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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Apr 17. 2023

피카츄 할아버지가 와도

그냥 "네. 그래요~"라고 말하겠다.


작년 현장체험학습 점심시간의 일이다. 아이들의 식사 자리를 정해주고, 돗자리 펴는 것을 도와주고, 혼자 소외되어 먹는 친구들이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아이가 도시락 뚜껑을 열더니 자랑스럽게 나를 부른다.  위에 피카츄가 누워있다.  옆에는 메추리알이 앙증맞게 깨눈알까지 박고 서있다.  마이갓~! 엄마 손이 금손? 새벽부터 시작되었을  사람의 빡쎔이 느껴. 나는 절대 흉내   없는 경지다.

"우와~ 피카츄 너무 귀엽다~! 00이는 좋겠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선생님 저도요! 이것도 봐주세요!"

여기저기 도시락에 피카츄가 있는 어린이들이 나를 불렀다.

"에고, 예쁘다! 너무 귀엽다! 맛있게 먹어요."

캐릭터 도시락을 자랑하는 어린이들에게 예쁘다, 귀엽다는 말을 하고 돌아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옆에 앉아 있는 어린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도시락에 피카츄가 없는 어린이들에게도

"맛있겠다. 많이 먹어.  간식은 뭐야?"등을 공평하게  마디씩 해주고 머리를 쓰담쓰담해 주었다. 그리고 캐릭터 도시락은 싸간  없는 우리 딸아이의 마음도 잠깐 생각해 보았다.

며칠뒤 라디오에서 체험학습을 다녀온 아이가 울면서 방으로 뛰어들어갔다는 사연이 나왔다. 엄마가 캐릭터 도시락을 싸주지 않아서였다. 우리반 어린이의 집에서도 일어날 법한 풍경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난 피카츄를 사랑하는 1학년 어린이들의 담임이 되었다. 학부모총회 때 현장체험학습 계획을 알려드리며

"캐릭터 도시락 안 싸셔도 됩니다. 걱정 마세요."라고 웃으며, 에둘러 말씀드렸다.


그래도 피카츄에 대한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누군가는 꼭 있기 마련이다. 다음 주 현장체험학습 때는 도시락에 피카츄 할아버지가 나타나도 난 절대로 놀라지 않은 척! 할 생각이다.


"선생님  도시락  보세요~! 너무 귀엽죠?"라고 묻는다면 


"네. 그래요~. 맛있게 먹어요."라고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할 테다.


<내 소박한 현장체험학습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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