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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롭 Dec 02. 2024

그토록 완벽할 수가 있나

청풍호 유람선에는 ○○시니어클럽 명찰을 목에 건 시니어들이 자리에 가득했다. 나는 맨 위층으로 올랐다. 거기도 빈자리는 없었다. 사진을 찍고 유람을 기대하는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한 시니어가 눈에 들어왔다. 낙엽색 편지 봉투에 메모하고 있는.


그녀는 혼자 조용히 써 내려가다 고개를 들고 주위를 바라보다 또 쓰곤 했다. 나무 사이에서 수런거리던 가을 소리는 사라지고 손바닥 같은 잎들이 사력을 다해 타오르는 늦가을. 그녀의 낙엽색 편지 봉투 위로 까만 글자가 나아가다 막다른 지점에서 방향을 틀고 있었다. 등을 돌리려는 가을에게 그녀는 편지를 쓰는지 모른다. 가을이 전하는 말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들었는지도.


어디서 출발했는지 오토바이를 타고 청풍호를 질주하는 젊은이 둘이 불현듯 나타났다. 탄성을 지르며 유람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유람선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시니어들도 좋겠다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오토바이가 물 위를 달릴 수 있다니. 도로 위에서처럼. 신나는 기운을 마구 뿜어내는 그들은 이내 멀어져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본 광경이 묘기 같았다.


배가 출발하자마자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모자가 날아갈까 봐 벗어서 가방 속에 넣고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을 내버려 둔 채 배의 난간에 기대 남한강과 함께 흐르는 산을 바라보았다. 나무들이 어우러져 저마다 제 빛깔을 발현하는 가을 산색에 빠져 있는 사이 청풍대교를 지나왔다. 바람은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바람이 부는 구간이 따로 있구나. 생각하다가 지명을 떠올렸다. 청풍. 이름 그대로 맑은 바람이 부는 곳에서 배를 탄 것이다.     



시니어 명찰을 달지 않은 한 어른이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카메라 앞에서 희미하게 웃는 어른. 사진 속 자기 모습을 보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지나가 버렸네라고 하면서. 뭐가 지나갔나요? 나는 의아했다. 어른은 그 지점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까닭이 있었다. 그는 아득히 보이는 가장 높은 봉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월악산 영봉이라고 말했다. 멀리 보이는 무수한 봉우리 가운데 영봉이 있는지 그날 알았다.


두어 해 전 청풍에서 유람선을 타고 배가 장회나루에 정박할 때 처음 본 산. 나루까지 내려온 여름산의 능선이 아름다워 남몰래 감탄하다가 청풍나루로 돌아와 배에서 내릴 때 선원에게 물으니, 월악산이라고 답했다. 유람선을 타고 장회나루까지 가는 동안 월악산은 이어지고 있다. 내가 다시 본 옥순봉이며 구담봉이 다 월악산에 속한다.


눈앞으로 옥순대교가 다가오니 곧 옥순봉을 대면할 차례. 그전에 출렁다리 쪽 광경이 기대되었다. 시월 마지막 날 내가 노 젓던 곳에 카약을 타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서. 유람선 위에서 카약을 타는 이가 보이면 무척 반가울 것 같았다. 혹시 누가 있는지 보려고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출렁거리는 마음으로. 아무도 없었다. 물결 위에서 햇살만 노닐고 있을 뿐. 눈이 부시도록.      



옥순봉

   


긴장이 되었다. 카약을 타고 옥순봉 앞에서 멈추어 바라본 적 있지만 다시 보기 직전이었으니까. 옥순봉을 마주한 순간 나는 제대로 한번 쳐다보지도 못하고 사진을 찍다가 지나치고 말았다. 돌아올 때는 놓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주마간산과 뭐가 다르겠는가. 말이 배로 바뀌었을 뿐.


1790년(정조 14) 정약용은 울산에 있는 부친을 뵙고 서울로 가는 길에 단양에 들렀는데 도중에 빨리 돌아오라는 성지(聖旨)를 받고 구담을 말 위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단양 산수기(丹陽山水記)>에서 그는 미인이 비록 아름다웠으나 그 자태는 기억할 수 없다는 옛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공감을 표현했는데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구담봉을 보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유람선 말고는. 스치듯이 지나쳐서 제대로 볼 수 없는 게 자명하고, 보자마자 멀어지는 구담봉에 아득히 눈길을 보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형원의 『동국여지지』에 따르면 구담(龜潭)은 물에 잠긴 석봉의 모양이 거북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담봉을 지나갈 때 봉우리 어디 거북 같은 바위가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깊고 넓은 못이 푸르고 맑기가 거울 같다고 했으니, 맑은 물에 비친 바위 표면의 갈라진 무늬가 귀갑문 같아 거북에 비유했을 것이다.     



