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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프리트 Apr 01. 2024

일터이야기 1

밤새 아팠다는 말

며칠 동안 역류성식도염으로 고생했다. 꽤 오랫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

어느 정도 회복한 직후 직원들과 회식을 했다. 혹시 아플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괜찮았다.

회식자리에서 서로 아픈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와 공통된 증상을 가지고 있는 직원을 발견했다.

그 직원과는 서로 증상이 같았기 때문에 이야기가 통했다. 반면에 역류성 식도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직원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직원들에게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꼰대 소리를 들을까 봐 말을 돌려서 이야기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다.

갑자기 사랑니가 아프기 시작했다. 빼자니 귀찮고 무섭기도 하고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에 약만 구입해서 먹었다.

신기하게도 약을 먹으면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한 달 정도를 약으로 버티다가 주말에 서울에 갈 일이 있었다. 막차를 타고 내려오는 도중에 사랑니가 아프기 시작했다.

가지고 다니던 약을 먹었지만 통증은 가시지 않고 오히려 점점 심해졌다. 정확하게 밤 10시부터 다음날까지 방을 데굴데굴 굴렀다.

가지고 있던 약은 모두 먹고 혹시나 하고 피부 치료를 위해 처방받은 약까지 먹었지만 소용없었다.

다음 날 선배 병원에 가서 월요일 첫 환자로 들어가서 사랑니 뽑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너무 썩어서 잘게 부서졌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로 환자들이 어젯밤에 밤새 아팠다는 말을 허투루 듣지 않게 되었다.

나 또한 환자에게 어젯밤에 잘 잤냐고 묻는다. 잘 못 잤다고 하면 응급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어쨌든 그날 통증을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만약 내가 그날의 경험이 아니었더라면 난 평생 ‘밤새 아팠다는 말’의 의미를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통증을 경험해야만 환자에게 공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없다.

대신 그들의 통증을 오해하면 안 된다는 걸 한참 후에 깨달았다. ‘이해’라는 말은 가능하지도 않고 적당하지도 않다.

가끔 환자의 통증을 낫게 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가족임을 느낄 때가 많다.

우울증인데 정신과약을 복용하지 않는 경우 대부분은 지인들 때문이다. 모두 환자의 통증을 오해한 데서 비롯되었다.

마음이 약해진 환자는 자신과 제일 가까운 사람의 말을 쉽게 무시하지 못한다.

혹시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지인이 실망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가끔 보인다.

이러면서 환자는 자신의 통증과도 싸워야 하면서도 자신을 의지박약으로 여기는 지인들의 인식과도 싸워야만 한다(혹은 관계를 위해 순응하거나).

치과도 마찬가지이다.

통증을 가진 사람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통증을 가진 이들을 오해하면 안 된다는 걸 오랜 경험을 통해 느낀다.

오해하지만 않더라도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20년 넘게 한 장소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오해한 사람이 계속 생긴다…


대게 내가 나의 경력을 믿고 겸손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원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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