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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Dec 31. 2022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일을 쓴다.

  첫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동료 선생님께 퀼트를 배웠다. 작은 천 조각을 손바느질로 이어 붙여 바늘꽂이부터 쿠션과 가방, 이불까지 만들었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원단을 골라서 본을 대고 자르고, 여러 원단에서 나온 다양한 모양과 색을 가진 조각을 다시 이어 붙인다.


  멀쩡한 천을 왜 자르냐고 또, 그걸 왜 어깨 아프게 꿰매고 앉았냐고... 누군가 진지하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바느질하는 손을 지켜보던 내 머리가 물은 것 같기도 하다.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당시 나는 내 손으로 눈에 보이는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좋았다. 다양한 원단에서 잘라낸 각기 다른 모양과 색의 천 조각이 마지막에는 퍼즐처럼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 인생 의도한 대로 뭔가가 딱 맞아떨어지는 경험이 전에는 없었던 것인가?



  그렇게 몇 년 퀼트에 빠져 바늘로 손가락을 부지런히 찔러가며 시간을 보냈다. 그 세월 동안 쌓인 고만고만한 작품들은 내가 쓰기도 하고, 제주도 엄마, 아빠에게도 보내고, 친한 친구와 선배 집에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떠넘기기도 했다.



  어느 날 단추가 덜렁거리는 재킷을 입고 제주도 집에 간 적이 있었다. 재킷은 여며 입기보다 오픈해서 입는 걸 좋아해서 딱히 단추가 쓸모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뜯어 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단추가 덜렁거릴 때마다 단춧구멍 밖으로 삐져나온 실을 단추와 옷감 사이에 조금 남아있는 실에 돌돌 감아 놓고 임시방편으로 다닐 때가 많았다. 임시방편이 임시도 방편이 될 수 없을 지경에 가서야 단추 색과 비슷한 실을 찾아 바늘에 꿴다.


  그 모습을 보신 아빠가 "너는 바느질허는 사람이 옷 단추가 그거 무시거니(너는 바느질하는 사람이 옷 단추가 그게 뭐니)?"라고.. 질문인지 잔소리인지를 하신 적이 있었다. 원단을 쌓아놓고, 색색의 퀼트실을 사고, 재단 가위를 소중하게 다루면서도 나는 내가 한 번도 '바느질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를 그리 불러주는 아빠의 말에 조금은 미소가 지어졌고, 조금은 어깨가 무거워졌다.



  지금도 내 옷장엔 단추가 떨어져 아예 없거나, 실 끝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옷이 걸려있다. 가끔 마음먹고 반짇고리를 꺼내며 "난 바느질하는 사람이니까."를 조그맣게 읊조린다. 난 바느질하는 사람이고 언제든 마음먹으면 단추 하나쯤은 눈 감고도(앗! 따끔) 달 수 있다. 단추 구멍 사이를 앞뒤로, 좌우로 왔다 갔다 몇 번 해주면 다시 감쪽같이 멀쩡한 단추가 달린 옷으로 환골탈태. 달랑거리던 단추가 옷에 딱 붙어 단단해진다. 작은 단추 하나지만 단단하게 달고 나면 이제 세상 거리낄 것 없는 사람이 된다.    



  아빠가 돌아가신 다음 해에 '글'이라는 것을 쓰기를 시작했다. 아빠가 살아계신다면 나에게

"너는 글 쓴댕허는 사람이 오탈자가 무시거니?"라고 질문인지 잔소리인지를 하셨을까? 그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감사할 수 있을 텐데.   



  내 글을 쓴 사람은 온통 실수 투성이다. 사람이 그러니 글도 역시 그러하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고   크고 작은 실수가 발견된다. 맞춤법, 띄어쓰기 정도는 이제 부끄럽지도 않다. 지난 <이래도 갈래? 말레이시아?!> 2편에서 나는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간다고 썼다. 글을 발행하고 며칠 지나고 나서 내가 있는 곳이 코타키나발루가 아니라 쿠알라룸푸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하! 이제와 고치기도 민망하고. 그냥 둔다.

여기와 거기는 겁나 멀다.



  실수로 점철된 삶은 사는 인간은 그런 실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금세 잊어버린다. 쪽팔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노하우다. 실수는 앞으로도 많이 만들어 낼 작정이고 굴하지 않을 계획이다. 난 단추가 단단히 달린 재킷을 입고, 용감하게 실수하며, 실수한 것을 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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