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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프리트 Apr 19. 2024

삼국지이야기 5

표현의 중요성: 황충이야기

유비는 촉나라를 인수한 뒤 황제가 되어 오호대장군을 임명한다.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이다.

이들은 촉나라에서 대체불가의 장수들이다. 문제는 이들의 뒤를 있을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공명은 위나라를 여섯 번 공격하지만 실패한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오호대장군과 같은 인재부족이 그 중 하나이다.

방기환 삼국지에서는 공명의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 공명의 깊은 마음속에는 한가닥 서글픔이 없지 않았다. 운장 같은 장수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 운장이 가고 장비, 조운이 가 버려 진중에 사람이 없게 되었구나” 입 밖에는 내지 않았으나 공명은 마음속으로 통탄했다. 공명은 과학적인 창조력으로 작전을 구상하였다. 그것으로 필승한다는 것을 굳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촉군 중에 인재가 없어서 이것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였던 것이다…(방기환 삼국지)


이와 같은 표현은 방기환 삼국지와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에 나온다(황석영삼국지 박종화삼국지 박태원삼국지 이문열삼국지에서는 촉나라의 인물부재를 지적하지만 위와 같은 표현은 없다). 황충과 마초는 관우 장비 조운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관우 장비 조운에 버금갈 만큼 훌륭한 장수이다. 오호대장군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이 중 황충은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비와 촉나라를 위해 헌신한다. 황충은 60세 정도에 유비의 휘하로 들어온다. 삼국지에서는 황충에 대해 '쌀 두 섬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이라야 당길 수 있는 활을 쓰는데 백 번을 쏘면 백 번이 다 과녁을 뚫을 정도였다'라고 표현한다.

유비는 한중왕에 오른 후 오호대장군의 인수를 관우에게 내린다. 관우는 인수를 받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화를 낸다.

"익덕은 내 아우니 말할 것 없고, 마초는 여러 대에 걸쳐 이름 있는 집 자손이요, 자룡은 형님을 따른 지 오래되어 나와 나란히 서도 될 것이나, 황충은 어떤 자이건대 감히 나와 같은 줄에 섰단 말인가! 대장부로서는 결코 그따위 늙은 졸개와 같은 줄에 서지는 않을 것이오!" (이문열삼국지에서 인용).

그런데 관우는 이렇게 말하면 안된다!

황충이 유비의 휘하로 들어오게 된 계기는 관우와의 전투였다. 관우와 황충은 서로를 인정하며 죽이지 않는다. 그 일로 인해 황충은 유비 사람이 되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직접관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우가 이렇게 말하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황충은 동오군과 싸우면서 "적장은 달아나지 마라! 내 오늘 반드시 관공의 원수를 갚으리라."라고 한다.  

관우는 용맹하고 충성스럽지만 때로는 이렇게 오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관우는 소하와 유방의 사례를 들어 설득하는 비시의 말에 자신을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인다.

황충은 관우의 말과 달리 촉나라의 기틀을 세우는데 큰 공헌을 했다. 대표적으로 그는 한중공방전 당시 위나라의 명장 하우연을 죽여 유비가 촉나라를 건국하는데 일조했다. 황충이 관우에게 '늙은 졸개'라는 표현으로 취급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황충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어이없기도 하지만 여러 시사점을 준다.

관우와 장비의 죽음 이후 이릉대전이 시작되고 둘의 아들인 관흥과 장포가 큰 전공을 세운다. 유비는 이들의 활약을 기뻐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난날 짐을 따라다니던 장수들은 이제 모두 늙어 쓸모없게 되었다. 그런데 너희 두 조카가 다시 나와 이토록 용맹스러우니 손권 따위를 겁낼 게 무엇이랴!"


관흥과 장포의 활약을 기뻐함에 주안점이 실려있지만 듣는 입장에선 그러지 않았던 모양이다. 황충은 군사 몇 명만을 데리고 오나라 진중으로 쳐들어간다. 늙어서 쓸모없게 되었다는 유비의 말을 반박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아주 맹목적인 돌진이었다. 결국 황충은 죽는다. 당시 75세였다.

다음은 후세사람이 전하는 황충에 대한 시이다.


늙은 장수라면 황충,

서천을 뺏는 데 큰 공을 세웠네

금쇄 갑옷을 덧껴입고

쇠테 메운 활을 둘씩 당겼어라

담력과 기운 하북을 놀라게 하고

위엄 찬 이름 촉 땅을 진정시켰네

죽을 땐 머리 눈처럼 희었으되

오히려 영웅 됨을 스스로 드러냈네


황충의 죽음은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단순히 유비의 말 한마디에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몬 행동은 도대체 뭔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용기와 만용은 백지장차이 하나인데 그중 만용으로 보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예전에 읽었던 책이나 보았던 영화에서 다른 점이 보인다. 황충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시골에 병원이 있는 관계로 어르신 환자들이 많다.

오랫동안 이들을 진료하면서 표현의 중요성을 배웠다. 진료를 위해 환자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 다르고 '어'다르다는 걸 느낀다.

처음엔 말실수를 많이 했다.

대표적으로

'지금 치아가 이렇게 된 건 나이 때문이다'

'힘들게 치아를 해 넣지 말고 그냥 이렇게 사용하시라(수명을 염두에 둔 표현)'

이후에 이런 말들은 그분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화를 내신 분들도 있다.

어르신들은 어느 나이 이상이 되면 감정적으로 섬세해진다. '잘 삐진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표현보다는 '섬세해진다'라는 표현이 적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자신이 짐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신다(모두는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 한마디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서운하다는 내색을 반드시 한다.

스스로가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제일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진료할 때 어르신들의 수명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환자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얼마 못사실텐데 굳이 이렇게 힘들게 치료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관점은 그분들의 수명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르신들도 말씀은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라면서도 지금 당장의 치료에 대해 최선을 다하신다.

'지금 치아가 이렇게 된 건 나이 때문이다'라는 표현은 '사는 게 바쁘셔서 치아 관리할 시간이 없으셨나 보다'로 바꾸었다. 립서비스가 아니라 생각도 그렇게 바뀌었다. 이런 관점으로 나도 진료를 한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병원 직원들까지 공유해야만 하는 과정 또한 필요했다(이걸 깨닫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병원 직원들이 어르신환자들의 세심한 마음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기 때문이다. 작은 조직이지만 책임자의 위치는 그러했다.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다시 읽은 황충의 죽음은 충분히 공감이 갔다.

개인 유비가 아닌 한 국가의 책임자로서의 유비는 큰 실수를 했다. 모든 사람을 아울러야 하는 책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특정인이 오해를 할만한 표현을 입 밖으로 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은 실수 하나가 나라를 위해 헌신했고 앞으로도 큰 쓰임새를 가진 사람을 사지로 내몰았다.

황충은 유비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쓸모를 입증해야만 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스스로의 죽음으로 인해 유비가 죄책감을 느껴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도록 행동으로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황충의 죽음은 유비의 '긴장감 풀어진 잘못된 표현으로 인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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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힘든 일인 듯하다. 한 조직의 수장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표현부터 항상 긴장해야 하고 항상 겸손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결과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결과는 정제된 말 한마디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러한 말 한마디는 최종 책임자가 가져야만 하는 책임감으로부터 나온다.

황충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이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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