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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작과 Aug 01. 2023

시어머니 절연 후에 찾아온 행복

1. 초면에 과일깎으라 사건

2. 이바지음식 사건

3. 남편밥 사건


#1

왜 처음 남편이랑 싸움을 하고 반발심을 갖게 되었는지 생각했다. 반대입장에서 우리 부모님은 자식의 배우자에게 뭘 요구한 적이 없었다. 내 귀한 자식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데리고 온 사람이라 자식처럼 귀하게 대접해주는 거지.  정말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면 본인이 먼저 감당하지 상대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도 않는다. 나는 부엌에서 일하기 싫어서 식품 쪽에서 뛰쳐나온 사람이고, 앞으로도 돌아갈 생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어머니도 나의 이런 특성을 모르셨고 영양사를 했었다고 하니 기대를 하신거다. 사실 아들들이 늦게 결혼하는 만큼 고대해온 며느리에 대한 기대. 즉 본인이 독박주부 해오신 시간만큼 앞으로 내가 가르쳐서 같이 데리고 부엌일할 아랫사람을 구하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자식의 배우자는 며느리라고 해서 그렇게 대하면 안되는 것이다. 반대로 사위한테 과일을 깎으라는 장모님을 봤는가? 똑같은거다. 난 부엌일에도 관심이 없고, 요리 하기 싫어서 업종을 바꾼 사람이고 그렇게 남녀가 아닌 여자들만 과일깎아서 준비하는 관습도 불공평해서 싫어하는 사람인데, 당시에 내 모습이 아닌 어머니의 기대대로 행동했다. 당황하기도 했지만 초면이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 근데 그러고나니 내 마음이 불편하고 멍들더라. 내 모습 그대로를 내보이지 못하고 앞으로도 어머니의 기대대로 행동해야될 것 같아서. 그 이후로 오빠랑 처음으로 싸우게 된 거 같다. 시댁 얘기만 나오면 말이다.


#2

결혼식 이후 친정에 들렸다 시댁에 갔다. 사실 우리는 예단도 예물도 하지 않았고 우리 월급으로 결혼식을 준비했다. 전세집은 나라대출 90%로 마련해서 몇달 먼저 살고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양가 부모님께는 현금 몇백씩만 전달해 드렸다. 친정부모님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도와주실거 없다고 하니 해준게 없다고 미안해하시는듯 했다. 남편 부모님은 그래도 500 1000은 돈을 보낼줄 알았는데...하고 예단개념으로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사실 그 돈이 우리가 드릴수 있는 현금여유의 최대였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자잘하게 들어가는 돈이 많다보니 쓰고 월급으로 계속 채워나가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남편 선에서 잘 얘기를 해서 이건 예단이 아니고 양가 부모님께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감사의 성의로 저희 둘이 표현한거다 얘기를 잘 한 모양이다. 한복과 양복도 우리가 비용부담하여 맞춰드렸다. 그외에 결혼식 준비로 부모님도 친척분들이나 친구분들께 나가는 비용이 또 있을 것이니 그 비용을 고려한 것이었다.

각설하고, 결혼식 끝나고 친정에 갔더니 친정어머니가 갑자기 우리랑 협의 않고 이바지음식과 꽃바구니를 준비하셨다. 원래 일정이 친정 방문 후 시댁에 갈 예정이었다. 사실 이바지음식을 하기로 한 것도 아니었고, 우리 부부는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엄마가 그래도 귀한 딸 결혼하는데 해준게 없는거 같아 마음을 쓰고계셨던 모양이다. 백화점과 농수산물시장, 떡집을 돌면서 차도 없는 분이 최고급 좋은 제품으로 이바지음식을 종류별로 준비를 하셨다. 나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생전 우리집에서 처음보는 삶은 문어랑 전복새우 한판부터 시작해서 백화점 소고기, 체리, 샤인머스켓, 레드향, 이바지떡, 금산인삼, 소고기육포, 임페리얼 등이 있었다. 비단보자기를 직접 사다가 유튜브에서 보자기매듭을 보시고 하나하나 포장했다고 하셨다. 돈도 돈이지만, 정성이었다.

시댁에 도착해서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이바지음식을 다 내려놓았다. 시부모님도 갑자기 생각지도 못하게 박스들이 들어오니 당황한 눈치였다. 하필 냉장고도 고장나서 새 냉장고가 내일 배송오는 상황이었다.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냉장고에 넣을데도 없는데. 보자기 매듭 이런거 난 할 줄 모르는데, (며느리보고 웃으며) 니가 이거 포장하는 법 좀 배워라. 시아버님은 우리한테 들어온게 있으니 우리도 보내야되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러자 시어머니 말씀하시길, 우린 그냥 돈으로 주면 안되나?

분명히 내가 앞에서 다 듣고 있는데 순간 벙쪘다. 이게 무슨 말이지? 엄마는 시어머니 갖다드리라고 따로 꽃바구니까지 예쁜걸로 준비하셨는데. 두분다 똑같이 결혼시킨 자식의 부모인데 이렇게 서로마음이 다를줄이야.

