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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초 May 29. 2024

주간 개초 <2호>

영화편: 위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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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영화: 위플래쉬(Whiplash), 2014, 데이미언 셔젤 


 

나는 재즈에 별로 흥미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금관악기 특유의 찌르는 듯한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다. 다른 이유로는 아마 즉흥적이고 변칙적인 연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음악에는 어느 정도 자유도에 제한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험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음악들도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화음이 조화롭고 어느 정도의 틀 안에 있는 노래를 듣는 게 더 편안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재즈의 자유로움은 들을 때 조금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맨날 오늘은 뭘 처먹을까 삼시세끼 고민하기만 하는 평범한 개돼지인 나한테 재즈의 예술성은 감당하기 힘들다고 해야 할까. 물론 아무리 이질적이라고 해도 그 속에 익숙한 패턴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듣기 싫은 건 싫은 거다. 사실 재즈에 대해 잘 모르면서 그냥 좋아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변명으로 원래는 위플래쉬를 볼 생각이 없었다. 음악 학교 재즈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는 영화라면 당연히 재즈가 자주 나올 테니까. (마찬가지로 뮤지컬 영화도 몰입감이 깨지고 중간중간 노래하는 게 듣기 싫어서 보지 않는다.) 생각이 바뀐 건 감독이 영화를 만든 비화를 읽고 나서다.  


인터뷰에서 감독은 고등학생 시절 음악을 할 때 “예술은 가볍고 즐거워야 한다”와 “예술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중 어떤 것을 따라야 할지 수없이 많이 고민했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그 고민을 영화에 담았고 인터뷰 당시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그걸 읽고 관심이 생겨서 넷플릭스를 틀었다. (그리고 OST도 의외로 괜찮았다. 나는 그냥 민트초코를 싫어하듯이 덮어두고 재즈를 안 들었던 걸지도.)


영화는 앤드류와, 교내 재즈 밴드의 지휘자를 맡고 있는 교수 플래쳐와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앤드류 네이먼은 일류 드러머의 꿈을 안고 미국 최고 명문 셰이퍼 음악 학교에 입학한 1학년 학생이다. 학교에서 홀로 심취해서 드럼을 치던 그는 갑자기 플래쳐 교수가 나타나자 사과하며 연주를 멈춘다. 

 

플래쳐의 더러운 성깔은 첫 등장부터 드러나는데, 앤드류에게 이름과 학년을 물은 그는 왜 연주를 멈췄냐고 묻는다. 그 말에 앤드류가 다시 연주를 시작하자 그는 “내가 다시 하랬나?”라고 묻는다. 왜 연주를 멈췄냐는 말에 원숭이 같은 연주로 답한다며 잔뜩 비꼬고 면박을 준 그는 앤드류에게 이것저것 연주를 시켜보고는 중간에 말도 없이 나가버린다. 싸가지 하고는…. 


앤드류의 아버지는 연륜이 있는 사람이다. 상심한 앤드류가 그날 저녁 아버지에게 플래쳐에게 연주를 들려줬으나 별다른 건 없었다고 하자, 다른 길도 많다고 사는 건 그런 거라고 한다. 물론 음악밖에 모르는 우리의 또라이 앤드류는 그런 건 필요 없다고 퉁명스럽게 대꾸하지만.  


앤드류에게는 야망이 있다. 위대한 음악가가 되어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래봤자 현실은 플래쳐가 지휘자로 있는 자신이 선망하는 빅밴드(*재즈 오케스트라)는커녕 교내의 작은 밴드의 서브 드러머 신세지만. 연습 기회를 얻어도 연주가 별로라며 메인 드러머로 다시 바꾸라는 말이나 듣는 찌끄래기다.  


그러던 어느 날, 연습실에 플래쳐 교수가 들이닥친다. 그는 다짜고짜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몇 마디씩 연주를 시켜보고는 앤드류에게 시간과 장소를 일러주며 늦지 않게 오라고 한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들뜬 앤드류는 자신감에 가득 차서 평소 침 발라뒀던 눈여겨봤던 영화관 직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플래처의 부름에 이어 여자의 승낙까지 받은 앤드류는 기분 좋게 퍼질러 자다가 플래쳐 교수와 한 약속에 늦는다. 다급히 달려갔지만 연습실에는 아무도 없고 텅 비어있었다. 근데 알고보니 연습실 일정표에 약속 시간 3시간 뒤부터 정규 연습 시간이라고 쓰여 있었음. 플래쳐 성격 나쁜 거 또 나온다. 


여담인데 한편으로는 성격 나쁠 만도 하긴 하다 싶다. 빅밴드는 보통 색소폰 5명, 트롬본 4명, 트럼펫 4명, 리듬 섹션 (드럼, 베이스, 기타, 피아노) 4명 - 이렇게 17인조로 구성된다고 한다. 지휘하면서 한 파트만 보는 것도 아니고 모든 악기를 다 체크해야 하니 예민하고 지랄맞아질 법도 하긴 함. 아니다, 그래도 저 정도로 성격 나쁜 건 본성이 그런 게 맞겠다.  


