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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Dec 28. 2022

이래도 갈래? 말레이시아?!(3)

이 순두부가 네 순두부냐

  15분 걸리는 셔틀버스를 타고 제1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티켓팅을 하고 짐도 부쳤다. 22kg이 넘는 짐을 부치고 나니 그간의 삽질은 잊고 홀가분하게 아침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푸드코트를 찾아갔다. 얼큰한 순두부찌개로 내 발목을 잡고 있는 찝찝함과 이젠 정말 안녕하고 싶었다.

  주문한 순두부를 1/3 정도 먹은 상태에서 이 순두부는 내 순두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영수증을 확인했다. 9800원짜리 해물순두부로 결제가 됐다. 내가 먹고 있는 건 7900원짜리 그냥 순두부찌개다. 그러고 보니 찌개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을 뽐내는 건더기는 버섯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뚝배기를 아무리 뒤져봐도 바다 근처에서 왔음직한 건 숟가락 위로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 순두부는 제 순두부가 아니옵니다.




  진동벨 번호를 확인하신 조리사님이 손가락으로 콕 집어주신 쟁반을 들고 온 거라 실수로 다른 사람 쟁반을 들고 온 건 아니다. 오케이! 이번엔 내 실수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영수증과 결제한 카드, 2/3 가량 남은 순두부찌개 쟁반을 들고 음식을 받은 식당으로 찾아갔다.

  조리사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국물을 휘적휘적해 보이며 해물순두부가 아님을 어필했다. 그 모습을 보시더니 '허허' 웃으시며 다시 해물순두부를 끓여주신다고 하셨다. 그러기엔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해물순두부 결제를 취소하고 순두부로 결제만 다시 해달라고 요청했다. 조리사님은 그러면 해물순두부 결제 취소만 하고 그냥 드시라고 했다. 나는 순두부찌개를 이미 1/3 정도 먹었으니 순두부 값은 결제하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그냥 취소만 하라셨다. 죄송해서 그렇다고. 주방일이 바쁠텐데 그 앞에 서서 계속 실랑이를 할 수는 없었다. 이쯤에서 감사하다 인사를 하고 물러나야 할 타이밍이다.

  순두부찌개 쟁반을 빈 테이블에 잠시 올려놓고 계산대로 가서 결제 취소를 했다. 다행히 계산해주시는 직원분이 우리의 대화를 다 듣고 계셔서 카드 결제 취소는 긴 설명 없이 바로 해결됐다. 그리고 다시 내 순두부찌개를 가지러 빈 테이블로 와보니 '뚜! 둥!' 사건의 주인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정신을 못 차리겠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사라져 버린 찌개를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근처 퇴식구 쪽에서 너무 열심히 일하시는 젊은 직원분이 보였다.
 "혹시... 혹시 저기 테이블에 있던 순두부 치우셨나요?"
"아~, 네~~"
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그분은 실수를 깨달은 표정이었다.
"저 계산이 잘못돼서 다시 계산하던 중이었어요.(전 배가 고팠고요.)"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아~ 어떡해요~. 괜찮습니다~.(그런데 전 배가 고파요.)"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지경이다. 당황한 젊은 직원분의 팔을 한번 토닥토닥해주고 눈물을 머금고 쿨하게 돌아섰다.
뒤돌아 남편과 아이가 앉아있는 자리로 돌아가는데
"으아아아~!" 외침이 육성으로 발사되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괴롭히고, 저 좀 말레이시아로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3번의 전투를 치른 후 사건사고 없이 말레이시아에 도착했다. 노트북 일병의 활약으로 연수를 잘 마쳤고, 12월 28일 현재 아주 잘 지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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