그 이후 아버님이 답바지 음식 준비가 다 됐다고 우리를 부르셨다. 당시 업무상 야근도 많을때라 나는 감기몸살 기운이 있었고 남편만 보내면서 시부모님께 같이 못가서 죄송하다고, 건강이 안좋아 이러저러 하다고 전화를 따로 드렸다. 사실은 이때부터가 마음의 병이 들 징조였던 것 같다. 갑자기 가져간 이바지음식에 우리 앞에서 고맙다고, 잘먹겠다는 얘기를 단 한마디도 안하셨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부모님들끼리 직접 통화를 하셨다고 한다.) 대체 우리집안을 어떻게 보셨길래 돈으로 답하겠다는 얘기가 나오지? 화가 나기 시작했다. 원래 내 일보다 부모님의 일에 더 예민해지고 화가 난다. 생각에서 말과 행동이 나오는 법인데.  나와 우리 부모님, 우리 집안을 얼마나 만만하게 보셨으면 그런 소리가 나오시는 걸까.

시어머니 대신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님 잘 계셨냐고 하면서 여차저차해서 그날 제가 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저희 부모님과 저희 집안을 어떻게 보셨으면 그런 소리를 하실 수 있냐고. 돈이 있고없는걸 떠나서 정성 이라고. 당시 말씀은 드리지 못했는데 제 마음이 안 좋았다며 이야기를 했다. 아버님은 어머니는 그런 뜻으로 말한게 아닐거라고 하셔서 나는 아 그렇죠 하고 말았다. 그저 시어머니가 그 말을 하셨다는 걸 시댁식구들이 알길 원했고 중재를 해주시리라 생각했다. 일은 그렇게 일단락되는듯 했다.


#3

회사 야근에 쩔어서 퇴근이 10시, 11시, 12시를 찍던 시절이었다. 직장과 신혼집과는 왕복 3시간 정도. 경기에서 서울까지 택시비가 3만원 후반 정도 나오는 거리였다. 몸이 힘들어 도저히 안되겠는 날에는 직장근처 원래 내가 살던 원룸(전세기간이 남아있었다.)에서 자고 출근하는 날도 있었다. 어느날 시부모님과 다같이 모여서 외식을 하는 자리였다. 시어머니는 내 얘길 듣더니 남편 밥차려주기 싫어서 자고 오는거 아니야? 고 하셨다. 순간 또 벙찜...30대 성인 둘이 만난건데 배고프면 자기가 직접 차려먹어야 하는거지 싶었다. 나도 저녁 못 먹고 야근하는데 누가 누굴 챙길 여유가 날까. 이미 과로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태에서 그 얘길 들으니 화가 났다. 자식이 독립해서 가정을 꾸린건데 왜 나에게 밥을 차려라 개입을 하시는건지, 누구든 우리부부 이외에는 그럴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장모님이 사위가 우리딸 밥 안 차려줄려고 야근하고 오는거냐고 하진 않으니까.

어머니와 아버지 두분께 저희는 독립된 가정이니 관여마시고 배려해달라고, 여자가 남편 밥차려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시고 저와 생각이 다른 것 같아 말씀드린다고 했다. 다음은 내가 답장받은 내용이다.

남편 밥도 안하려면 결혼은 왜 했을까. 부인역할 남편역할이 있는데. 스스로 알아서 해야하지 스스로 안되니까 말하는거지.

또다시 나의 답변.

누구의 역할도 어머니가 강제로 요구하실 순 없는 것이고 저희가 알아서 하겠다. 어머니 결혼에 대한의견과 제 결혼에 대한 의견이 차이가 있는것 같다.

그랬더니 충격적인 문자가 온다.

결혼전 친정엄마한테 교육을 안 받았나? 그렇다면 시어미가 교육시켜줄게.


그 이후로 시댁 연락, 방문교류 모두 끊었다.

임신을 했지만 출산 이후에 앞으로도 난 시댁에 갈 생각이 없다. 명절도 남편 혼자다. 아이를 낳더라도 남편과 아이만 보낼 생각이다. 다만 양가에 그래왔던 것처럼 명절에 서로 배우자의 부모님께 선물은 보내고, 남편이 하는 가족들 얘기는 잘 들어준다. 지금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인 나에게 추가로 제대로 피해끼친 사건으로 인해 모든 상황을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께 싹 다 밝혔고, 시어머니한테 직접 내가 통보했다. 저희부모님께 연락 하지마시라고, 나도 어머니랑 연락 끊을거라고 하고 아예 왕래를 끊었다. 연 끊고 산다. 불행의 연결고리를 잘라버렸다.

결혼의 역할보다 우선순위는 나다. 홧병에 걸리지 않고 행복하게 건강하게 사는 것. 내가 아닌 모습으로 타인의 기대대로 살고싶지는 않다. 그렇게 대대로 이어져온 며느리 역할에 충실하며 살다가 홧병 우울증 부부싸움 나는 경우를 봤다. 실제로 한바탕 겪고나니 난 시아버님이 원하는 사랑스런 가족이 되진 못할거 같다. 대신에 안 아프고 건강한 행복한 모습의 내가 남았다. 우리 부부싸움의 8할은 시댁을 갔다오면 일어났다. 우리부부의 가정을 세워가는 신혼초기에 외부영향을 받지않고 단단하게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안그럼 계속 부부싸움을 하고 벽이 무너져 이혼까지 갈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속병앓고 아프면 여유도 없어지고 아이들과 남편도 더 힘들 것이다. 인생은 원래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것 아니겠어? 결혼이라는 역할에 타이틀에 날 욱여넣지 않고 남은 여생은 좀 더 행복하게 나 자체로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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