다시 돌아와서. 플래쳐는 학생들을 극한으로 내몰아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좋은 음악을 하고 더 좋은 연주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신념대로 매우 강압적인 교육 방식을 채택한다. 그는 미국의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가 전설로 남게 된 건 누군가 그의 머리에 던진 심벌즈 덕분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렇게 말해놓고 앤드류한테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고 함ㅋ 너 같으면 편하게 할 수 있겠냐?)  


그래서 앤드류는 첫 연습에서부터 굉장한 경험을 한다. 시작부터 플래쳐가 트롬본 연주자에게 음을 틀렸다고 인격 모독을 잔뜩 하면서 망신을 주고는 꺼지라고 윽박지르는 광경을 본다. 사실 내쫓긴 연주자는 실제로는 음을 틀리지 않았지만, 틀렸다고 생각하냐는 플래쳐에 질문에 덜덜 떨면서 눈치 보다가 틀렸다고 대답해서 그대로 쫓아내 버린다.  


물론 앤드류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템포가 안 맞는다고 앤드류에게 의자를 던져버리고는 여기서 이미 교직에서 잘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따귀를 때리고 윽박지른다. 각종 인격 모독할 때 패드립까지 침. 결국 앤드류는 눈물을 흘리고, 그걸 본 플래쳐는 분하냐고 물으면서 “나는 분하다!”라고 몇 번이고 소리치게 한다. 악독하다 정말…. 


보통 사람이라면 플래쳐 저 시x새끼 하면서 치를 떨고 탈주했을 텐데 앤드류에게는 오히려 동력이 된 모양이다. 방구석에 처박혀서 존경하는 드러머의 연주 들으면서 아버지 전화도 안 받고 스스로를 고립시켜 가면서 손에서 피가 나도록 연습에 매진한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그래도 여자랑 데이트 정도는 할 사회적 관계가 있었음….  


기회는 갑자기 찾아왔다. 재즈 경연 대회 연주 전 메인 드러머가 앤드류에게 악보를 맡겼는데 그걸 잃어버렸다. ???: 너 정말로 모자라냐? 메인 드러머는 악보를 외우지 못했고 앤드류는 외우고 있었기에 플래쳐는 앤드류에게 무대에 서라고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앤드류는 메인 드러머가 된다. 아 근데 쓰다 보니 피곤하네…. 뒤 내용은 그냥 직접 영화를 보시라.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플래쳐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은 점점 앤드류의 집착과 광기를 일깨우고 불을 지핀다. 앤드류는 점점 자폐적이고 자기 파괴적으로 변한다. 또 다른 경쟁자의 등장으로 메인 드러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자신은 위대한 드러머가 되고 싶다면서 꿈을 이루는데 여자가 방해될 테니 헤어지자고 한다. 


사적인 인간관계를 이렇게 시궁창에 처박아버리고, 일류 드러머가 되어 인정받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먹혀서 자기 자신까지도 갈아 넣어버린다. 상처를 담글 얼음물을 준비해 놓고 드럼에 피가 튀기도록 격정적으로 연습한다. 


그렇다 보니 앤드류의 미래를 생각해 보면 속이 좀 갑갑해진다. 저 새끼 저거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까… 같은 의문이 들어 혀를 쯧쯧 차게 된다. 찾아보니까 감독이 인터뷰에서 정말로 “앤드류는 슬프고 공허한 빈 껍데기가 되어 나이 서른에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겠죠.”라고 대답했더라고.  


감독이 말한 것 외에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절망 편은 위에서 얘기했으니 희망 편을 생각해 봤다. 만약 앤드류가 맹목적으로 꿈과 음악에만 집착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면. 그럼 언젠가는 가정도 꾸리고 삐걱거리더라도 사회에 무사히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그렇다고 해도 마누라 뒷목잡게 하는 일투성이긴 할 듯.  


그리고 글 초반에 언급했던 감독의 고민에 대해서 의견을 말하자면 나는 예술 창작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단의 이유는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다.  


2년 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질 무렵 회사에 있던 나는 문득 일하는 게 너무 싫었었다. 그때 손에는 싸구려 모나미 볼펜이 들려있었고 책상에는 A4 용지가 놓여있었다. 저도 모르게 사무실 풍경을 그렸는데 그게 꽤 재밌었다. 그 뒤로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리다가 초상화로 넘어왔는데 그리는 게 굉장히 즐거워서 1년 동안 주구장창 그렸었다.  


작년에는 디지털 그림으로 넘어오고 웹툰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재미가 없었으면 아마 지금쯤 이미 그림 때려치웠겠지. 물론 현재는 업종을 틀고 싶어서 이런저런 궁리 하느라고 스트레스 받고 있긴 한데, 사실 고통 받고 괴로워하면서 굳이 창작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즐겁게 작업 될 때 하고 안 되면 쉬다가 돌고 돌아 다시 또 창작할 수도 있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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