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에서본시인 Oct 26. 2024

여백이 주는 불편한 고독감

아우성이 난무하는 주장속에서 살아남으려 한다.

업무가 생겨서 교외에 자리 잡은 업체를 방문하게 되었다. 공장은 회사에서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해 있기는 했으나, 그곳은 내가 전혀 가보지도 않은 지역이었기에 나에게는 낯선 지리적 위치만큼이나 심적인 거리감이 느껴져 그곳까지 가는 여정이 여간 불필요한 과정처럼 느껴져 마냥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인적이 드문 역사의 분위기는 문득 느껴지는 이질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무 광고도 걸려있지 않은 벽면. 최근에 만들어졌다는 신 역사의 플랫폼은 이곳이 어느 역인지 알려주는 이정표만 표시되었을 뿐, 그 외의 불필요한 시각적 방해 요소가 전혀 없다. 광고로 빼곡하지 못한 구조물에 적응되지 못한 고독감을 느끼는 현대인은 불편한 여백에 어색함을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다. 영화 세트장처럼 기이한 빈 공간에 나는 낯섦을 느끼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광고와 불가피한 시각 공해에 시달려 왔는지 새삼 텅 빈 벽면을 통해 깨닫게 된다. 여백이 주는 그 지역의 분위기는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시간에 쫓기듯 매 순간은 급박한 템포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나에게 그곳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차분함을 더하는 듯 보였다.


알게 모르게 주변을 감싸고 있는 광고에 뒤엉켜 하루를 산다. 당장 손 앞에 놓인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더라도 그 깨알같이 작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 외침은 불편한 방해거리가 아닌 일상의 당연한 존재처럼 한 귀퉁이에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못한 채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이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던져 넣으면 갑작스러운 온도변화에 놀라 냄비 속을 뛰쳐나오지만, 차가운 물에 담긴 개구리를 서서히 뜨거운 불로 끓이면 온도 변화를 의식하지 못한 채 익어간다는 시답지 않은 소리를 우습게 여길 수가 없다. 스스로가 사회에 민감도를 높이며 아주 작은 변화에 스스럼없이 의견을 내고 자각을 촉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 믿고 있지만, 그런 나조차도 얼기설기 도처에 만연한 누군가의 주장들을 과감하게 내칠 정도로 뚜렷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과장되게 시끄러운 방식은 이미 오래된 유물이 되었고 이제는 일상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기묘한 방법으로 설득력을 높이는 기업의 태도에 나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라운 화술에 감탄하며 어느새 긍정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철학이 맞고 그름의 기준이 되는 아우성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고 싶지 않다 생각했다. 소외된 공간에서 고독감을 다룰 줄 알게 된 유년시절의 외로움이 지금의 자양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의 쓸쓸함과 기억 속의 불쾌함은 시간이 빚어낸 혼탁함으로 썩어 뭉개져 자아를 찾아내려는 작은 씨앗이 되었다. 마주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습에 경외와 경계를 마다하지 않으며 여전히 그들과 동떨어진 타인의 모습을 거부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모습을 꼭 닮아 버린 스크린상의 삶을 먹을 수 없는 음식처럼 기괴하고 과장된 선동으로 인식했다. 어느 누가 던진 파장을 따라 흘러가면 그 흐름에 따라 유동치는 선망의 손짓이 유쾌하지 않게 우스꽝스러웠다. 결코 나의 잣대를 들이밀며 나는 그들에게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차라리 나는 해변가의 모래를 맨 발닥으로 걸으며 지금도 다르지 않을 미래에 겪을 고독을 마주하려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고장나지 않은 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