구담봉



이황의〈유람할 만한 단양의 산수에 대한 기문 [丹陽山水可遊者續記]〉따르면 “구봉은 동으로 못을 막아주고, 북으로 못 구비를 내려다보는데 붉은 벼랑 푸른 절벽이 더욱 빼어나다. 이는 못으로 말미암아 이뤄진 것이다. 그래서 구봉(龜峯)이라 이름을 지었다.”구봉의 절경은 그 모습을 비춰주는 구담으로 인해 돋보인다는 의미에서 ‘구봉’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구봉이 이황에 의해 처음 이름이 생겼듯이 그것을 비추는 구담 또한 그에 의해 재발견된다. 이황은 구담을 보고서야 자신이 이전에 본 것은 기이할 것이 없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것과 이전 단양 군수 임제광의 기문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구담에 대해 “군 서쪽 2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쾌속선을 타고 물에 비치는 바위 무늬는 볼 수가 없고 석봉에 눈길을 주지만 금방 지나고 마니 몇 분이라도 멈추어 음미할 여유를 준다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구담봉을 지나 장회나루에 잠시 정박해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동안 구담봉의 일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 떨어진 거리 때문에 바위에 거북등무늬가 보이지는 않지만 의연한 석봉은 바라볼수록 바라보고 싶게 했다.    

  


장회나루에서 보이는 구담봉



단양 군수를 지낸 이황은 공무를 마친 여가에 구담, 도담 등지에 가서 소요했는데 풍기 군수로 체직되어 단양을 떠날 때, 행장에는 다만 2개의 괴석뿐이었다고 한다. 2개의 괴석은 그가 사랑한 옥순봉과 구담봉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누가 알까 만 리를 향한 뜻을, 묵묵히 생각하면 어느덧 이른다오”(장현광, <와유당(臥遊堂)에서 11수를 읊다 중 괴석 [臥遊堂十一詠·怪石]>)라고 했듯이 괴석은 와유를 위한 완상품으로 작은 산이니까. 집에 누워서 생각 속에 그곳에 이르기 위한. 공간적으로 만 리에 이르게 할 뿐만 아니라 “개벽한 뒤 흘러온 형체”이므로 시간적으로 “태고의 시대”(허목, <괴석(怪石)>)로 이끈다.


단양을 떠난 뒤에도 이황은 서울로 내왕할 일이 있을 때면 구담에 들리곤 했다. 이산해에 따르면 부친 이지번과 숙부 이지함이 단양의 구담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이황이 소명을 받고 서울로 가는 길이면 찾아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가 사랑하는 장소로서의 구담만이 아니라 신선 같은 인물 구담 이지번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평이라는 정육품 벼슬을 버리고 도담에 은거한 이지번에게 이황은 구담으로 옮기도록 권유했다.      



形勝龜潭勝島潭

구담의 형승이 도담보다 나으니

可能移就結茅庵

이사하여 모옥을 지을 만하리라

他年我亦尋君去

후년에 나도 그대를 찾아가리니

白石靑雲飽共叅

돌과 구름으로 함께 배를 불리세


이황, <도담의 이이성에게 寄島潭李而盛>     



이지번(자(字)는 이성)은 이지함의 형이자 이산해의 부친이다. 구담을 향한 그의 애정은 자신의 호를 구담(龜潭), 구옹(龜翁)으로 지은 것에서 드러난다. 이황은 그를 구담 주인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지번의 집 창문은 구담을 마주하고 있었다. (황준량, <이성의 창으로 마주한 구담을 보고 [見而盛窓對龜潭]>) 아마도 구담을 맘껏 바라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구옹 형제가 눈 쌓인 골짜기 얼음 절벽에서 살면서도 스스로 즐거워하니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이황, <황중거에게 답하다 [答黃仲擧]>) 라고 이황은 탄복했다. 그렇기에 선인들은 구담봉을 유람할 때면 이지번이 살던 집을 찾아보곤 했다.


이지번에게 돌과 구름으로 배를 불리자고 한 이황은 그와 함께 산수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면서 세상사에 대한 생각을 정화할 수 있었다. 1557년(명종 12) 단양 군수로 부임한 제자 황준량에게 보낸 편지 <황중거에게 답하다 答黃仲擧>에 이렇게 썼다. “내가 한 번 나가서 7개월 만에 돌아왔는데, 부딪치는 일마다 자기 소신을 버리고 남 하는 대로만 따라 하는 것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구담을 지나다 귀옹을 만나 빼어난 바위와 물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면서 세상 근심을 말끔히 씻어 버렸다.”     



이황이 말한 대로 구봉은 그것을 비춰주는 구담이 있어서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신령한 거북의 이름을 붙인 구봉은 보았으나 구담은 보지 못했는데 그날 나의 유람에서 구담을 찾아본다면? 그날 만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구담이 구담봉을 반영하는 것처럼 구담봉을 떠올릴 때면 그림자처럼 따르는 사람이다.


유람선에서 내려 철교를 건너 언덕으로 난 계단을 다 올라오니 한 할머니와 아주머니 두 명이 서 있었다. 청풍나루 직원에게 말씀해 보세요. 아주머니가 할머니에게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할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내가 할머니에게 말을 걸자 아주머니들은 발걸음을 옮겼다.

