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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에서본시인 Jan 08. 2024

물가상승

흠칫 바라본 가격표의 숫자를 더듬거리며 나는 놀란 가슴을 태연한 척 흘겨 지나간다. 날씨가 온화하다가 돌연 한창 싸늘한 기운으로 가득해지기를 반복하더니, 마트와 재래시장의 각종 과일 코너에는 선명하고 붉은 딸기의 반짝이는 플라스틱 용기로 열을 맞추었다. 제철과일을 먹어야 건강해질 것이라는 신앙심을 이유로 가격 따위는 못 본척한 채, 나는 자연스레 딸기 한 바구니를 장바구니에 옮겨 담는 상상을 했다. 해당 카드를 쓰면 5,000원을 할인해 준다는 파격적인 마트의 인심 생색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마 끝내 상상 속의 행동을 실현하지 않았다.


과일뿐이겠는가. 요즘 장을 보러 다니며 숫자의 변동에 능청을 떠는 나도 물가의 변덕거림을 심상치 않아 할 정도로 급격하게 오른 시세의 변화에 무거운 발걸음에 한숨을 더하게 된다. 사과는 언제부터 저렇게 고급과일이었을까. (애플의 기업철학을 따라 과일도 고급화 전략을 따르는 것인가..) 미나리는? 양상추는? 깐 마늘은? 쪽파는? 궁금증의 궁금증을 넘어 나는 미련한 책망의 대상을 가격상승을 부추기는 국내 식품 유통 구조에 미덥지 못한 시선으로 대신했다.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인 물가 급상승의 이유를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 하는가? 채널로 돌려버린 뉴스의 끝머리에서 잔상으로 남은 세계가 겪고 있다는 경제위기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에게 찾아오는구나 하며 탄식으로 씁쓸하게 기억을 되살려 보았자 아무 의미가 없었다. 미디어가 그려낸 세계정세는 러시아가 촉발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인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은 그칠 줄을 모르며 중국과 미국이라는 강대국들의 경쟁심은 세계 경제를 더더욱 나락으로 이끄는 듯 보였다. 채소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과일이 작황이 좋지 못해 손 닿을 수 없는 가격표를 달고 진열장에 우아하게 놓여있는 타당한 이유는 이미 마련된 배경을 바탕으로 공동의 승인을 획득했기에 당연한 것일까. 과연 손에 쥔 공허한 마음은 저 눈앞의 조그맣고 비싼 딸기가 채워 줄 수 있을까.


올해는 경제가 어렵다, 소비의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는 식으로 과장된 사실을 늘어놓지만 실상 뉴스화 된 현실이 허풍인지 누군가에게 짐을 떠넘기기 위한 계략인지는 파악할 길이 없다. 되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어렵다는 경제상황은 귀에 박혀 소비자인 국민 개개인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이용할 것인지가 오히려 더 분명한 목적이 되어버린 것 같은 상황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최대실적과 평균 이상의 마진을 유지하면서도 소비자가를 인상하거나, 용량을 줄여 포장으로 교묘한 눈속임을 유지하는 기업과의 대치에 있어 소비자는 어디까지 노련하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상품을 판단하고 고려해야 하나. 시장의 자율에 맡긴다는 자본사회의 공평한 룰에 기대어 온갖 모든 그늘은 뒤집어쓰고 있는 듯한 마음의 텁텁함은 여간 답답하기 그지없다.


자주 들르는 재래시장의 한편에서 제철 채소를 골라본다. 이맘때쯤 출하하는 무는 시원스레 통통하며 연두색에서 하얗게 변화하는 그라데이션이 마치 푸른 초원에 일으키는 마음의 평온함을 닮았다. 무를 깍둑 썰고 양배추와 총총 썰어 피클을 담그면 좋겠다고 자연스레 생각했다. 그러면 식초도 어느 정도 필요하고, 설탕도, 피클스파이스도 있으면 넣고 당근도 넣어 색감을 살리면 더 완벽하겠다고 했다. 찰나의 마음의 평온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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