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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프리트 Apr 25. 2024

삼국지이야기 6

힘들수록 원칙에 충실하라: 공명

공명은 위나라를 여섯 번 공격했다.

당시 위 촉 오의 국력은 공명이 첫 번째 북벌을 위해 출사표를 제출한 이후 전쟁 반대 조정대신들의 주장에 드러나있다.


"... 그들이 가장 염려하는 점은 병사가 부족하다는 것과 전쟁을 치르는 데 필요한 재원의 확보였다. 촉의 호적부에 따라 위, 촉, 오의 호구수를 비교해 보면 촉은 위의 3분의 1이고 오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인구밀도 역시 위의 5분의 1, 오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촉의 개발과 지세가 얼마나 지키기에 좋은지, 문화가 뒤처져 있는지 알 수 있었으며, 상비군의 수에 있어서는 중원을 보유한 위나 오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빈약했다..."


위나라는 적벽대전에서 백만 대군을 동원하고 나서 서량에서 마초 한수와 다시 전쟁을 벌일 정도로 넉넉했다.  

국력이 약한 국가가 강한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만큼 총력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쟁이 거듭될수록 총력전은 힘들어진다. 촉나라가 그러했다.

공명은 전쟁이 계속되자 군사를 반으로 나눈다. 반은 한중에 머물고 나머지 반을 데리고 출정한다. 출정기한은 3개월로 정해 100일을 기점으로 서로 맞교대하는 형식이었다. 인구도 적은 데다가 계속되는 전쟁으로 군사들의 피곤이 쌓인 탓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교대시점에 위나라 군대 20만이 눈앞에까지 쳐들어 온다.

황석영삼국지에서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위장 손례가 옹주와 양주 군사 20만을 이끌고 검각을 치러 떠났고, 사마의는 노성을 공격하러 오고 있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촉군들은 모두 놀라고 당황했다. 양의가 급히 공명을 찾아와 고한다.

“위군이 막강한 기세로 진격해오고 있으니, 승상께서는 지금 있는 군사를 남겨 적군을 물리친 뒤에 새로 오는 군사와 교대시키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공명은 단호하게 말한다.

“안될 소리요. 내 군사를 부리고 장수들에게 영을 내리는 데 오로지 신의를 근본으로 삼아온 터에 이미 내린 명령을 어찌 어길 수 있겠는가? 돌아가야 할 자들은 속히 준비해 떠나보내도록 하오. 그들의 부모와 처자식들이 사립문에 기대어 서서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내 아무리 큰 어려움에 처했다 할지라도 그들을 붙잡아둘 수는 없소.”


결론은 군사들이 공명의 태도에 감명받아 교대에 나서지 않고 전투에 임해 큰 승리를 거둔다.


살면서 삼국지에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지만 위의 에피소드는 항상 생각나는 부분이다.

아마도 내가 공명의 위치에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이곳을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원칙이 무너질 때는 힘든 상황이었다. 진료와 병원관리 모두 잘될 때는 이러한 상황이 생기지 않았다.

병원에서 직원들에게 주는 월차를 개인적으로 정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어느 날은 휴가가 겹쳐서 환자가 많은데 직원 숫자가 부족한 경우가 가끔 발생한다.

처음엔 현실이 급박하다는 이유로 월차를 옮기도록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위의 공명의 사례처럼 직원들은 가족들과 약속이 잡혀있었다. 단 몇 시간이었지만 여러 명이 관계된 시간이었다. 지금은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직원의 월차를 옮기기보다는 환자 약속을 미룬다.

몸이 불편하신 분은 치료하기도 힘들다. 그러다 보면 치료의 원칙을 잘 지키기 어려운 적이 많다. 그렇다고 교과서적으로 치료를 하려다 보면 환자가 너무 힘들어하는 경우가 생긴다.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하지만 치료의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과 그 순간만을 넘기려고 하는 치료는 결과가 많이 다르다.

한번 어긋나면 처음의 작은 균열이 마지막엔 댐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이런 맥락의 사례는 비단 내 경험뿐만이 아니라 뉴스에서 가끔 본다.


처음의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현실이 급해 합의된 원칙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꽤 많이 발생한다.

어떤 이는 현실 상황을 들어 약속을 어기는 부분에 대해 합리화한다. ‘임기응변’ 또는 ‘유연한 사고’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반대로 합의한 원칙을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들은 ‘완고한’, ‘고지식한’, ‘경직된’이라는 용어로 폄하되거나 왕따가 되기도 한다.


주위에서 무언가를 이룬 분들을 보면 대부분 원칙에 충실했다. 아무렇게나 사용했던 ‘비가 오나 눈이 오나’라는 표현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내가 공명의 사례를 인용했다고 해서 공명처럼 살아온 건 아니다. 그런데 분명하게 느껴지는 건 점점 ‘힘들수록 원칙에 충실’해지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하다.

그동안의 얼마 되지도 않는 ‘임기응변’과 ‘변칙’의 성공이 ‘무용담’처럼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는 건 지루하고 힘들어서이다. 하다못해 운동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지금의 내가 성공했다고 하는 부분을 살펴보면 예외 없이 그 지루하고 힘든 원칙을 지켰던 경우였다.


삼국지에서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내가 혹시 잊어버리고 있는 원칙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

내가 감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원칙에 충실했던 분들을 존경하게 된다. 그분들이 반드시 유명인사들만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자신 그리고 남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들고 지루한 원칙을 지키고 있는 분들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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