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엄마가 필요해.

by zejebell

독감에 걸렸습니다. 최근 몇 년 간 이렇게 아팠던 적이 없었을 만큼 크게 아팠습니다. 그리고 아직 아픕니다. 어디서 옮아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가족 모두가 아픕니다. 한 명이 전염병에 걸리게 되면 나머지도 차례대로 전염병에 걸리게 됩니다.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독감에 걸리게 되면 열이 많이 납니다. 머리가 아프고 온몸이 떨리면서 근육통이 심하게 옵니다. 빨리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먹어야 합니다. 집에 있는 엄마도 그렇지만 일을 해야 하는 엄마의 경우에도 아픈 몸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무척 힘듭니다. 예전에는 아프면 아픈 대로 다 아프고 나면 나을 것이라 생각해 그냥 아팠습니다. 많이 아프면 집에 있는 진통제 정도로 버티면서 자연적으로 나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래도 되었습니다.


오히려 몸이 아픈 것을 기회로 쉴 수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청소도, 요리도 대충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하나도 양심에 찔리지 않았습니다. 난 아팠으니까요. 그런데 일을 하면서는 반대로 아파도 절대로 티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아무리 아파도 티 내기 어려웠습니다. 일하는데 혹시라도 몸관리 못했다는 안 좋은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되었고 집에서는 가족이 아프니 그 수발을 드느라 아픈 티를 내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돌아가면서 아프고 난 뒤에야 마지막으로 아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콧물과 눈물이 비 오듯이 쏟아지고 목이 부어 숨쉬기도 어려울 지경이 되어서 겨우 아픈 티를 내었습니다. 그렇게 주말 내내 끙끙 앓았더랬습니다. 이제 좀 한숨 쉴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다 낫지 않은, 회복 중인 가족들의 약해진 건강을 생각하니 마음 놓고 쉴 수만은 또 없었습니다.


불고기를 만들고 단호박을 쪘습니다. 부드러운 계란찜과 신선한 시금치를 무쳤습니다. 동치미의 무를 썰고 김장김치를 꺼냈습니다. 아팠던 내내 입맛 없었던 가족들에게 주었던 죽 대신 맛있고 건강한 음식으로 회복을 돕고 싶었습니다. 몸이 힘들고 누군가 나를 위해 이런 음식들을 해주길 간절히 원했지만 현실은 제 손으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정성을 다해 차린 음식을 맛있게나 먹어주면 좋으련만 각자 아무 말 없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음식만 쏙 먹고 고맙다는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혼자 남은 음식들을 해치우면서 (예전 같으면 분명히 화를 냈겠지만) 그래도 잘 먹어줘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스스로 다독였습니다. 이제 저만 회복되면 됩니다. 독감은 한 번씩 이렇게 힘든 시간을 저에게 주지만 그렇게 가족들이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알게 해 줍니다.


그럼에도 아플 때면 저에게도 저만을 위해주는 엄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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