장회나루에서 탔는데 여기 올라와 보니 아무도 없어요.


나는 청풍나루에서 왕복표를 끊어 장회를 거쳐 청풍나루로 돌아왔다. 장회나루에서 탄 할머니는 청풍을 거쳐 장회나루로 돌아가야 하는데 도중에 잘못 내린 것이다. 우리가 타고 온 유람선은 벌써 청풍을 출발하여 유유히 장회로 향하고 있었다. 남은 한 사람의 심정은 모른 채. 청풍호 위에 떠가는 흰 배는 청풍나루에서 세 시에 떠나는 마지막 유람선이었다.


할머니 일행에게 연락하려고 해도 할머니는 핸드폰도 없고 일행 전화번호도 몰랐다. 함께 선착장으로 가려고 하니 계단을 내려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청풍나루로 가는 계단은 꽤 가파르다. 내려가길 꺼리는 할머니의 말에 그 가파른 계단을 얼마나 힘들게 올랐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데 온 신경을 다 기울여 주위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간신히 올라와 엉뚱한 데 혼자 내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당황했을까.  


구담봉이며 옥순봉 구경 잘 하고 내가 바보 같이 왜 여기 내려 가지고. 같이 온 사람들 기다릴 텐데…….

할머니는 남에게 폐를 끼칠까 봐 걱정하며 자신을 탓했다. 우리가 서 있는 계단 입구에 청풍나루 전화번호가 있었다. 삼십 분 뒤에 배가 장회로 갈 것이니 나루로 내려오라고 직원이 안내했다. 할머니는 관광버스를 타고 와 일행이 기다린다고 걱정하면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고 했다. 관광버스에 다 놓고 왔는지 할머니는 빈손이었다. 청풍나루 직원은 철교를 건너오고 있었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장회나루까지 모셔다 드릴 거예요.

아직 결정된 게 없는 상황에서 나는 말했다. 사정이 딱한 할머니를 누가 모른 체하겠는가.

할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내가 아가씨 못 만났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고마워요. 나는 못 잊어요.


천안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왔다는 할머니에게 큰일이란 자신으로 인해 일행이 기다리는 것이다. 도와준 게 아무것도 없는 내게 할머니는 참으로 고마워했다. 할머니 연세를 물으니 여든다섯이라고 하여 나는 깜짝 놀랐다. 눈이 휘둥그레져 훨씬 젊어 보인다고 말하자 할머니가 처음으로 웃었다.


청풍나루 직원은 계단 위로 막 올라와 할머니가 장회나루에서 탄 게 맞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하여간 배를 타려면 삼십 분을 기다려야 하고 장회나루까지 가는 데 또 사십 분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일행이 기다릴까 봐 택시를 타고 가야 된다고 하는데 장회나루까지 차로 모셔다 드릴 방법이 없는지 나는 그에게 물었다.


 말이 끝나자마자였다. 저만치서 경찰차가 달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누가 보낸 것처럼. 딱 맞는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순간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나루의 직원에게 말했다. 경찰한테 한번 말해볼까요?


경찰차를 향해 손을 흔드니 우리 앞에 멈춰서 창문을 내렸다. 경찰은 까만 선글라스 렌즈를 위로 올리는 창문처럼 눈썹 위로 올리고 있었다. 그의 눈을 보면서 할머니의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자 경찰은 웃으면서 차에서 내렸다. 왜 여기 내리셨어요, 그래? 하면서 할머니를 부축하여 뒷좌석에 태우는 그의 태도가 마치 어머니를 모시러 온 아들 같아 보였다. 할머니도 그제야 시름을 놓지 않았을까.


잘 가세요. 할머니. 건강하세요. 뒷좌석의 닫힌 창에 얼굴을 바짝 대고 나는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출발하는 차의 창을 내리고 할머니가 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구불한 길 너머로 서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도 할머니 뒤에서. 할머니가 보지 못한다고 해도.


할머니와 함께한 짧은 순간이 그날 유람선을 타고 본 구담봉을 비춘다. 마음속 구담을 들여다보며 나는 생각한다. 일행이 아무도 내리지 않는 곳에 할머니는 어쩌다 혼자 내렸을까. 어디선가 길을 잃는 까닭은 어느 생에 함께한 사람에게 다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일까. 미처 전하지 못한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려고. 말로 다하지 못한 말을 눈빛으로 손으로 전하려고. 할머니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나를 기다리고, 나는 할머니에게 이끌리듯 다가간 것일까. 우리는 헤어지기 위해 다시 만났나. 좋은 이별을 위해.


만나서 얼굴도 보고 손도 잡았으니 때가 되었던가. 할머니를 모시고 가는 경찰은 어디 있다가 필요로 하는 순간에 일 초도 어김없이 등장했을까. 그토록 완벽할 수가 있나. 우리 모두 초공간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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