑할 줄도 알았으나 일단 미워하기 무서울 정도로 증오했다. 그런 조조는 허저를 처음 본 순간 그에게 반했고 죽이기 아깝다고 생각했다.(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에서 발췌)"
허저는 조조의 사람이 되었고 죽을 때까지 충성한다.
촉나라 오호대장군이었던 마초의 부하장군이었던 방덕은 나중에 조조에게 투항한다. 이후 관우와의 전투에 나서면서 필살관우必殺關羽라고 쓴 하얀 깃발을 내걸고 자기 관을 지고 나간다.
방덕의 형과 옛 주군이 마초는 이미 촉나라에서 귀의한 상태였다. 이런 경우 대부분 적과 내통한 다는 이유로 전투에서 배제되거나 모함을 받는다.
하지만 조조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만든다.
"내 그대의 충의를 잘 알겠소. 내가 다른 자들의 말을 들은 것은, 그대의 입을 빌어 그대의 진심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소. 지금 그대가 한 말을 들으면 우금과 칠군의 부장, 또 병사들도 의심하는 마음이 깨끗이 사라질 것이오. 자, 이제 그대는 출병하여 다른 누구보다 큰 공을 세우도록 하시오."
방덕은 관우에게 죽는다. 하지만 관우를 죽음으로 모는 시발점역할을 한다. 뒤이어 촉나라의 쇠퇴와 위나라의 번성이 이루어진다.
나의 관점으로 보면 조조는 흔히 말하는 부하를 토사구팽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부하의 직언을 잘 듣는 편이었다. 부하의 직언의 참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알았다. 충성스럽고 뛰어난 사람만 곁에 두었다. 충성스럽지 않은 뛰어난 사람은 죽이지는 않았다. 관우가 대표적이다. 사람을 보는 눈이 남달랐다.
이런 조조의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유비의 능력과 공명의 능력을 동시에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비록 표절한 것으로 나관중이 비꼬기도 하지만 맹덕신서라는 병법서도 썼다. 내가 보기엔 최고책임자의 위치에서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다. 전투에서도 수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정치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조조의 사례를 통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최종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특정분야를 누군가에게 완전히 맡겨버렸을 때 그리고 그 분야를 잘 안다고 생각했을 때 유비와 같은 종말을 맞이한다.
유방과 한신의 대화에서 나오는 다다익선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사람을 다스리는 능력이 최고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사람을 다스린다는 말의 정확한 뜻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람을 다스린다'는 자기 이해에 맞게 사람을 부려먹는다는 뜻이 아니다. 뛰어난 사람을 옆에 둔다는 뜻이다. 그런데 뛰어난 인재의 영역을 잘 모른다면 뛰어난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다. 조조가 충성스럽고 뛰어난 인재를 곁에 둘 수 있었던 이유는 유비의 능력과 공명의 능력을 동시에 발전(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식당사장이 좋은 음식자재를 알아볼 수 없다면 뛰어난 요리사를 고용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뛰어난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은 그 분야의 뛰어난 전문지식을 토대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삼국지의 조조는 말하고 있다.
P.S: 그렇다고 내가 조조의 추종자는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