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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그프리트 Apr 16. 2024

삼국지 이야기 4

전쟁에서 희생이란? 1 : 조조의 서주 대학살

삼국지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죽음에 익숙해지는 경향이 있다.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기다...

머리를 댕강 잘라버렸다...

목을 찔러 자결하다...

이렇게 죽음을 가리키는 용어와 문장도 많이 나온다.

전쟁이야기이다 보니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어릴 때 이렇게 비장하게 죽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삼국지에서는 여러 유형의 죽음이 그려진다.

큰 틀에서 세 가지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첫째,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한 작은 희생이다. 예를 들어, 적을 유인하여 큰 승리를 거두는 장면에서 아군의 어느 정도의 희생을  불가피하게 그리는 장면이다. 이릉대전에서 육손이 순우단을 보내 유비를 공격하지만 패배한다. 하지만 이는 육손이 유비의 방비태세를 점검하기 위함이었다. 게임에서 적진을 염탐하기 위해 우리 편 병사 몇 개 보내 알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이후 육손은 유비에게 큰 승리를 거두고 오나라를 지켜낸다. 선발대의 패배로 인한 죽음은 더 큰 죽음을 막기 위한 장치로서 그려진다.

둘째, 영웅들의 죽음이다. 삼국지 영웅들이 죽을 때는 거의 반드시 징조가 있다. 천문을 통해 죽음을 예견한다든지 나뭇가지가 부러진다는 징조등이다.

공명은 ".. 며칠 밤 동안 천문을 살펴보니 형주 하늘에 일말의 먹구름이 떠다니고 있었소...."라고 관우의 죽음을 예견한다.

세 번째는 이름 없는 이들의 죽음이다. 조조에 의한 서주대학살처럼 민간인들의 죽음이다.

조조의 아버지가 서주를 지나가다가 호위를 맡은 군대의 변심으로 인해 죽는다.

서주태수 도겸이 장개에게 조조의 아버지를 호위해서 잘 모시고 데려다 주라는 명령을 했다. 하지만 장개는 이를 어기고 이런 일을 저지른다. 조조는 이에 대한 복수로서 서주지역의 민간인을 몰살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말렸지만 조조는 듣지 않았다. 심지어 서주태수가 직접 해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뜻을 거두지 않는다.

 삼국지를 처음 읽다 보면 첫 번째의 죽음의 숭고함이 기억되고 두 번째 영웅들의 죽음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삼국지에서는 이들의 죽음보다는 세 번째 죽음이 눈에 들어온다.

서주 대학살은 겉으로만 보면 조조는 분풀이를 한 셈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들기 위한 퍼포먼스였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삼국지뿐만 아니라 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은 대부분 이러한 경우이다.

전쟁 위령비

조조의 시선에서 바라본 서주민간인 대학살이 삼국지에서 그려졌다면 민간인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 들어보자.


"... 그때는 집이 여기가 아니고 저기(손으로 가리킴)에 있었습니다. ㅇㅇㅇ군이 서쪽에서 행군해 왔습니다. 그때 아침 6시에 마을 입구에 닿았었는데 마을 가운 데까 지 오기까지 11시가 다 되었습니다. 조심스럽게,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군하였고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마을 끝까지 도착하였습니다. 행군하며 마을 주민을 학살하였는데, 집에서, 논에서, 강가에서, 반공호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행군하다가 저녁 5시에 되돌아가는 길에 사람이 살아 있는집, 몇 가족 20여 명을 모았습니다. 논 가운데 모아서는 총으로 쐈습니다. 그때  제가 손에 부상 입었는데 어떤 사람은 머리, 내장이 다 튀어나온 채 있었는데 그 걸 다 보았습니다. 그때 군인이 수류탄 하나 던지고 갔습니다. 그때 그 수류탄 파편이 치명적인 것은 수술로 빼고 지금도 3, 4개 남아 있습니다.  그때 그걸 피하기 위해 몇 걸음 도망쳤는데 수류탄이 팡 터지고 그 자리에서 실신했습니다. 그 시간이 오후 4시쯤이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저녁 8시가 되었을 때입니다.  죽은 사람, 살점이 떨어져 나간 사람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고 다행히 도망간 사람들이 되돌아와 시신을 수습하고 소지품으로 생존자를 가려내는 일을 했습니다. 생존한 마을 사람들과 런아저씨가(제가) 부상당한 몸으로 삼촌 집에 어머니와 동 생을 데리고 갔습니다. 어머니는 하체가 없었고 동생은 머리에 총상을 입었습니 다. 동생이 밤 11시에 죽어 동생 장례를 치르고 집에 왔을 때, 그때 어머니도 숨을 거두었습니다. 지금 어차피 얘기해도 여러분도 저도 맘이 아프고 상처가 될 것이니 그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2000천 년이 지나도 전쟁에서 벌어지는 민간인들에 대한 공격의 틀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아마도 서주지역의 민간인들은 조조에게 죽을 때 이런 상황에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삼국지를 비롯한 전쟁 관련 이야기에서 듣기 거북한 말 중 하나가 '어쩔 수 없는 희생', '전쟁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담론이다. 최대한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처럼 분풀이 혹은 공포를 조성할 목적으로 자행되는 죽음들이 이후에 이런 식으로 해석되는 상황이 몹시 불편하다.

삼국지에서는 이런 해석을 최대한 피해 가려고 노력한 듯하다.

관우가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아들 관평과 함께 목이 잘려 죽는다.

관우가 워낙 상징적인 인물이다 보니 죽음 이후에 여러 가지 신화 같은 이야기가 그려진다.

관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여몽이 전쟁 이후에 관우 혼령에 씌어 죽음에 이른다는 설정 등이다.

관우의 죽음에 마음이 아팠던 내게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상황이 등장한다.

보정이라는 노승에게 관우의 혼령이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몽의 간계에 빠져 죽임을 당하셨소. 스님, 내 목을 찾아 내 혼백을 달래주시오."

보정은 이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군, 어찌 그처럼 구천을 헤매고 있으신가. 장군이 오늘까지 걸어온 산과 들의 뒤편에는 장군에게 원한을 가진 수많은 백골이 널려 있지 않소이까. 도원의 결의는 이미 끝이 났으니, 이제 눈을 감고 편히 쉬도록 하시오."

관우는 자신의 죽음을 원통해하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죽였던 사람들에 대해선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보정은 이를 관우에게 깨우쳐 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독자에게도 알려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죽음도 하찮게 바라볼 수 없다. 그런데 전쟁은 이러한 죽음을 너무도 쉽게 정당화시킨다. 전쟁을 결정하는 정치인은 그로 인해 별로 피해를 입지 않는다. 삼국지의 주인공인 조조, 유비, 손권 등은 마지막까지 잘 살다 죽는다. 하지만 이들로 인해 위 촉 오 사람들은 너무 큰 피해를 입는다. 가장 큰 잘못은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한나라이다. 한나라의 황제가 제대로 된 정치를 펼치지 못하면서 황건족이 등장했고 뒤이어 동탁 조조 유비 손권 등이 나타난다. 전쟁에서의 승리 이전에 처음부터 전쟁이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삼국지의 의도는 이를 말하는 게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삼국지를 여러 번 읽다 보면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고육지계와 같은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한 희생은 내가 감히 따라가지 못할 숭고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희생임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전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로 해석되는 죽음은 많이 아프다.

죽음에 익숙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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