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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un 13. 2023

쌀밥은 답을 알고 있다.

PT 보다 쌀밥?

태릉으로 장소를 옮겨 스케이트 강습을 받은 지 6개월이 지났다. 난 이제 이름도 찬란한 상급반. 스피드 스케이트 활주를 시작했다. 15명 정도 되는 회원들이 300m를 줄지어 탄다. 된다 된다. 이제 직선과 코너 크로스 동작이 연결된다. 코너 크로스가 무서워 벌벌 떨기를 수년. 오랫동안 못하기 끝에 조금 하기가 된다.


300m 첫 활주는 자연스럽다. 내 앞에서 타는 사람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끝까지 간다. 잠시 숨을 고르고 500m를 달려야 한다. 공식적으로 500m는 단거리다. 개인적으로는 겁나 장거리다.


보잘것없는 체력을 첫 활주에서 불태우면 두 번째 활주부터는 앞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난 50m쯤 뒤처진다. 허벅지 근육이 멋대로 후들거린다.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것 같다. 숨은 가쁘고, 얼굴은 잔뜩 일그러진다. 자세는 높아질 대로 높아진다. 선생님은 힘들어도 끝까지 자세를 낮추고 타보라 하시지만, 허벅지 근육이 버티지 못한다.


멀~어져 가는 저 뒷모습을... 미치도록 따라잡고 싶다. 허벅지 힘을 길러 앞서가는 회원 뒤를 바싹 따라 활주 하고 싶다.


PT를 시작했다. 학원 진도 따라가려고 과외받는 학생처럼 스피드 스케이트 수업에서 앞사람 따라가려고 운동을 시작했다.


건장한 젊은이들이 바벨을 철컹 내려놓는 소리가 만장굴처럼 울린다. 땀 냄새, 고무바닥 냄새가 묘하게 버무려져 두통을 유발한다. 들어서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아이스링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의 헬스장.


조그만 중년의 사람이 벤치에 누웠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나에게 6kg 벤치프레스 바를 건네준다. 들어 올릴 수 없다. 웬만하면 들어 올려보라는 선생님의 눈빛에 얼굴 핏줄이 터질 것처럼 힘을 주어도 바는 꿈쩍하지 않는다.


큰소리치며 회원들을 다그치는 무시무시한 트레이너들도 사람 봐가면서 하는 거였나 보다. 디퓨저 막대처럼 생긴 2kg 바를 들고 오셨다. 막대 위에 선생님이 손가락을 얹었다. 바를 지그시 누른다. 누운 채 접었던 팔꿈치를 위로 쭉 뻗었다. 으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 선생님 손가락이 18kg쯤 되나 보다.


얇은 바 아래서 고군분투하는 중년에게 선생님은 쌀밥 먹고 힘내라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셨다. 비리비리한 체력의 해결책이 쌀밥이었다니. 파랑새와 범인은 꼭 가까운 곳에 있던데,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해 엄한 잡곡만 축냈다. 아이스링크에서 방황하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옛썰! 그거라면 자신 있습니다.


PT 시작하고 한 달간 최선을 다해 먹은 쌀밥은 몸무게 앞자리를 업그레이드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숫자. 12년 된 육아 수첩 속 산모 몸무게와 가까워진다. 체중계는 매일 상승장으로 마감한다.

'애초에 헬스장을 찾아간 목표가 다이어트는 아니지 않나?'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 식으로 마인드를 컨트롤한다.


장소를 옮겨 여기는 등골이 서늘한 아이스링크. 이번 주 스케이트 강습은 첫 활주가 1000m다. 500m를 겁나 장거리라 하는 사람에게 1000m라고요? 같은 반 회원들과 출발은 함께 했지만, 어느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뿔뿔이 흩어져 트랙 어딘가에서 자기만의 페이스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300m, 500m... 숨이 막히고 허벅지가 휘청거린다. 어쩔 수 없이 자세를 조금 높였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무거워진 스케이트를 끌고 오른발, 왼발 밀며 앞으로 나갔다.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달린다. 900m 지점에 서 계신 선생님 목소리가 스쳐 지나간다.

"체력 많이 좋아졌네요."

마지막 남은 힘을 박박 긁어모아 허벅지로 보낸다. 자세를 조금 더 낮춰본다.


한순간도 몸치의 경계를 벗어나 본 적 없는 인생. 체력 좋아졌다는 선생님의 칭찬이 어색하다. PT의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난 것 같아 무언가 의심스럽다.  


운동과 함께한 식이 조절의 효과가 이렇게나 위대한가? 역시 힘내는덴 쌀밥이 최고인가? 물음표 끝에 걸린 광대가 3cm 승천한다. 우연인지, 실력인지는 앞으로 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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